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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회랑 안으로 들어온 역사와 전통이 짧아 좁은 회랑 안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독재 또는 무정부의 상태로 이탈해 버릴 위험을 안고 있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계속 회랑 안에서 자유와 번영을 누리며 성장해 나가기 위해선 서로 타협하고 존중하는 성숙한 정치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이 책은 MIT 경제학과 교수인 대런 애쓰모글루와 시카고대 정치학 교수(전 하버드대 교수)인 제임스 A. 로빈슨이 2019년도에 내 놓은 것으로 ‘국가, 사회, 그리고 자유의 운명’에 대해 다룬다. 책의 부제가 그것이다. 이들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의 공저자이기도 하다.
전작에서 저자들은 한 국가의 번영과 빈곤을 초래하는 데 있어 제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유와 인센티브를 바탕으로 한 포용적인 정치·경제제도 하에서는 발전과 번영이 따르지만, 지배계층만을 위한 수탈적·착취적인 제도 하에서는 정체와 빈곤이 만연해진다는 간단명료한 명제를 결론으로 제시한 바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저자들의 논의를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 비유해 ‘신국부론’으로 부르기도 했다.

신국부론 혹은 신자유론
『좁은 회랑』은 ‘자유’라는 가치를 가장 우선시하면서, 왜 어떤 나라들은 자유와 번영을 누리고, 어떤 나라들은 독재치하에서 지배를 받거나, 무정부 상태에서 자유라는 소중한 가치를 누리지 못하는가를 다루는 ‘신자유론’이라고 할 수 있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먼저 회랑(corridor)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회랑은 ‘폭이 좁고 길이가 긴 통로’를 말한다. 이것이 문(門)과 다른 이유는 문은 들어갔다가 금방 나오는 시설을 말하지만, 회랑은 긴 통로를 말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자유를 성취하는 일이 일순간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의 긴 과정이기 때문이다.
어떤 나라는 회랑에 진입해본 경험이 전무하고, 어떤 나라는 회랑에 진입했다가 다시 회랑 밖으로 튕겨 나가는 사례도 있다. 어떤 나라들은 회랑 안으로 진입하려고 시도하지만 회랑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여전히 회랑바깥에서 머물기도 한다(예: 러시아). 반면 서유럽, 북유럽, 넬슨 만델라 이후의 남아공화국, 민주화 이후의 한국, 영국이나 미국같이 좁은 통로에서 벗어나지 않고 국가와 사회의 역량이 균형을 이룬 채 지속적으로 자유를 누리면서 성장하는 사례도 있다.


우리나라는 회랑 안으로 들어온 역사와 전통이 짧아

좁은 회랑 안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독재 또는 무정부의 상태로

이탈해 버릴 위험을 안고 있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계속 회랑 안에서

 자유와 번영을 누리며 성장해 나가기 위해선

서로 타협하고 존중하는 성숙한 정치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러면 회랑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이 성취돼야 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저자들은 회랑 안에 들어가는 방식은 각 나라가 처해진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국가와 사회의 힘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국가를 저자들은 ‘족쇄 찬 리바이어단(shackled leviathan)라고 부른다(리바이어던은 구약성경 욥기에 나오는 괴물로 토마스 홉스는 이를 전지전능한 존재로서 국가 또는 정부를 의미한다고 보았다).
국가의 힘이 커지거나 커질 위험이 보이면 사회의 세력이 국가나 정부를 적절하게 견제하고 통제해 정부의 힘이 지나치게 커지지 않도록 하면서도 정부가 국민의 자유와 복리를 증진하고 공공서비스 제공에 관심을 갖게 제도를 설계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를 저자들은 ‘레드 퀸 효과(Red Queen effect)’라고 부른다. 이는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레드 퀸이 앨리스에게 한 말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국가와 사회가 둘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빠르게 달려야 하는 상황을 말한다.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도편추방제도), 영국, 북유럽, 미국과 같은 나라가 여기에 해당한다. 특히, 유럽의 경우, 가위의 두 날 즉, 게르만 부족들의 상향식 의사결정 전통과 로마의 중앙집권적 모델이 합쳐져 족쇄 찬 리바이어던이 유럽에 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만약 회랑 안에 있던 국가의 힘이 강해진 만큼 사회의 힘이 받쳐주지 못하면 그 국가는 회랑 밖으로 밀려 나가버린다. 한편 1970년대 칠레의 사례와 같이, 국가와 사회가 서로 타협하기 보다 서로 양극화된 갈등으로 치닫는 경우를 ‘제로섬 레드퀸’이라고 부른다.
국가의 힘이 너무 강하고 사회의 힘이 약하면 독재국가로서 사회와 국가의 힘의 균형이 무너져 그 나라는 회랑 밖으로 나가버리게 된다(예: 프로이센). 저자들은 이것을 독재적 리바이어던(despotic leviathan)이라고 부른다. 이런 나라에서도 어느 정도까지는 경제발전이 이f뤄지겠지만, 사회의 힘이 약해 국민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통치자의 지배를 강하게 받는다. 따라서 이런 나라에서는 자유를 기반으로 하는 혁신이나 창의성이 결여돼 지속가능한 성장도 보장되지 않는다. 제3제국 치하의 독일, 고대 중국은 물론 지금의 중국이 이 유형에 해당한다.

국가의 힘이 강하고 사회의 힘이 약할 때
중국은 여태까지 회랑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안에 들어온 적이 없었고, 중앙집권적 독재국가라는 큰 틀 안에서 법가의 사상(법치)과 유가의 사상(덕치)이 그 나라의 통치이념으로 번갈아 가면서 혹은 융합돼 적용돼 왔을 뿐이다. 사회가 혼란스러우면 그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엄격한 법가의 전통을 따르다가 다시 경제가 어려우면 유가의 사상을 통치이념으로 적용해 어느 정도 경제적 유인을 허용해왔다. 그러다가 상행위가 번성해 어느 정도 경제적 발전을 이루면 중앙정부는 이를 위협으로 보고 불안을 느끼다가 다시 법가적 통치이념으로 회귀해 사회의 세력을 통제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것을 반복해 온 것이 중국의 역사다. 그래서 중국의 과거를 이해하고 앞날을 예측하려면 법가와 유가의 사상적 진동의 관점에서 보면 된다.
중국의 전통 법들은 사회를 관리하기 위한 것이었지, 자유와 정의를 지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중국의 전통에는 사회의 자율성이라는 개념이 부재하다. 따라서 재산권 보장도 잘 되지 않아 경제적 유인이 약했고, 경제활동에 대한 제약이 심했다. 그래서 경제인들은 관료들과 인맥을 형성해 중앙정부의 변덕에 대응하고 안전을 보장받고자 하는 유인이 강했다. 중국 정부가 경제적 성장과 변화를 정치적 불안 요인으로 인식하게 될 가능성은 늘 상존한다고 봐야 한다. 아울러, 실험 정신과 창의성을 통한 혁신 성장에도 한계가 있다. 창의성은 중앙정부가 창의성을 가지라는 명령을 통해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중앙 집중적 권력이 없는 ‘부재의 리바이어던’을 소개한다. 이는 국가의 통제가 약하거나 미치지 못해 무정부 상태의 혼란이 가득한 사회를 말한다. 독재적 리바이어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부재의 리바이어던 하에서도 자유는 없다. 부재의 리바이어던 하에서는 국가의 역할이 허약하고 집단 간에 불신이 강해 공공의 문제에 어느 집단이 주도적으로 개입하려 하지 않는다. 잘못했다간 정치적 세력을 키우려한다는 오해를 받기가 십상이다. 대신 사람들은 각 부족이나 소규모 집단들이 만들어 놓은 ‘규범의 우리(cage of norms)’에 갇혀 산다. 사람들은 부족이나 소집단이 만들어 놓은 자유를 억압하는 각종 규범의 우리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그 순간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신체의 일부나 생명을 잃을 위험에 처한다. 그래서 이를 가장 잘 대변하는 속담이 “병아리가 홀로 떨어지면 매가 채간다”라는 것이다. 매에게 채여가지 않으려면 다른 병아리들과 함께 우리에 갇혀 살아야 한다.
인도는 형식적으로 민주적인 사회이지만 규범의 우리, 즉 카스트제도가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강력한 지배력을 발휘한다. 계급 구조의 가장 하층에는 달리트라 불리는 불가촉천민(untouchable), 그 다음엔 수드라, 바이샤, 크샤트리아, 그리고 최상층엔 브라만이 있다. 이들은 같은 카스트 내에서 결혼해야 한다. 법률상 허용되는 경우에도 카스트족 내혼 규정을 어길 때 강력한 사회적 제재가 따른다. 물론 그 종말은 대개 죽음으로 끝난다. 대개 국가와 사회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규범의 우리가 약해지고, 국가의 규범이 이를 대체한다. 하지만 인도에서는 그 과정에서 오히려 규범의 우리가 강화됐고, 국가는 부차적인 것으로 변했다. 사회적 계층 간 분열로 레드 퀸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다. 지금도 인도에서는 그에 따른 정치적·경제적·직업적 불평등이 큰 정치적 이슈가 되고 있다. 인도는 국가라는 리바이어던이 자유를 제한하기보다 그 사회의 규범의 우리인 카스트제도가 자유와 경제에 끔찍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결과 국가의 힘도 약하고 사회의 힘도 약하지만, 사회의 힘이 조금 더 강하여 회랑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규범의 우리에 갇힌 상황이다.    

국가·사회 역량 모두가 떨어질 때
마지막으로 저자들은 독재의 리바이어던, 족쇄 찬 리바이어던, 부재의 리바이어던 세 유형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종이 리바이어던(paper leviathan)’을 소개한다. 이는 주로 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 남미의 아르헨티나와 콜롬비아 등 식민지 간접 통치를 당한 경험이 있는 개발도상국가에서 볼 수 있는 유형이다. 이들은 독재적으로 행동하지만 독재적 리바이어던의 역량이 결여된 초보적인 국가들이다. 이들 국가에는 유럽 식민국가들이 식민지들을 통치하고 조종하던 방식이 유물처럼 남아 있다.
종이 리바이어던은 사회가 결집해 국가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행정조직은 갖추고 있지만 사회기반시설을 구축하고 시민들에게 양질의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사회의 역량을 키우려는 시도를 거의 하지 않거나 오히려 방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회의 힘도 약하고 국가의 역량도 부족하다. 부정부패가 만연해 이들 나라에서 시민들이 행정서비스를 제대로 받으려면 관료와 개인적인 친분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콜롬비아 정치인 다리오 에찬디아는 자국의 민주주의를 ‘턱시도 입은 오랑우탄’으로 비꼬았다. 국가의 외양은 갖추고 있지만, 관료제가 원래의 목적대로 작동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결국 종이 리바이어던은 독재적 리바이어던과 부재의 리바이어던의 나쁜 특성들을 모두 합쳐 놓은 것이다.
미국에서 해방된 노예들이 아프리카로 귀환해 1882년에 세운 라이베리아는 독재와 부정부패, 두 차례의 내전에 시달리다가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됐지만, 여전히 국가의 역량도 사회의 역량도 종이처럼 얄팍한 수준이다. 그 나라에서 2013년 대학입시를 본 수험생 2만5천명중 합격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에서 복지국가의 기초가 된 ‘사회보험관련 서비스’(일명, 베브리지 보고서)가 시행되자 그것이 전체주의로 가는 길이 아닐까 우려했다. 그는 국가의 역할이 확대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하이에크가 간과한 것은 국가의 역량확대와 더불어 사회가 역량을 확대하고 국가에 대한 견제를 하는 이른 바, ‘레드 퀸 효과’를 간과한 것이다.

더 커져가는 리바이어던의 세계
우리는 점점 더 커져가는 리바이어던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그러면 커져가는 국가의 역량에 비례하여 사회의 결집을 지렛대로 활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하는 문제를 생각해봐야 한다. 개인의 권리를 강조하는 사상은 미국의 독립선언, 1789년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존 로크의 사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적인 개념은 1948년 유엔의 세계 인권선언에 나타나 있다.
베브리지 보고서를 쓴 윌리엄 베버리지는 『나는 왜 자유주의자인가?』에서 “자유는 정부의 자의적인 권력에서 벗어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결핍과 누추함, 다른 사회적 악에 매이는 경제적 예속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다. 또한 어떤 형태의 자의적인 권력에서도 벗어난다는 의미다. 굶주리는 사람은 자유롭지 못하다”라고 밝히고 있다.
루스벨트 역시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했다. 이러한 권리들은 국가와 사회의 엘리트층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경계를 명확하게 정하는 역할을 한다. 사회 내에 이러한 인식이 널리 확산되면 이 선들이 침범을 당할 때 사회적 결집을 통해 대응할 수 있게 된다.
독일의 루터교회 목사인 마르틴 니묄러는 왜 나치가 그렇게 독일 사회를 쉽게 지배했는지 다음과 같은 시를 통해 표현했다. 이 시는 홀로코스트 추모관에 새겨져 있고, 종종 추도행사에서 인용된다.


처음에 그들이 사회주의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기에.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에.

다음에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다음에 그들이 내게 왔을 때,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독일 사회가 나치의 지배에 저항하지 못했던 원인은 ‘아주 기본적인 권리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나치는 사회적 결집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사회의 집단을 따로 따로 분리해서 제거할 수 있었던 것이다. 

회랑 안에서 자유와 번영을 누리려면
홉스가 『리바이어던』을 쓴 시기는 1640년대 영국의 내전 기간이었다. 그 시기는 “끊임없는 공포, 폭력적인 죽음의 위험, 그리고 고독하고, 가난하고, 끔찍하고, 잔인하며, 짧은 인간의 삶”을 사는 무정부와 같은 시기였다. 그래서 그는 강력한 리바이어던의 존재를 생각하며, 그것을 종식시킬 강력한 존재로 리바이어던을 그렸다. 그 시대에는 강력한 국가가 무정부 상태에서 나타나는 부작용, 즉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필연적인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 날이 갈수록 리바이어던의 존재는 커져가고 있다.
정부는 규제를 늘리고, 정보를 수집하고, 세금을 더 많이 거두고, 복지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이에크의 우려처럼 모든 사회와 국가가 전체주의적으로 변해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회의 국가에 대한 견제 역량이 함께 커진 결과다. 결국 리바이어던은 양날의 칼이다. 리바이어던의 역량은 커져가야 한다. 하지만 그 리바이어던이 커져가는 역량만큼 국민의 기본권과 생명을 지켜주고 국민을 위해 편익을 제공해주는 존재가 되게 하려면, 즉 족쇄를 찬 리바이어던이 되게 하려면 사회의 역량도 비례해서 커져가야 한다. 사회의 역량이 커지지 못하면 결국 독재국가가 되거나 그로 인한 혼란으로 다시 무정부 상태가 되어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들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다행스럽게도 민주화 이후 족쇄를 찬 리바이어던으로서 좁은 통로 안에서 이탈하지 않고 꾸준히 성장해 나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회랑 안으로 들어온 역사와 전통이 짧아 좁은 회랑 안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독재 또는 무정부의 상태로 이탈해 버릴 위험을 안고 있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계속 회랑 안에서 자유와 번영을 누리며 성장해 나가기 위해선 서로 타협하고 존중하는 성숙한 정치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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