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밀키트 전성시대

안동이 고향인 지인이 단체이야기방에 안동찜닭 맛집을 소개했다. 고향 동창이 하는 곳인데 찜닭에 치즈를 뿌려 녹여 먹는 맛은 별미 중 별미라는 것이다. 안동에 가면 무조건 꼭 들러서 먹어보라고 했다. 안동찜닭이라니.
내게 안동은 병산서원 만대루의 바람으로 기억됐다. 5월 초 여리여리한 연둣빛이 초록빛으로 변해갈 때, 안동의 서원을 돌아보는 답사팀에 끼었는데 일정이 생각보다 고됐다. 병산서원에 들렀을 때는 어디든 주저앉고 싶었다. 그때 만대루에 올랐다. 2층 만대루에 서서 보니 눈이 금새 시원해질만큼 시야가 확 트였다. 나만 힘이 들었던 게 아니었는지 모두들 주저앉으며 신음소리를 냈다. 저마다 넓은 나무 바닥에 앉아 잠깐 쉬게 됐고, 지쳐 있던 나는 그 짧은 시간, 기둥에 기댔고 깜빡 졸았다. 누군가 다정하게 어깨를 흔들 듯 여린 바람이 혼곤한 잠 속으로 들어왔다. 땀이 맺힌 귀밑을 스치던 바람. 안동을 떠올리면 언제나 그 청량한 만대루의 바람이 먼저 따라왔다.

처음 접한 안동찜닭 밀키트
닭을 좋아하지만 안동찜닭을 먹어본 사진 출처=우리의식탁(wtable.co.kr)

사진 출처=우리의식탁(wtable.co.kr)

안동찜닭 요리도 밀키트로 만나는 시대다.
사진 출처=우리의식탁(wtable.co.kr)

기억이 없었다. 내겐 튀긴 닭이 1순위였고, 2순위라면 닭볶음탕이었다. 굳이 간장을 베이스로 한 안동찜닭을 먹어볼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지인은 먹어보라며 안동찜닭 밀키트를 택배로 보내왔다. 그 식당에 직접 가지 않고도 전화주문만 하면 밀키트를 만들어 식당에서 먹는 맛과 똑같은 맛으로 집에서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코로나 19 확산으로 외식이 줄어들며 밀키트라는 단어가 회자 될 때였다.
처음 접한 안동찜닭 밀키트는 각종 채소와 양념, 잘 손질해 진공 포장한 닭, 치즈 등이 아이스박스에 얌전히 들어 있었다. 별로 손이 갈 것도 없었다. 차례대로 넣어가며 끓이기만 하면 됐다. 냄새가 퍼지자 잠깐 거실에 나왔던 딸이 무슨 냄새냐며 코를 킁킁거렸다. 이게 안동에서 제일 맛있는 안동찜닭이래, 자랑하며 식탁에 올렸고, 우리는 한 끼는 닭과 채소와 면을 섭렵했고, 각종 채소와 닭에서 빠져나온 육수, 달고 짠맛이 어우러진 국물은 다음 끼에 밥을 볶아 먹었다. 처음 먹어본 안동찜닭에 딸과 나는 엄지척을 해야 했다. 딸은 내가 해준 닭볶음탕보다 맛있다고, 역시 맛집은 달라, 하며 엄지를 한 번 더 치켜세웠다.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조금 지나 보니 어느새 밀키트 세상이 돼 있었다. 캠핑이 유행처럼 떠오르면서, 간편하게 요리할 수 있는 밀키트를 선호하고, 일일이 재료를 사서 요리하기에는 재료가 남아 처치 곤란한 1인 가족에게도, 맞벌이 가구라 요리할 시간이 없는 가정에서도 밀키트는 환영받았다. 그뿐인가, 식당에 가는 번거로움도 줄이고, 외식비용보다 저렴하니 밀키트에 눈이 갈만했다. 게다가 흔히 먹는 음식이 아닌 요리조차 밀키트만 있으면 손쉽게 가능했다. 스테이크, 밀푀유 나베, 감바스 등 집밥이 아닌 새로운 맛의 요리가 필요할 때도 밀키트는 유용했다.
얼마 뒤 지인을 만났을 때, 지인은 나뿐만 아니라 몇 사람에게 안동찜닭 밑키트를 선물했다고 했다. 여행 갔으면 다 같이 그 식당에 가려고 했지만, 코로나 단계가 풀리지 않아 못 간 대신 각자 다른 공간에서라도 그 음식을 먹게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이지 않으면서도 똑같은 맛의 안동찜닭을 먹은 것이다.
지인과 헤어져 아파트단지에 들어서다 불 밝힌 아파트를 보았다. 같은 평수의 아파트,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아파트단지라 집 구조뿐만 아니라 벽지, 싱크대, 붙박이장까지 같은 집. 조명도 같아 밖으로 새어 나오는 거실의 주광색 불빛도 닮아 있었다.
이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우리 집은 아파트 한쪽 코너의 주택이었다. 다섯 가구가 살았고, 마당엔 목련과 라일락과 감나무가 있었다. 봄이면 유백색의 목련이 불빛을 대신해 환했고, 코끝에 라일락 향기가 퍼졌고, 감꽃나무 아래에 오래 서성인 밤도 있었다. 감이 열릴 때면 마당 평상에 모여 앉아 감을 깎아 먹기도 했던 시간은 흔적도 없이 땅속에 묻혔다.
아파트 창문은 이중으로 완벽하게 외부와 내부를 갈랐고, 뜨거운 물은 언제든 쏟아졌고, 겨울에도 웬만해선 춥지 않았다. 아파트는 단지 특성에 맞게 조경도 뛰어났다. 단지는 조성된 지 1년도 안 됐는데 이미 수십 년을 살았을 소나무를 옮겨와 심었고, 울창한 벚나무에선 봄을 알리며 벚꽃이 날렸다. 분수대와 이름 모를 나무와 꽃들이 조화롭게 피어났다. 그런데도 나는 때때로 아파트 자리에 있었던 우리 집의 옹이 진 나무가 떠올랐다. 아파트단지의 아름다운 조경은 아무리 멋져도 나의 나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무들이 자라는 동안 나의 생은 빠져 있었고, 나도 그들이 자라온 과정을 알지 못하니 애틋하거나 따뜻한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보기에 좋을 뿐이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엄마가 만들어준

어떤 음식이 고향처럼 남아 있는,
그런 시간 속에 흐르는 정을 느낄 수 있다면

마음이 얼마나 따뜻할까. 밀키트 전성시대에도
같이 먹는 집밥, 그 속에 담긴 ‘우리’ 이야기가

가장 맛있는 반찬일 때도 있다는 걸
잊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소박한 밥상을 기억하는 이유
사회가 획일화돼가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빠른 속도를 우선하는 삶은 편리성에 초점이 맞춰졌다. 밀키트도 맛을 기반한 편리성에 맞춰져 있다. 이 편리성은 아쉽지만 개성을 잃어버리게 한다. 엄마의 손맛은 사라지고, 맛집의 맛만 남는다.
아파트에서의 삶은 만대루의 바람과 같은, 감꽃으로 목걸이를 만들던 기억을 소환하고, 감을 깎아먹으며 이웃과 웃던 평상의 기억, 골목을 떠올릴 수 없다. 골목 입구에 환하게 피던 겹개복사꽃에 황홀해하던 기억, 그 기억이 끄집어내는 더 어릴 적의 골목에서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치던 기억을 묻어버린다.
밀키트는 엄마의 맛을 잃어버리게 한다. 밥상에 오르던 그 계절의 나물, 다 함께 모여 하던 김장, 김장 뒤에 먹는 배추된장국과 돼지고기 수육은 고단한 몸을 풀어주고, 나눠 먹을 생각에 통마다 가득한 김치로 배불렀던, 주방을 책임진 사람의 수고를 떠올리지 못한다. 우리 집 김치가 아닌 맛집만 남을 뿐이다. 안동찜닭을 다 같이 먹었지만 먹으면서 나눴을 우리들의 수다 같은 이야기가 빠졌다. 맛은 있었지만, 사람 사이에 흐르는 정은 없는 것과 같다.
궁편책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밥상머리 인문학』이라는 책을 선물 받았을 때도 나는 밀키트를 떠올렸다. 밀키트 시대에 ‘밥상머리’라는 말을 아는 젊은이, 혹은 청소년은 얼마나 될까? 오인태 시인의 사진과 글로 된 『밥상머리 인문학』은 개다리소반에 사계절에 어울리는 몇 가지 반찬과 밥이 놓인다. 소박한 밥상은 진솔하고, 정성이 있고, 이야기가 있다.
밥상에 가족이 모이는 시간이 없고, 간단하게 밀키트나 인스턴트 식품으로 한 끼를 해결하는 사회에서 가족애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사회가 그렇게 변해간다고 해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바람을, 골목을, 나무의 한 생을 떠올려야 한다. 밀키트의 편리성, 맛, 장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전부여서는 곤란하다. 밥 한 끼지만 그 한 끼는 생명 연장하는 것을 넘어 나와 우리, 가정과 가족의 의미를 느낄 수 있어야방송대 국어국문학과와 경인교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2008년〈조선일보〉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소설집『푸른 유리 신장』『검은 설탕의 시간』『달로 간 자전거』등과 장편소설『변사 기담』을 발표했다.

방송대 국어국문학과와 경인교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2008년〈조선일보〉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소설집『푸른 유리 신장』『검은 설탕의 시간』『달로 간 자전거』등과 장편소설『변사 기담』을 발표했다.

양진채 동문·소설가
방송대 국어국문학과와 경인교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2008년〈조선일보〉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소설집『푸른 유리 신장』『검은 설탕의 시간』『달로 간 자전거』등과 장편소설『변사 기담』을 발표했다.

한다. 
밥상인문학은 거창한 어떤 것이 아니라 상을 차리고, 밥을 먹는 행위 속에 흐르는 과정과 그 과정에 녹아나는 ‘정’이다. 서로 얼굴을 보고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엄마가 만들어준 어떤 음식이 고향처럼 남아 있는, 그런 시간 속에 흐르는 정을 느낄 수 있다면 마음이 얼마나 따뜻할까. 밀키트 전성시대에도 같이 먹는 집밥, 그 속에 담긴 ‘우리’ 이야기가 가장 맛있는 반찬일 때도 있다는 걸 잊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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