이제는 동네 마트에서도 흔치 않게 발견할 수 있는 밀키트(meal kit), 어느새 우리 식생활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 새로운 흐름이다. 가정간편식의 4가지 유형 중 즉석조리식품으로 간편하게 손질된 재료와 양념, 레시피를 동봉한 제품을 말하는 밀키트는 2007년 스웨덴에서 배달 서비스와 함께 처음 소개된 이후, 국내에는 2016년 프레시지, 닥터키친 등 스타트업체에 의해 도입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외부 식당 이용이나 외식이 어려워지면서 더욱 급부상했다. 그렇다면 이런 밀키트는 어떻게 확산됐고, 소비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밀키트의 확산은 역설적으로 우리의 신체 유지 활동에 필요한 영양 문제에서부터 ‘밥상문화’로 일컬어지는 한국의 식문화, ‘식구(食口)’라는 낱말로 상징되는 가족의 내밀한 의미까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커버스토리 1면에서는 밀키트 확산 현상을 짚어보고, 2면에서는 동문 소설가의 에세이를 통해 밀키트의 급부상 속에서 좀더 생각해볼 근원적 정서 문제를 짚었고, 3면에서는 방송대 교재를 통해 균형 잡힌 영양 섭취 문제를 살폈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밀키트 시장 규모 커지는 중
한국의 식문화가 변화하고 있다는 방증
소통과 연대, 정서적 함양 가능했던
우리 밥상문화의 순기능 되돌아볼 때
2021년, 국민 5명 중 1명이 이용
독일의 시장 및 데이타 분석업체인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2021년 1년간 우리나라 국민이 밀키트를 구매한 비율은 19%로 미국민의 구매률 9%보다 두 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 5명 가운데 1명꼴로 밀키트를 이용했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가정간편식(HMR, Home Meal Replacement)은 조리 과정 없이 바로 먹을 수 있는 제품,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제품, 간편 조리 후 먹을 수 있는 제품, 세척 및 가공한 식재료로 간단 조리 후 섭취할 수 있는 제품의 4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이중에서도 특히 주목받는 것은 원재료를 사용해 신선한 음식 섭취가 가능하고, 간편한 조리로 요리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간편 조리 후 먹을 수 있는 제품’이다. 밀키트가 이에 해당한다.
물론 여기에도 진화의 법칙이 작용했다. 가정간편식이 구매한 제품을 개봉해 그대로 먹거나 간단히 데워서 섭취하는 식품이었다면, 밀키트는 손질된 신선한 음식 재료와 레시피를 통해 간편하게 조리해서 먹을 수 있는 식품형식으로 진화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제품을 출시하는 대표적인 외식유통업체로는 한국야쿠르트(잇츠온), 동원 홈푸트(맘스키트), GS리테일(심플리쿡), NS몰(10분 레시피), 롯데마트(요리하다), 현대백화점(셰프박스), 갤러리아백화점(고메494), CJ제일제당(쿳킷) 등이 있다. 서울교통공사도 이 시장에 끼어들어 2022년 2월 신규 사업으로 밀키트 전문점 사업자를 공모한 결과 굿푸드 ‘원셰프의 행복식탁’과 계약을 체결해, 현재 지하철 장한평역 등에서 냉동 밀키트 제품을 팔고 있다.
시장 규모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국내 밀키트 시장 규모는 2017년 20억원대에 불과했지만 2020년 1천882억원으로 성장했고, 2025년에는 7천253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이 만능 음식 아이템 밀키트는 누가 어떻게 활용하고 있을까? 류시현 배재대 교수(외식경영학과) 등이 발표한 「밀키트 소비자의 식생활 라이프스타일 유형별 구매행동과 선택속성」(〈동아시아식생활학회지〉, 2021, 이하 ‘밀키트 소비자’), 이심열 동국대 교수(가정교육과)가 발표한 「식생활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밀키트 이용 현황과 만족도에 관한 연구」(〈한국가정과교육학회지〉, 2021, 이하 ‘밀키트 이용 현황’) 등 두 편의 논문은 밀키트 이용 현황을 면밀하게 보여주는 참고자료다.
편의성과 맛 그리고 건강·안전
「밀키트 소비자」는 온라인 설문을 통해 밀키트 구매경험이 있는 20대 이상의 소비자 총 354명의 응답을 수집한 후 최종분석에 활용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밀키트를 구매할 때 편의성을 중시하는 ‘편의추구 집단’에는 20대와 30대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으며, ‘건강과 안전’을 우선시하는 ‘식생활고관심 집단’에는 40대와 50대 이상의 비율이 높았다.
구매빈도도 흥미로운 양상을 보였다. ‘식생활고관심 집단’은 월 2~3회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지만, ‘편의추구 집단’과 ‘경제추구 집단’은 2달에 1회 미만으로 나타났다. 세 집단 모두 ‘품질’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으며, 다음으로 ‘편의추구 집단’과 ‘경제추구 집단’은 ‘편리성’을, ‘식생활고관심 집단’은 ‘건강’을 고려했다.
「밀키트 이용 현황」 역시 밀키트 구매 경험이 있는 20대 이상 성인 총 357명을 대상으로 이용실태와 만족도 차이를 비교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밀키트 단어가 익숙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의 75.0%였고, 이용 빈도의 경우 ‘한 달에 1~2회’가 전체 대상자의 43.4%로 가장 많았다.
밀키트 이용 후 만족도를 살펴보면 ‘보통으로 만족한다’가 전체의 52.1%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밀키트의 전망에 대해서는 전체의 20.4%가 ‘전망이 매우 밝다’라고 응답했다. 93.2%는 앞으로 ‘밀키트를 이용하겠다’라고 대답했다.
이들 논문에서 확인했듯, 밀키트는 20~30대 젊은 층에서만 소비하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40대와 50대 이상에서도 더 자주 이용하고, 비용 지불도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결국 밀키트가 ‘편의성’만 있는 식품이 아니라 건강과 안전, 미식까지 담보하는 새로운 시대적 산물임을 의미한다.
방송대 생활과학부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있는 전직 셰프인 A학우는 “영양적인 부분이 개선되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자취생들은 직접 요리를 하면 재료가 많이 남게 되는데, 밀키트로 조리하면 버리는 재료도 없어 선호하는 것 같다”라고 말하면서 “요리를 못하거나 요리를 좋아하지 않거나 요리할 시간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밥상의 새로운 한 형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밝혔다.
세 가지 문제점과 전망
그러나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포장재 쓰레기 증가라는 환경적인 문제도 있지만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영양성분 표시일 것이다. 매년 시장 규모가 확대되고 있지만, 밀키트 제품은 열량과 나트륨, 탄수화물, 당류, 지방, 트랜스지방, 포화지방, 콜레스테롤, 단백질 등의 영양소 함량을 알 수 없다. 야채, 냉동육, 해산물 등 농축수산물을 포함하고 있는 밀키트는 규격화하기 어려운 재료들로 구성돼 영양성분 의무표시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
2022년 12월 서울시보건환경연구소와 녹색소비자연대가 밀키트 제품 실태조사를 공동 발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밀키트 100개 제품 가운데 절반이 넘는 51개 제품에서 1인분 나트륨 함량이 1일 기준치 2천mg을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제품 포장지나 제품 판매 웹사이트 등에 자율적으로 영양성분을 표시한 제품도 조사 대상 100개 제품 가운데 겨우 21개에 그쳤다. 지난 3월 21일 국회에서 ‘밀키트제품 영양·나트륨 성분 표시화 정책과제’ 국회토론회가 열린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다. 하지만 영양성분 표시를 놓고 소비자-기업·정부간 이견만 확인했을 뿐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밥을 함께 나누는 음식문화’의 변화다. 공동체의 가치 규범뿐만 아니라 정서적 측면까지 내포한 한국의 밥상문화가 급격하게 변모하면서, 가족과 가정의 의미를 되새겨주는 정서적 요소마저 변질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다.
한 문화평론가는 “핵가족, 1인 가구와 같은 사회변화가 반영되긴 하지만, 한국의 밥상문화는 지금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소통과 연대, 정서적 함양이 자연스럽게 가능했던 식문화의 순기능이 시효 만료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라고 지적했다. 디지털시대 아날로그 문화의 의미 같은 게 있다는 뜻이다.
가정의 달인 5월, 온라인으로 주문한 밀키트로 맛난 식탁을 꾸릴 계획이라면, 여기서 잠깐! 소설가인 양진채 동문의 말처럼 “밀키트 전성시대에도 같이 먹는 집밥, 그 속에 담긴 ‘우리’ 이야기가 가장 맛있는 반찬일 때도 있다는 걸 잊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챙겼는지 꼭 짚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