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음식과 권력

 나폴레옹은 마렝고 전투승리 후에 먹은 닭요리를잊지 못해 수시로치킨 마렝고를 즐겨먹었으며, 매 전투 때마다치킨 마렝고를 챙겼다. 본명 에밀 에르조그(1885~1967), 필명 앙드레 모루아는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평론가이자 전기 작가이며 역사가다. 해박한 식견과 문학가로서의 유려한 문체, 역사를 바라보는 예리한 통찰력을 지닌 그가 역사 서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52세 되던 해인 1937년 역사서의 고전이라 할『영국사』를 출간하면서부터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연합국사령부의 연락장교로 영국에 파견됐던 앙드레 모루아는 영국 각계각층의 인사들과 접촉하면서 이들의 인간성과 지식, 문화와 전통이 프랑스와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영국과 영국인에 대한 프랑스인의 시각을 바로잡아주기 위해 10여 년 간의 자료 수집 과정을 거쳐 영국의 기원에서부터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시대, 그리고 빅토리아 치하에 이르기까지 긴 역사를 서술한 위대한 영국사를 집필했다. 6년 뒤인 1943년에는『미국사』를 펴내며 역사가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한 그는 여러 곳으로부터 프랑스의 역사를 다룬 저서도 집필해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받는다. 프랑스인으로서 자국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망설이고 거듭 고사를 했으나 주변의 끈질긴 설득과 지식인으로서의 책무를 무겁게 받아들여 집필을 시작한다. 프랑스의 역사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마침내 모루와 특유의 객관성과 냉철함, 통찰력이 빛나는『프랑스사』가 1947년 출간된다.‘알렉산더’를 꿈꾼 예술 애호가앙드레 모루아는 말한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쿠테타로 집권한 나폴레옹(1769~1821)은 독재정치를 시작했고, 영국과 오스트리아, 독일과 전쟁을 벌여 유럽을 지배하기 시작했다고. 그랬다. 프랑스 혁명이라는 끔찍한 사회적 격변을 거치며 프랑스는 극도의 혼란 상태에 빠져 있었다. 나폴레옹은 쿠데타를 통해 제1통령이 된 후 종신통령을 거쳐서 황제(1804~1814, 1815)에 즉위했다. 프랑스가 루이 16세를 처형하고 공화정으로 전환된 지 10년 만의 일이었다.나폴레옹이 쿠데타로 등극하며 프랑스는 위태롭기는 하지만 그럭저럭 정치적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지중해의 섬 코르시카 출신의 야욕 넘치는 하급 귀족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인생의 대부분은 전쟁의 삶이었다. 그러나 그는 위대한 장군이 아닌 예술 애호가로 인정받고자 했다.   1798년 5월 19일 나폴레옹은 프랑스 함대에게 항해 명령을 내렸다. 이집트 원정대를 실은 수송선들이었다. 400척의 배에는 3만8천의 병사와 총 60정, 대포 40문, 그리고 3천의 기마병을 위한 1천200 마리의 말이 실려 있었다. 물론 목적지를 모르는 167명의 국립연구소 학자들도 타고 있었다. 나폴레옹도 1797년 그 연구소 회원으로 선발됐다. 막강한 영국 함대는 이들을 없애려고 지중해를 샅샅이 뒤지며 추적했다. 운 좋게도 영국 함대의 추격을 피한 프랑스 함대는 한 달 여 뒤인 6월 말 마침내 이집트 북부 해안 알렉산드리아에 상륙했다.프랑스군이 당도하기 전 대략 300년 동안 이집트는 오스만 제국의 일부였다. 영국 해군이 프랑스 함대를 찾아내 궤멸시켰다면, 프랑스 지성과 예술의 핵심이 사라졌을 것이다. 아마도 나폴레옹은 이집트 원정을 제국주의의 식민지 확보가 아닌 문명화를 위한 의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프랑스 군대와 동행했던 많은 학자들이 가져온 이집트 관련 기록과 그림, 유물은 유럽인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급기야 이집트에 대한 환상이 프랑스 전역에 퍼지며 이집트 열풍(Egyptomania)을 불러일으켰다. 1799년 7월 이집트와 시리아 원정 당시 발견된 로제타 스톤은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801년 영국이 오스만 제국과 함께 프랑스군을 알렉산드리아에서 물리쳤을 때 로제타석은 런던으로 운반됐다. 이후 1802년부터 대영박물관에 상설 전시되고 있다.식탁에 머무는 시간은 단 12분나폴레옹은 알렉산더가 되고 싶었다. 그는 스스로 알렉산더의 발자취를 따른다고 믿었다. 파리를 고대 로마처럼 세계의 수도로 만들기 위해 도시에 대한 근대화 정책을 추진했다. 현재 파리의 방사형 도로망은 나폴레옹의 작품이다. 또한 나폴레옹은 바티칸 지하 아카이브(수장고)에 보관된 귀중한 고문서들을 루브르로 옮기도록 했다. 식습관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밥을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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