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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 가능한 경기가 많아지면

스포츠 팬들은 경기장을
떠난 후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그들은 각본 없는 드라마가
펼쳐지는 ‘죽음의 조’를
원하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기에 죽음은 인간이 처한 극단적이고 부정적인 상황을 비유할 때 종종 사용된다. 예를 들어, 끝모르게 성장하던 국내스포츠산업은 코로나19로 인해 연간 매출액이 30% 이상 감소했고,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던 영세한 스포츠업체가 줄줄이 폐업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이들이 그 상황을 죽음에 비유하곤 했다.


하지만 스포츠 팬들에게 죽음이라는 단어가 ‘최고의 재미를 느낄 기회’로도 비유될 수 있다는 점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죽음의 조(group of death)’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독일, 멕시코, 스웨덴이 한 조로 묶인 F조,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스페인, 독일, 코스타리카, 일본이 한 조에 있었던 E조가 대표적인 죽음의 조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스포츠 팬들은 왜 이와 같은 죽음의 조에 열광하는 것일까? 극히 낮은 확률에 의해, 혹은 우연이라는 통제 불능의 무엇인가에 의해 우열을 가리기 힘든 팀이 같은 조에 포함됐다는 사실이 왜 그들을 그토록 흥분케 하는 것일까? 심지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조별리그에서 어떠한 팀들과 상대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지극히 단순한 ‘조 추첨 행사’에도 스포츠 팬들은 열광한다. 이같이 죽음의 조는 분명 스포츠 팬들의 이목을 끄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스포츠 학문 분야에서는 죽음의 조가 가진 그 무언가를 ‘경쟁균형’으로 해석한다. 경쟁균형은 팀 간 전력의 균형이 유지되는 것을 의미하며, 경쟁균형이 유지되면 스포츠 경기의 본질적 가치인 경기 결과의 예측 불가능성이 높아진다. 스포츠 팬들은 예측 불가능성이 높은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는다. 실제로, 스포츠 팬들이 기대하는 치열하고, 박진감 넘치고, 예상치 못한 이변이 속출하는 경기는 예측 불가능성이 높은 죽음의 조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약 50m를 질주해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침몰시킨 손흥민 선수의 골과 같은 극적인 순간은 죽음의 조가 스포츠 팬들에게 선사하는 최고의 선물이다. 우리는 그 장면을 ‘카잔의 기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3년 후, 2026년 열리게 될 북중미 월드컵(정식명칭: 2026 FIFA 월드컵 유나이티드)는 최초의 3개국 공동 개최라는 점도 흥미롭지만, 오랫동안 논의됐던 출전국의 확대가 처음으로 적용되는 대회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본선 진출국이 확대되면서, 기존 4.5장이 배정된 아시아 지역의 본선 진출권이 8장으로 증가했다.


메가 스포츠 이벤트는 전 세계인이 누려야 하는 지구촌의 축제라는 측면에서 월드컵 본선 출전국 수의 확대는 분명 환영받을 만한 일이다. 다만, 그 이면에 가려진 출전국 수의 확대가 가져오게 될 부정적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출전국 수의 증가는 우리가 그토록 열광하던 죽음의 조가 만들어지는 가능성을 크게 낮출 것이다. 즉, 박진감 넘치고 치열한 경기는 줄어들고, 결과가 쉽게 예측되는 경기가 많아질 것이다. 직전대회 우승팀 아르헨티나와 같은 강팀들은 지금보다 훨씬 쉽게 1차 조별리그를 통과할 것이며, 확대된 본선 진출권으로 처음으로 본선에 진출하게 될 국가들은 전 세계인의 축제에 ‘승점 자판기’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와 같은 예측 가능한 경기가 많아지면 스포츠 팬들은 경기장을 떠난 후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그들은 각본 없는 드라마가 펼쳐지는 ‘죽음의 조’를 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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