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강성남의 그노시스

“1794년 7월 27일은 습도가 높아 무더운 날씨였다. 프랑스 공포정치의 대명사인 로베스피에르는 군중 연설을 통해 자신을 반대하는 여론을 돌릴 계획이었다. 프랑스 혁명 가담자들 사이에서는 공포정치를 일삼던 로베스피에르의 실각에 대한 이야기가 은밀히 퍼지고 있었다. 연설 당일 로베스피에르의 몸 상태는 좋지 않았다. 때마침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졌고 연설을 듣기 위해 모였던 군중은 흩어졌다. 마지막 기회를 잃어버린 로베스피에르는 파리코뮌에 보내는 호소문을 작성하던 중 군인들에게 체포됐고 바로 그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로날트 D. 게르슈테 지음·강희진 옮김, 『날씨가 바꾼 세계의 역사』, 미래의창, 2022.

 

“당신은 늙어 죽지만, 우리는 기후변화로 죽는다.”


2018년 스웨덴 15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매주 금요일 학교 대신 의회로 찾아가 피켓시위를 하면서 외친 구호다. 그의 1인 시위를 계기로 기후변화에 대해 세계인들이 각성이 시작됐다.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금요일은 미래를 위해 시위하는 날’은 됐다. 3년 후인 2021년 노벨 물리학상은 기후 온난화가 인간의 탓임을 입증한 과학자인 마나베(Manabe Syukuro) 프린스턴대 교수에게 돌아갔다.

자연은 그 나름의 법칙이 있다.
자연이 가는 길을 인간은 협상할
수가 없다. 자연이 주는 경고를
경청하고 여기에 대응해야만 한다.
날씨에서 자유로운 역사는 없다.

 

마나베 박사는 1960년대 대기의 복사·대류 모델을 제안하고 대기의 열 구조가 수증기, 이산화탄소, 오존과 같은 온실가스에 의해 어떻게 변하는지를 연구했다. 지구 온난화 연구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더욱이 최초로 기상학 즉 지구과학 분야에서 수상자가 배출됐다는 점이 특기할 일로 평가받는다.


동양의 기후는 시간적인 개념의 기후다. 즉 계절 추이의 의미가 강하다. 서양의 기후는 공간적 개념의 기후로, 기후의 지역적 차이에 중점을 둔다. 기후는 일정 지역에서 보통 30년 이상의 기간에 걸쳐 나타난 날씨의 평균 상태를 의미한다.

 

한자어에서는 기후가 24절기(節氣)와 72후(候)의 합성어다. 기는 15일마다 변하는 것을 말한다. 중국 중원지역 대평원에서 해가 뜨고 질 때 얇은 층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모습을 그린 글자가 기(氣)다. 구름의 변화가 대기 상태를 잘 말해준다. 후(候)는 옛날엔 5일을 1후라고 했다. 이 때문에 시후(時候)는 때를 의미한다. 제주 방언 중에 ‘말 머리와 꼬리의 날씨가 다르다’는 말이 있다. 제주가 작은 곳이라지만, 날씨만큼은 변화무쌍 그 자체다. 시시각각으로 날씨가 다르니 풍광도 다르다.


날씨는 풍광만 바꾸는 게 아니다. 인류의 문명이나 국가의 운명까지도 결정짓는다. 미국 출신의 고고학자 브라이언 페이건은 문명과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에는 리더십이나 외세의 침략, 내부 분열, 불운 등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날씨가 핵심 요인이라고 단언한다.


날씨는 전쟁도 해내지 못한 격변을 불러온다. 기후변화가 도시를 멸망시킨 사례는 차고 넘친다. 페이건은 마야문명이 스페인 침략이 아닌 가뭄 때문에 멸망했다고 주장한다. 뛰어난 건축술과 농경술로 놀라운 문명을 구축했던 마야였지만, 수십 년간 지속된 가뭄으로 마야 인구는 3분의 1로 줄어들었고 코판이나 티칼 같은 도시는 이미 죽음의 땅이 돼 있었다고 한다.


당시 마야는 늘 그랬듯이 모두가 먹고살 수 있는 농업 생산성이 지속될 거라고 믿었다. 자신들이 만든 우물과 축대가 완벽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매년 같은 기간 비슷한 날씨가 지속된다는 가정 하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대로 되지는 않았다. 스페인이 침략하기 이전 이미 과거의 영화를 모두 잃어버리고 남은 세력은 보잘것없는 존재였다는 의미다.


성경에서도 언급하는 대도시 우르는 기원전 2200년쯤 가뭄 앞에서 힘없이 무너졌다. 기원전 1200년쯤 발생한 엘니뇨로 인한 기후변화는 히타이트 제국과 미케네 문명을 파괴했으며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를 도탄에 빠뜨렸다.


기후변화의 원인은 인간의 탐욕이다. ‘성장 중독’에 빠진 인류가 지구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지구는 그 능력보다 40%를 초과하는 140% 규모로 운용되고 있다고 폴 길딩은 주장한다(『기후변화는 어떻게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가』, 2023). 지금의 경제 규모를 유지하려면 지구가 현재 1.4개 필요하고, 2030년 무렵이면 한 개가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구 용량의 한계 탓에 지금과 같은 ‘양적’ 경제 성장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양’보다는 삶의 ‘질’에 토대를 둔 경제성장 모델에 주목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번 세기에 기온이 2도가 상승하면 생물다양성 가운데 절반이 사라질 것이고 아울러 슬기로운 사람인 호모 사피엔스도 멸종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렇게 경고한다. “신은 누구나 언제든지 용서하고, 인간은 때때로 용서한다. 그러나 자연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자연은 그 나름의 법칙이 있다. 자연이 가는 길을 인간은 협상할 수가 없다. 자연이 주는 경고를 경청하고 여기에 대응해야만 한다. 날씨에서 자유로운 역사는 없다.


 

방송대 명예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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