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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삶이 힘들면 어떤 취미라도 하나 잡아

숨 편히 쉬시길!
취미라는 것이 우리에게 무상의 기쁨을 주는 것이라면 ,
봉사활동은 가장 훌륭한 취미활동이 될 터이다.


“텔레폰!”


“텔레폰 잃어버렸니?”


서너 발짝 앞서가던 레인저가 들릴 듯 말 듯 한껏 목소리를 낮추어 말하며 나를 민다. 그 순간 귀를 찢는 듯한 포효가 내 귀청에 들려왔다. 그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없으니 공포감이라기보다는 어떤 절망감 같은 것이 엄습해왔다. 이미 레인저는 돌아서서 나를 밀치고 달아났고, 내 자신의 손도 보이지 않는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나는 이리 넘어지고 저리 뒹굴며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불빛을 향해 달렸다.


어찌어찌하여 숙소에서 다시 만난 레인저에 의하면, 그가 새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불을 비추는데 코끼리 두 마리가 보이더란다. 새끼를 데리고 있는 어미 코끼리는 아주 공격적이어서 그가 내게 “엘레펀!”이라고 경고를 한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너무 낮았고, 그 직전에  그가 블루투스 스피커로 올빼미를 불렀기 때문에 그때 전화기를 잃어버린 줄 지레 짐작하고 나는 당연히 텔레폰으로 들은 것이다.

 

산 속에 코끼리가 있다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나? 코끼리는 동물원에서나 보는 거잖아.”

정말 우리는 운이 좋았던 거다. 이 년 전에 오스트레일리아 생물학자가 대낮에 새끼 딸린 어미 코끼리에게 밟혀 죽었거든.”


다음 해 다시 갔더니 일하는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프로페써 텔레폰’이라고 부른다. 보르네오섬 다눔밸리에서의 일이다. 중국 운남성 루구호에서 고산병에 걸려 숨을 헐떡이며 의자에 기댄 채 밤을 꼬박 새웠던 일이나, 웨스트파푸아에서 안내인이 독사에 물려 한밤중 실려 간 후 다음 날 아침 텐트 근처에서 똑같은 뱀들이 여기저기 기어 다니는 걸 보고 기겁해서 텐트 안에서 한나절을 떨었던 일 등등 .


이런 끔찍했던 기억들이 가끔은 내 발목을 잡으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새를 보러 어딘가에 간다. 그 발길을 멈추지 못하는 것은 새를 보는 것이 나의 취미이기 때문이다. 새를 보는 것이 나의 직업이었다면 나는 그 위험들을 차마 무릅쓰지 못했을 것이다. 취미는 직업보다 훨씬 중독적이다.


탐조가 내 첫 번째 취미생활은 아니었다. 1999년 9월 프랑스에서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학교는 한참 소란스러웠다. 총장 물러가라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었고, 학생들은 본관 앞에 텐트를 치고 소란스럽게 농성하고 있었다. 얼떨결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생처장의 직을 맡게 됐다. 학교 당국과 학생들의 견해가 너무도 커서 그 간극을 좁히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학생 대표들이 대부분 직장인들이어서 회의는 밤늦게, 그리고 주말에 열릴 수 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몇 달이 흐르다 보니 몸과 마음이 성할 수가 없었다.


조용한 곳을 찾아 하루라도 좀 쉬어보자 시작한 것이 낚시였다. 토종붕어와 중국 수입 붕어도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낚시에 대해 무지했지만, 그 넓은 물속에 콩알만 한 미끼를 던져놓고 고기가 물기를 기다리는 건 터무니없는 일종의 종교적 행사같았다. 하지만 가끔 기적이 일어났을 때의 느낌은 꽉 막혔던 숨통을 탁 트이게 만들었다. 낚시라는 숨구멍이 없었더라면 처장직을 절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낚시를 하다 유년시절의 새를 다시 만나면서 탐조라는 취미를 즐기게 됐고, 이 취미는 지금까지 낡아가는 내 몸과 마음에 생기를 불어 넣어준다.


오늘의 삶이 힘들면 어떤 취미라도 하나 잡아 숨 편히 쉬시길! 나이가 드는 먼 훗날 삶은 분명 더 무료해질 터이니 어떤 취미라도 지금 시작하시길. 취미라는 것이 우리에게 무상의 기쁨을 주는 것이라면, 봉사활동은 가장 훌륭한 취미활동이 될 터이다.


오늘도 중랑천변을 걸으면서, 서투른 색소폰 연주를 듣고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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