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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속 시공과 세상』, 『향가의 유산과 고려시가의 단서』의 저자이자 고전과 현재가 무리 없이 소통할 방법을 찾고 있는 서철원 서울대 교수(국어국문학과)의 신간인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한국 불교시의 기원을 돌아보기 위해, 7세기 중엽 의상의 「법성게」와 원효의 「대승육정참회」를 중심으로 당시 문학과 사상, 예술과 문화 등에 얽힌 자료들을 살펴본다.
의상과 원효의 성취, 나아가 불교 용어와 개념에 관한 이해는 향가의 시어 구축에 크게 이바지했음은 물론이고, 관음신앙을 중심으로 개개인의 구체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기도 했다. 이를 밑거름으로 조선 시대 이후에는 선불교와 유학의 자연관 등을 공유하며 자연과 인간에 관한 새로운 이해를 도출해 낼 수 있었다. 의상과 원효의 시어는 문학과 사상의 만남으로서 큰 의미를 가진다. 『한국 불교시의 기원』과 함께, 두 대사상가의 신라 초기 게송(偈頌)을 직접 탐구해 봄으로써, 향가와 한국 서정시의 시원(始原)을 향해 나갈 수 있다.

불교, 우리나라 서정시의 근원
아마도 삼국시대에 수많은 향가가 짓고 불렸겠지만, 현전하는 향가 25수는 모두 고려 시대 고승들의 기록에 의해서만 남아 전해진다. 『균여전』에 실린 「보현십원가」는 균여가 불교 포교와 대중 교화에 목적을 두고 지은 향가라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연에 의해 『삼국유사』에 기록돼 전하는 향가 가운데에도 다수가 불교, 혹은 그와 관련된 내용을 주제로 삼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삼국시대에 우리나라로 전해진 불교는 우리나라 서정시의 시초와 그 궤를 같이한다고도 할 수 있다.
향가 전공자이기도 한 서철원 교수는 이 책 『한국 불교시의 기원』에서 우리나라 서정시의 출발점에 서 있던 불교시를 주제로 한국 고전시가와 고대 불교의 역사적인 만남을 조명했다. 종교시 연구는 문학사와 사상사가 만날 수 있는 좋은 접합점이지만 그동안에는 용어와 개념 설명에 그친 경우가 많았다. 이 책에서는 지난날의 그러한 한계를 넘어 당시 문학과 사상, 예술과 문화 등에 얽힌 자료를 망라해 살펴본다.
원효와 의상은 사상사에 불가결한 자취를 남겼지만, 문학 연구에서는 대체로 설화 속 주인공으로만 기억되곤 했다. 그러나 의상은 「법성게」를 통해 10만여 자의 『화엄경』을 210자로 압축하는 이론의 깊이를 보였고, 원효는 270행의 장편 게송 「대승육정참회」로 실천에 관하여 폭넓게 성찰했다. 이 책은 시인으로서 의상과 원효의 업적이 비록 문학 연구에서는 잊혔을지라도, 향가의 시어와 표현에 직접 영향을 끼치며 고려 초 균여의 「보현십원가」에 이르렀던 과정을 강조했다.
불국사에 구현된 화엄의 세상, 화엄불국은 향가와 삼국유사를 비롯한 모든 창작물이 그린 이상이었다. 의상의 「법성게」 역시 반시(盤詩)의 형식과 원음(圓音)의 시어로 이를 구현했으며, 후세에 명효의 『해인삼매론』 반시를 거쳐 균여에게로 그 법맥이 이어졌다. 한편 「원왕생가」의 화자 엄장이 깨닫는 과정은 원효가 「대승육정참회」에서 묘사했던 참회의 과정과 일치한다. 이는 엄장이 원효에게 수행법을 직접 배웠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중생의 근기에 따라 다양한 수행법이 필요하다는 원효의 열린 생각 역시 균여에게 이어졌다. 결국 의상과 원효의 길은 균여에 이르러 다시 만나는 셈이다.
이외에도 저자는 의상과 원효, 균여 등이 활용했던 불교 용어가 향가의 시어로 활용된 양상, 향가 「도천수관음가」가 단순한 주술 가요가 아니라 의상이 구축한 관음신앙의 완성작이었다는 사실, 이 시기 화엄의 이상향과 상통할 만한 조선시대 불교가사의 무정설법(無情說法) 등을 후속 연구 과제로 주목했다.

의상과 원효가 이루어 낸 문학
우리는 항상 원효대사사진출처=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전통문화포털(617~686)와 의상대사(625~702)로 호칭해 왔다. 원효가 몇 년 먼저 태어났고, 사상사적으로나 대중 포교에 미친 영향력 측면에서도 의상보다 한 수 위라고 여겼던 까닭일 터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원효와 의상이 아닌, 의상과 원효의 문학으로 호칭한다. 문학적으로 의상은 시의 언어와 표현 자체에 집중했고, 원효는 이후 실천으로서 참회의 문제를 심화했기 때문이다. 그간 한 번도 주목하지 못했던 지점이다.
의상의 화엄 시학과 사상은 훗날 균여에게까지 이어지는데, 균여가 의상의 제7신으로 표현되는 것 또한 눈여겨볼 점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총론을 다룬 뒤에 제1부에서 먼저 의상의 「법성게」와 화엄일승의 시어를 다루고, 원효와 관련해서는 제2부에서 「대승육정참회」와 참회의 길을 분석했다.
향가에서는 불교적 표현의 의미가 두루 나타난다. 의상이 전파한 관음신앙이 8세기 후반 향가 「도천수관음가」로 숙성했던 성과나 화엄의 이상향이 조선 전기 불교가사의 자연관인 무정설법으로 확장했던 흐름 등은 모두 의상이 싹 틔우고 원효가 꽃피운 결실이었다. 그리고 균여를 거쳐 한국 불교시의 열매는 끊임없이 열린다.
결국, ‘의상의 시어와 원효의 참회, 그들의 게송과 균여의 향가가 한국 불교시의 기원을 이뤘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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