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고등학생 딸아이와 함께
공부를 하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의 마음도 잘 알아줄 수 있을 것 같고
나도 제대로 시작도 못한 공부를
다시 해보고 싶었다
여행용 가방에 짐을 싸며 깊은 한숨을 쉰다. 내가 엄만지, 엄마가 난지…. 뭔가 해보려하면 내가 아프든지 부모님이 아프시든지 누군가 늘 아팠다. 작은 아이를 가졌을 무렵, 감기약을 먹고 임신이 됐음을 알고 난 후 임신기간 동안 이 아이만 건강하게 낳게 해주신다면 남에게 도움을 주는 봉사를 하겠다는 간절한 기도를 매일 저녁 드렸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도록 그토록 간절했던 기도에 대해 까맣게 잊고 살았다. 큰 아이와 작은 아이 첫 영성체를 시작하면서 본당 신부님의 봉사직 권유로 청소년들과 함께 활동하고, 지역의 건강가정지원센터와 연계해 봉사단을 만들게 됐다. 뭔가 부족함을 느껴 대건 청소년회 자원봉사 교육에 참여하게 됐다. 교육을 받아보니 더욱 갈급함을 느꼈다.
내 아이들을 키우면서 느꼈던 부모의 역할과 그동안 아이들을 양육함에 있어 아쉬움을 깨닫던 시기였다. 청소년위원회 차장을 맡으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여기저기 찾아보던 중 10년 넘게 알고 지내던 지인이 방송대 청소년교육과를 졸업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마침 2학기 신·편입생 모집을 한다 하여 등록을 하게 됐다.
등록은 했지만 졸업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방송대가 아닌가? 그 당시엔 청소년교육과가 인기학과여서 떨어지면 어떡하지? 걱정도 했지만 합격의 기쁨을 누리며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고, 스터디에도 가입해 공부를 시작했다. 1학기에 입학한 학우들끼리 이미 친목이 다져 있었지만 다들 잘 도와주셔서 포기하지 않고 2학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2학년 1학기가 되어 등록을 했는데, 다리가 아프시던 친정 엄마가 다리 수술을 꼭 받겠다고 하셨다. 몇 해 전 이미 왼쪽 다리 수술을 했었는데 이번엔 오른쪽 다리를 하시겠다는 것이었다. 1학기 등록금까지 냈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해보려했지만, 4월까지 버티다 결국 휴학을 신청했다. 그 때는 한 학기만 휴학하면 다시 공부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모든 것이 때가 있다더니 그렇게 병간호를 하고 나니 이 나이에 굳이 왜 이 공부를 하나싶어 재등록은 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기숙사에 있던 큰 아이가 학교생활을 힘들어해 이사를 하게 됐다. 아는 사람도 없는 동네에 고립돼 두문불출하며 살던 시절이었는데, 마침 학교에서 재입학 신청을 안내하는 문자가 왔다. 문자는 늘 왔었지만 내 눈에 들어온 건 그날이 처음이었나 보다.
어? 공부 다시 해볼까? 2020년 고등학생 딸아이와 함께 공부를 하면 좋겠다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의 마음도 잘 알아줄 수 있을 것 같고 나도 제대로 시작도 못한 공부를 다시 해보고 싶었다. 웬걸, 1학년으로 들어가 새롭게 시작하려던 찰나에 친정 엄마의 허리 수술로 또 공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포기했어야 했다. 전 인류의 미움에 대상인 코로나19가 나에겐 행운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보호자가 상주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데 더는 방해요소가 없었다.
흔히들 우리를 가리켜 코로나학번이라고 한다. 1학년 입학한 때부터 3학년이 되도록 동기학우, 선·후배, 교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2016년에 한 학기를 다녀봤다고, 스터디에 발이라도 걸쳤었다고 뭘 좀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3일 동안 출석하고 마지날 마지막 수업시간에 시험 보던 그런 시절은 사라졌고 과제물 방식이 혼자 공부하기에는 오히려 편했다.
그렇게 3년을 만나지 못했던 동기 학우들이 작년 하반기부터 슬슬 대면스터디에도 12명이나 나타났다. 청소년교육이라는 교집합으로 인해 내 아이와 함께 살아갈 우리 주변의 아이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성장해가는 나를 느끼며 4년을 돌고 돌아 다시 이 자리로 올 수 있음에 감사드린다.
청소년교육과를 공부하는 우리는 매일같이 쏟아지는 청소년에 관한 기사를 찾아보고, 알지도 못했던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핫 이슈에 흥분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청소년시설이 있었음을 알게 되고, 청소년 박람회와 청소년 어울림마당 등과 같은 활동으로 청소년들이 본인의 꿈과 진로 희망을 가지고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문화축제의 장으로 만들어 가는 것을 보며 우리의 미래가, 나의 공부가 쉽진
않지만 밝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이 공부를 하고 취업하기에는 어렵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고 타인을 이해하며 변화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시작하길 참 잘했다고 스스로를 격려한다. 내년에 졸업하면 또 뭘 할까 고민하는 내 모습이 과연 반 백살이 맞나 싶을 정도로 활기차고 행복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