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현대명저 106선 해제

환대에 대하여』(1997)는 『법의 힘』이나 『마르크스의 유령들』과 더불어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의 윤리·정치 사상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대표 저작 중 한 권이다. 이 책은 1995년에서 1997년까지 2년 동안 데리다가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환대’를 주제로 개최했던 세미나에서 두 개의 세미나를 발췌해 출간한 책이다. 이 책이 출간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이 책은 당시의 정세에 개입하기 위한 실천적 시도이면서 칸트 철학에서 유래하는 환대 개념을 더 첨예하게 사고하기 위한 철학적 시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중적 시도는 지난 30여 년 동안 이론만이 아니라 실천에서도 큰 영향을 미쳐서 오늘날 국제정치나 국제법, 이주나 난민 문제 등을 다룰 때 이 책은 가장 중요한 참고문헌 중 하나로 빠짐없이 거론된다. 책이 출간된 몇 가지 이유첫째, 이 시기에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이주자, 난민 등과 같은 ‘외국인’ 문제가 가장 중요한 정치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전후 고도성장을 거듭하던 유럽 여러 나라들은 1970년대 중반 오일쇼크를 계기로 깊은 경제적 침체에 빠져들었고, 이로 인해 산업구조 개편과 대량실업이 중요한 사회적 문제로 부각됐다. 일자리를 잃고 복지수당에 의존해 살아가던 하층 계급은 다른 나라 출신의 이주자들이 일자리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복지의 몫까지 가져가고 있다는 불만을 품게 됐고, 이러한 불만을 이주자와 외국인에 대한 혐오로 표출했다. 이 기회를 틈탄 극우 정치세력은 이주자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정책들을 제안하면서 큰 인기를 끌게 된다. 이로 인해 프랑스의 집권 여당 역시 이주자를 차별하는 법안을 제출하게 되면서 진보적인 지식인들과 시민들의 거센 저항을 받게 된다.둘째, 또한 이 시기는 임마누엘 칸트가 1795년 『영구평화론』을 출간한 지 200주년이 되던 해였다. 이 책에서 칸트는 자신의 비판철학에 입각해 국제관계에서 전쟁을 방지하고 영구적인 평화를 수립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칸트는 이 책에서 “보편적 환대(allgemeinen Hospitalitat)의 조건”을 모색하면서 환대라는 개념을 “한 이방인이 낯선 땅에 도착했을 때 적으로 간주되지 않을 권리”로 정의하는데, 단 이러한 환대의 권리는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것은 일시적인 방문의 권리요, 교제의 권리”일 뿐이라고 한정한다. 따라서 이 책은 당시의 정세에 개입하기 위한 실천적 시도이면서 칸트 철학에서 유래하는 환대 개념을 더 첨예하게 사고하기 위한 철학적 시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중적 시도는 지난 30여 년 동안 이론만이 아니라 실천에서도 큰 영향을 미쳐서 오늘날 국제정치나 국제법, 이주나 난민 문제 등을 다룰 때 이 책은 가장 중요한 참고문헌 중 하나로 빠짐없이 거론된다. 무엇이 이 작은 책을 그처럼 중요한 위치에 놓이게 했을까?데리다의 환대 이론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지 않고서도 ‘무조건적 환대’ 또는 ‘절대적 환대’를 머릿속에 떠올릴 것이다. 데리다는 흔히 이방인 내지 타자를 무조건적으로 환대할 것을 주장한 철학자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일까? 책을 조금만 읽어봐도 이것이 매우 그릇된 생각임을 깨달을 수 있다. 묻는 것과 묻지 않는 것 사이에서데리다는 이렇게 묻는다. “무엇이 더 정당하고 더 애정 어린 것일까? 묻는 것일까, 아니면 묻지 않는 것일까?” 여기서 묻는다는 것은 이름을 묻고 신원을 파악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여행이나 사업차 또는 공부 등을 위해 찾아간 외국의 공항에서 우리는 이름과 국적, 방문 목적 등을 묻는 해당 국가 관리의 질문에 익숙해져 있다. 이런 질문들을 통해 우리가 그들에게 위험하지 않은 존재임이 확인되고 난 이후 우리는 비로소 해당 국가에 입국할 수 있다. 이것이 대개 우리가 경험하는 환대의 절차, 곧 조건적인 환대의 절차다. 그렇다면 묻지 않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는 것, 이름이 무엇이고 국적이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우리나라에 왔는지 물어보지 않고 입국시켜주는 것, 요컨대 무조건적으로 환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데리다가 묻는 것과 묻지 않는 것 중 하나를 택하지 않고 둘 중 어떤 것이 정의로운 것인지 묻는 데서 볼 수 있듯이, 데리다의 환대론은 조건적인 환대에 대하여 무조건적 환대의 우월성을 무조건적으로 긍정하는 철학이 아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 곧 무조건적인 환대를 실행한다는 것은 사실상 국경을 모두 개방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모든 나라가 국경을 없애고 모든 사람들이 모든 나라들을 자유롭게 왕래하게 된다면, 세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평화로운 곳이 될까? 데리다는 단호히 부정한다. 왜냐하면 국경이 모두 개방되면, 소수의 부유한 나라들과 대다수의 가난한 나라들로 분할된 세계에서, 가난한 나라의 수많은 사람들이 소수의 부유한 나라들로 몰려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처럼 국경이 절대적으로 개방된다면, 이는 타자들에 대한 커다란 불안과 공포(panic), 아마 실제 일어날 수 있는 혼란보다 훨씬 더 큰 공포와 불안을 가져올 것이며, 더 많은 혐오와 폭력을 초래할 것이다.그렇다면 조건적 환대가 무조건적 환대보다 더 낫다는 뜻인가?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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