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마로니에

‘4년 동안 학교에서 뭘 배웠느냐’고 자문해 보면, 그저 멍해질 뿐 금방 생각나는 게 없다. 그때그때 주어지는 질문의 답을 찾아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 방송대의 공부는 나에게 피와 살이 되어 어딘가에 삶의 자양분으로 숨어 있을 것이다. 내가 어렵고 힘들 때 용기를 줄 것이며, 비뚤어지려는 삶의 방식을 바로 잡아 줄 것이다.


처음에는 학사 학위를 받아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었다. 물론 저마다 방송대에서 공부하는 목적이 다를 수 있지만, 아마도 나뿐만이 아니라 다수 만학도들의 한이 서린 욕망 아니겠는가. 사실 기왕에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바에야 그저 졸업장이 아닌, 좋은 대학에 진학해 마지막엔 박사학위를 쟁취하고 싶었다. 공부를 못해 평생 사회에서 스스로 겪은 수모와 자괴감을 보란 듯 달래보고 싶었다.


방송대 대전·충남지역대학에 문을 두드린 것은, 이곳 충남 아산시에 귀촌해 2년 간 보잘 것 없는 전원주택을 짓고 손보고 다듬는 시간을 보내고 나서다. 교육시스템이 원격으로, 전원생활을 하면서 매일 먼 학교에 가지 않고도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어 적격이다. 사력을 다해 공부한 결과 교육과학대학 수석의 영예를 안고, 6개월 조기 졸업까지 했다.


나는 칠십년 이상의 경험으로 꽤나 많은 것을 안다고 자부했지만, 방송대에서 새롭고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지식들과 마주쳤다. 주제가 주어지면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무던히도 고민하고 방황도 하고, 생각하고 찾아보고 정리하고 읽어보고 쉴 새 없이 그러는 사이 한 학기는 금방 지나간다. 심오한 책속의 내용을 얼마나 내 것으로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한 번씩은 훑어보았으니 그게 어딘가. 모든 게 지난 지금 생각만 해도 참 대단했고, 그저 헛웃음이 나온다. 내 핏줄에는 방송대의 새로운 맑은 수액이 원 없이 투입돼 도도히 흐르고 있다.


그렇다. 방송대에서 멋진 문학사의 학위를 받은 몸이다. 책의 내용들이 머리와 가슴 속에 들어가 무거운 것 같지만, 응어리지고 고뇌로 가득 찼던 공부의 한을 훌훌 털고 나니 날 것 같다. 누가 뭐래도 방송대는 내 인생에서 가장 잘 선택한 결단이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고 했던가, 나에게 딱 맞는 명언이다. 책과 교수님들의 명 강의는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했고, 안이한 일상의 고루한 생각들을 나무라듯 깨우쳐 주었다. 머지않아 내 삶의 마지막 장이 올 것이다. 때문에 하루하루 허투루 사는 것은 너무 아깝다.


법정스님은 『무소유』에서 “이제 내 안에서 들리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아도 안 되겠는가. 사실 책이란 한낱 지식의 매개체 아닌가. 거기에서 얻는 것은 복잡다단한 분별일 것이다. 그 분별이 무분별의 지혜로 심화되려면 자기응시의 여과 과정이 있어야 한다. 아마 이런 시간이 나의 가슴 속에서 숙성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내가 있음으로 이웃이 환해지고 향기로워질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라고 말씀했다.  


또한 공자의 『논어』 「헌문」에는 자기를 위한 배움, 즉 ‘위기지학(爲己之學)’의 이념을 강조했다. 배움이란 우리가 인간으로서 가야 할 삶의 길을 찾아내고 삶의 의미를 탐색해 가는 과정이며, 그 과정을 통해서 무엇보다도 내적인 자기 성장과 인격의 완성을 목표로 한다.


나의 학문은 적어도 입신양명과 부귀영화를 얻기 위함은 아니었다. 그럴수록 처음 목표인 박사학위가 눈에 선하다. 동시에 그 고난의 과정도 상상이 된다. 하지만 건강을 좀 추스르면 다시 도전해 볼 것이다. 공부는 힘들다. 그러나 그 열매는 몇 배 더 달콤하다는 것을 방송대에서 얼마 전에 확인했기 때문이다.  


1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0
댓글쓰기
0/300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