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강성남의 그노시스

내가 고등학생일 때 담임선생님이 검정 매직펜으로는 ‘사랑의 매’를, 빨강 매직펜으로는 ‘너희들을 사랑한다’라고 쓴 야구방망이를 번갈아 휘두르면서 아이들을 훈육했다. 말이 좋아 훈육이지 폭력에 의한 진압 작전을 펼치는 듯했다. 하루는 나도 어머니 짐을 옮기는 걸 돕다가 아침 자율학습에 10분 늦었다고 열 대를 맞은 적이 있다. 다음 날 엉덩이 상처로 의자에 삐딱하게 앉았더니 자세가 불량하다는 지적까지 받은 적이 있다.


권위주의 정권의 국가 분위기가 고스란히 교실에서도 재연됐던 오래전 이야기다. 한 친구의 어머니는 ‘내 아이 좀 그만 때리고 사랑으로 지도해 달라’며 담임선생님에게 돈 봉투를 전했다. 폭력은 부패를 불렀다. 또 다른 친구 어머니는 ‘우리 아이 더 때려 달라’며 돈 봉투를 건넸다. 부패 또한 폭력을 유인한다. 나의 어머니는 맞고 온 아들을 보고도 어떤 행동을 취할 만큼 여유가 없으셨다. 3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어머니께서는 선생님 근황을 궁금해하셨다.


대한민국의 교실은 폭력이 진화하는 ‘갈라파고스’가 된 지 오래다. 선생이 학생을 때리던 폭력이 불과 한 세대를 거치면서 학생이 학생을 때리는 ‘친구 상잔’의 비극적 현상으로 나타나더니 작금엔 학생이 선생님을 폭행하는 상황으로 진화한 것이다. 여기에 대응하는 교육 당국의 처방은 ‘시간이 가면 해결되겠지’라는 무사안일주의로 일관했다. 아니 오히려 학생 인권을 우선시하면서 교권 신장에는 눈을 감았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2023년 5월, 6천75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교원들의 만족도는 23.6%로 급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직 만족도는 2016년에 변곡점에 달하고 이후 줄곧 하향 곡선을 그린다. 하향 곡선 이면엔 선생을 대상으로 한 고소, 고발, 소송이 증가했다는 점이 자리하고 있다. 최근 5년간 아동학대로 교사가 고소, 고발된 사례는 1천252건이다. 전체 아동학대 불기소 비율이 15%에 불과한 데 비해 교사의 불기소 비율은 54%에 이른다. 교사를 상대로 한 무고가 많다는 뜻이다.


불기소 결정이 날 때까지 교사의 마음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닌 게 분명하다. 이를 추동한 건 2014년, 법적으로 걸면 걸리는 정서적 학대에 대한 처벌의 도입이다. 「아동복지법」제17조(금지행위) 3호와 5호에는 ‘아동의 신체에 손상을 주거나 신체의 건강 및 발달을 해치는 신체적 학대 행위’와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 행위’를 각각 규정하고 있다. 입법 취지와 현실의 괴리가 큰 대표적인 사례다.


아동학대를 두고 ‘법 장사꾼’ 사이에서는 한쪽에서는 학생을 대리하겠다고 광고하고, 다른 한쪽은 당하는 선생님을 대리하겠다고 마케팅하는 지경이다. 큰 법 시장(市場)이 형성된 셈이다.


신학기를 앞두고 학교마다 담임 맡기를 피하고, 학생 지도교사를 맡길 선생님이 없는 현실이라고 한다.


공교육은 폭력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교직 생활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은 게 ‘문제행동, 부적응 학생 등 생활지도’다. 선생님 눈에 거슬리는 학생이 있으면 “야! 너 나와!”라고 불러내 훈육했던 시절은 ‘아! 옛날이여’가 되고 말았다. 그 후 “야! 너 나가”라고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지금은 대부분 선생님이 아예 침묵한다. 학생들이 핵폭탄과 같은 무기인 폰 카메라를 각자 소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영상이 뜨는 순간 폭탄이 된다. 여기에 대항할 선생님은 없다. 일선 교사들은 교육적인 훈육에는 면책권이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대 세습으로 이어진 학교폭력은 가짜 뉴스와 쌍둥이처럼 붙어 다닌다. 그러니 폭력에 대한 대응이 더딜 수밖에 없다. 가짜 뉴스가 진짜 뉴스보다 사이버공간에서 여섯 배가량 더 빨리 퍼진다고 한다. 마크 트웨인은 “진실이 신발을 신는 사이 거짓말은 세상의 절반을 달릴 수 있다”라고 했다.


조지 오웰은 “거짓이 판치는 세상에선 진실을 말하는 것이 혁명이다”라고 한 데는 의미를 왜곡하기 위해 ‘상반되는’ 원소를 억지로 이어 붙인 언어적 화학물질 간의 결합 때문이다.


말을 길게 발음하면 ‘마알’이 된다. 우리말샘에서 마알은 여러 가지 성분의 불순물이 혼합된 풍화 퇴적물의 일종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니 잘 가려야 하는 것이다. 말도 가려서 해야 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말은 생각의 외출복이다. 보통은 생각이 언어를 타락시키지만, 언어도 생각을 타락시킨다. 사람에겐 인품이 있듯이 말에도 ‘언품(言品)’이란 게 있다. 말의 원재료는 속마음이고 말의 포장지는 태도다. 품질이 나쁠수록 포장지는 화려하고 원재료가 부실하면 첨가제가 많은 법이다. 여기에 가짜와 거짓이 깃든다. 갈라파고스엔 폭력과 거짓말이 진화하고 있다. 진화의 고리를 끓을 대책이 필요하다.


교육(敎育)의 교(敎)자에 매가 들어 있지만, 매와 훈육 효과의 상관관계는 과학적으로 검증할 과제다. 나와 동료를 팼던 그 선생님은 요즘 평균수명에도 훨씬 못 미치는 연세에 타계하셨다.

방송대 명예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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