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강성남의 그노시스

글자는 느리고 이미지는 빠르다. 그래서 요즘 젊은 세대는 글자로 생각하기보다는 이미지로 생각하고 자기를 드러낸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간의 정보습득에서 속도의 차이는 이런 사고행태에서 기인한다.


이미지 표현에서 화가나 영상제작자를 따를 자가 없다. 심지어 청각을 시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칸딘스키는 현대음악의 관심을 미술에 적용하려고 애썼다. 그래서 그의 작품명도「구성(composition)」이다. 구성은 음악 용어로 ‘작곡’이라는 의미다. 20세기 위대한 작곡가 쇤베르크와 그는 서로 격려하는 사이였다. 음악은 칸딘스키의 추상회화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음악가가 소리를 결합하듯, 화가는 색채와 형태를 결합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참고로 칸딘스키와는 반대로 미술 작품을 음악으로(시각을 청각으로) 표현한 작품은 무소르그스키의「전람회의 그림」, 드뷔시의「바다」등이 있다. 무소르그스키는 빅토르 하르트만의 그림 전시회를 보고 작곡했고, 드뷔시 작품은 일본의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판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오감 가운데 시각이 가장 강렬하다. 가장 강렬한 시각이기에 산다는 것도 결국은 본다는 것으로 압축되기도 한다. 그리스 사람에게 산다는 것은 우리처럼 숨 쉰다는 것이 아니라 본다는 것이었다. 시력을 잃는 건 바로 죽는다는 뜻이다. 보통은 ‘그는 마지막 숨을 거뒀다’라고 하지만, 그리스 사람은 ‘그는 마지막 눈길을 거뒀다’라고 말한다. 그리스 사람은 적을 벌할 때 거세보다 눈을 뽑는 것을 더 가혹하게 여겼다. 결국 오이디푸스는 산송장인 셈이다. 우리도 사람의 죽음을 ‘영면’했다고 말한다. 죽음은 시력을 잃는 것, 또는 영원히 잠든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은유적 사고에 기인한다. 이렇듯이 은유적 표현을 만드는 과정에서 형상화는 대부분 시각화를 통해 이뤄진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은유는 ‘천재’의 표상이다.
천재가 되고 싶다면 은유를 창조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낯선 것을 연결 짓는 능력은 바로
천재가 가진 핵심 능력이다.
보편적인 이론과 세계도 결국은
은유로 그려낸 한 폭의 풍경화다.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이다(Moon is the Oldest TV)」. 이건 어떤가? 백남준의 작품명이다. 종종 인용하는 대표적인 은유다. 은유는 환기(喚起) 작용을 한다. 즉 머릿속에 형상을 불러일으킨다. 은유는 추상에서 형상으로 ‘건너가기’를 가능케 한다.


달과 TV에서처럼 달이란 원관념(tenor)과 TV라는 보조관념(vehicle) 사이에는 틈이 있다. 이 틈이 클수록 은유의 효과는 커진다. 틈이란 낯섦이다. 이 낯섦이 ‘의미가 깃드는 처소’다. 일상적인 낱말은 이미 알고 있는 것만을 전달하기 때문에 생생한 것에 이르는 지름길은 은유를 통하는 것이다. 소금을 ‘바다의 사리(舍利)’라고 하듯이 말이다.


은유의 생명은 원관념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보조관념으로 형상화한 이미지에 있다. 은유는 우리 뇌에서 두 개 이상의 개념을 서로 섞어 새로운 개념을 만드는 ‘개념 블랜딩(conceptual blending)’의 산물이다. 죽음과 시력, 죽음과 잠, 달과 TV라는 서로 다른 이질적인 개념이 섞여서 은유가 창조된다. 보조관념으로 형상화한 이미지에서 마법적인 힘을 지닌 문장이 나온다.


프랑스 철학자 레지스 드브레(Rgis Debray)도 이미지가 지닌 마법적 힘을 묘사하기 위해서 “마술(magie)과 이미지(image)는 같은 철자로 구성돼 있다”라고 말했다.


뇌는 언어보다 먼저 패턴인식에 따라 작동한다. 마음의 탄생의 저자, 레이 커즈와일은 인간은 패턴을 인식하는 능력이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다면서 신피질은 기본적으로 거대한 패턴 인식기라고 주장했다. 우리의 뇌는 감각기관을 통해 얻은 정보를 먼저 패턴인식에 의해 시각적, 청각적, 후각적, 미각적, 촉각적 이미지로 만든다. 그다음 이 이미지들을 언어와 기호로 바꾸어 논리적으로 계산해 판단하는데, 이러한 일련의 작업 과정을 ‘생각’이라고 한다. 이런 작업이 머리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생각 없음’ 상태가 된다. 본래 생각의 순우리말도 계산하다는 의미의 옛말 ‘혜다’에서 나왔다. 생각을 순우리말로 ‘혜다’의 명사형인 ‘혜윰’이라고 한 것을 보면 마음을 읽었던 선조의 지혜를 엿보게 된다.


관찰은 그냥 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각적 이미지를 언어와 기호로 바꾸는 작업이다. 관찰이야말로 은유 형성에 필수적이다. 관찰은 일상의 가치를 다시 들여다볼 때 찾아오는 놀라운 통찰이다. 루트번스타인은 생각의 탄생에서 생각의 도구로서 관찰을 강조한다. 그는 “관찰은 생각의 한 형태이고, 생각은 관찰의 한 형태”라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은유는 ‘천재’의 표상이다. 백남준을 가리켜 미디어아트의 천재라고 부르는 이유다. 천재가 되고 싶다면 은유를 창조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낯선 것을 연결 짓는 능력은 바로 천재가 가진 핵심 능력이다. 보편적인 이론과 세계도 결국은 은유로 그려낸 한 폭의 풍경화다.


방송대 명예교수·행정학


2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0
댓글쓰기
0/300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