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강성남의 그노시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소설 『웃음』(2011)에서 인생의 구간별 자랑거리를 다음과 같이 꼽았다. “2세 때는 똥오줌을 가리는 게 자랑거리다. 3세 때는 치아가 나오는 게 자랑거리, 12세 때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자랑거리, 18세 때는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다는 게 자랑거리, 20세 때는 섹스를 할 수 있다는 게 자랑거리, 35세 때는 돈이 많은 게 자랑거리다.”


노년에 들어서면 다시 어릴 때로 돌아간다. “60세 때는 섹스를 할 수 있다는 게 자랑거리, 70세 때는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다는 게 자랑거리, 75세 때는 친구들이 남아 있다는 게 자랑거리, 80세 때는 치아가 남아 있다는 게 자랑거리, 85세 때는 똥오줌을 가릴 수 있다는 게 자랑거리”라고 작가는 썼다.


우리는 너나없이 똥오줌 가리는 것부터 배우고 인생의 마디마디를 통과하며 자랑스러워하다가 삶을 마감하기 전에는 다시 똥오줌 가리는 게 어려운 처지에 이른다. 도대체 늙는다는 게 무엇인가? 가족이나 주변의 선배들을 보면서 생각하는 주제다.


‘노인은 없다. 노인이라는 꼬리표만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엘렌 랭어의 책 『늙는다는 착각』(2022)에는 ‘시간 거꾸로 돌리기 연구’라는 실험이 소개된다. 70~80대의 노인들을 20년 전의 시간으로 되돌려 일주일간 독립적으로 생활하도록 했다. 그 시절의 뉴스와 영화를 보고, 그때의 생활을 그대로 재현했더니 일주일 만에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실험 전까지 글자가 보이지 않아 포기했던 독서나, 관절이 아파서 못했던 설거지와 청소는 물론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일까지 노인들은 스스로 그 모든 일을 해냈다. 청력, 기억력, 악력, 유연성, 자세나 걸음걸이까지 현저히 젊어진 것이다.

 

모든 인간은 마지막에는 일렬횡대다.

그래서 나이 든다는 건 희망이고 축복이다.

자연의 원리에 순응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매사추세츠의 월든 호수가 숲에 살았던 헨리 소로는

 “낙엽은 우리에게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를 일러 준다”라고 했다.

자연이 인생 교과서다.


이 실험을 통해 랭어는 노인들의 발목을 잡는 것은 신체적 한계를 믿는 사고방식이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는 사회적 시계를 중시해 20대에는 취업, 30대에는 결혼, 40대에는 내 집 마련 같은 과업에 집착한다. 하지만 신체 나이에 맞는 올바른 생활방식과 태도가 있다고 믿으면 60대와 70대에 남는 건 은퇴와 노화뿐이다. 구부정해지려는 마음을 펴는 건 태도라는 말이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굽은 마음을 새롭게 펴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대략 50세를 넘어서면 모든 걸 경험에 따라 해석하려고 해서 이는 새로운 것을 학습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모든 걸 자기 개인적 경험으로 재단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성공적인 경험에 기반하여 형성된 심리적 틀(schema)에 갇혀 있으면 ‘늙은이’다. 축적된 경험이 판단 능력을 향상할 것이라는 단순명제는 참 명제가 아니다. 노년에 버려야 할 것은 오래된 확신 같은 거다. 그래야 사고와 태도가 유연해진다. 또한 나이가 주는 권위에 의지하려고 생각하지 않는 게 좋다. 누구나 늙는데, 나만 늙고, 나만 경험한 것처럼 살면 외롭기 때문이다.


송(宋)나라 사람 주필대(周必大)의 『이로당시화(二老堂詩話)』에서는 노인의 좌절을 소개하는데 30년 전의 일은 모두 기억하지만, 눈앞의 일은 돌아서면 잊어버린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성호(星湖) 이익(李瀷)은 눈을 가늘게 뜨고 멀리 보면 잘 보이는데 눈을 크게 뜨고 가까이 보면 희미하게 보인다고 했다. 이들과 반대로 정약용 선생은 노인의 즐거움을 이렇게 말했다.
“대머리가 되니 빗이 필요치 않고, 이가 없으니 치통이 사라지고, 눈이 어두우니 공부를 안 해 편안하고, 귀가 안 들려 세상 시비에서 멀어지며, 붓 가는 대로 글을 쓰니 손볼 필요가 없으며, 하수들과 바둑을 두니 여유가 있어 좋다.” 다산의 말이 노인에겐 희망을 준다.


‘늙는 것은 욕심을 버리라’라는 자연의 다정한 배려다. 늙는 것은 욕심과 야망이 빚는 갈등에서 드디어 벗어나게 되는 창조주의 선물이다. 물컵을 들이켜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계곡의 물을 다 마실 거라며 덤비는 게 욕심(慾心)이다. 프랑스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었던 장 도르메송은 “나이 먹어서야 비로소 배운 것 중에서 가장 쓸만한 것이라면, 뭔가를 안 할 줄도 알게 된 것”이라 했다. ‘하지 않을 자유’는 노인에게만 주어진다. ‘할 자유’에 최선을 다한 노인에게 주는 보상인 셈이다.


우리는 언제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할 정도로 늘 ‘심리적 결제’를 해 둘 필요가 있다. 마치 올리브 열매가 익으면 자기를 생산해 준 자연과 대지를 찬미하면서, 자기를 길러 준 나무에게 감사하면서 땅에 떨어지듯이 각자의 여행을 끝내라는 게 스토아주의 철학자의 권면이다.


모든 인간은 마지막에는 일렬횡대다. 그래서 나이 든다는 건 희망이고 축복이다. 자연의 원리에 순응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매사추세츠의 월든 호수가 숲에 살았던 헨리 소로는 “낙엽은 우리에게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를 일러 준다”라고 했다. 자연이 인생 교과서다.

방송대 명예교수·행정학


3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0
댓글쓰기
0/300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