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이 통용되는 시대는 지났다. 사소한 다툼이 발생했을 때, 이웃끼리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면서 풀어가기보다는 법원으로 가서 시비를 가리는 시대. 커버스토리 1면에서는 일상에서 법을 만나는 순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더불어 방송대 법학과는 ‘야간·온라인 로스쿨 설치’라는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준비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이호행 법학과 학과장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2~3면에서는 9월 8~9일 화성에서 350여 명의 방송대 법학과 학생들이 참여해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 문제 △학교폭력 가해자 기소 여부 문제를 치열하게 토론한 ‘제19회 총장배 변론대회’ 현장을 소개한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최근 ‘인천 빌라왕’ 전세 사기 사건은 당사자는 물론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줬습니다. 부동산 계약 관련 민사 소송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주의가 필요할까요?
이번 변론대회의 주제이기도 하죠. 일단 전세 사기 사건은, 사기를 치는 범죄자에게 가장 큰 잘못이 있음은 명백하지만, 그 피해를 당하는 사람에게도 문제가 있습니다. 피해자의 대부분이 사회초년생이란 점에서 더욱 안타깝긴 하지만, 계약의 중요성을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은 피해자에게도 잘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부동산거래에 대한 기본적 교육이 안 돼 있다는 점에 기인합니다. 그렇게 소중한 보증금이라면 보호 방법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는데 몰라요. 표준임대차계약서는 어떻게 작성하는지, 계약에서 중개업자의 역할, 임차인이 반드시 점검해야 할 사항 등을 꼼꼼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요즘은 임차인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많은 보호조치들이 마련되어 있어요. 예컨대,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른 대항력과 확정일자제도는 임차권과 보증금에 대한 보호를 해줍니다. 특히, 계약 체결 당시에 스스로 해당 주택의 등기부를 열람해서 선순위근저당권자가 있는지 여부, 다른 임차인이 없는지 「부동산거래신고법」상 전월세신고 상황, 주택임대차계약증서상의 확정일자 부여 및 임대차 정보제공에 관한 규칙 등을 통해 확인해봐야 합니다. 그래도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그렇게 중요한 내용을 모르기 때문일 겁니다. 해결책은 결국 교육에 있습니다. 초·중·고는 물론 대학에서도 이런 교육이 수반돼야죠.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문제 중 하나가 학교폭력 문제입니다.
역시 변론대회 주제 중 하나였을 만큼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개인적 생각입니다만, 예전에는 별것 아니라고 여겼던 학생 간 싸움도 지금은 학교폭력에 포함돼요. 타인에 대한 가해를 정당화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이들이 소중하고 보호해야 할 존재라는 점에 대해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고, 이는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 속에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도 포함된다는 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해 학생을 처벌해서 평생 낙인을 안고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정말 바람직한 방향인가에 대한 고민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무조건 ‘피해자 우선 내지 피해자 보호의 관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가해자도 보호되어야 할 학생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학교폭력에 대한 문제가 지나치게 과장된 측면이 없는지, 조금 더 신중한 고민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교권에 대한 안전장치가 없어 교사가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해 충격을 줬죠.
교권과 수업권은 교사와 학생 인권의 충돌 문제입니다. 순수하게 학생과 교사 관계에서는 교사가 늘 우위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여기에 학부모가 개입하는 순간, 특히 초등학교 시절이라면 교사의 교육권 침해 측면도 충분히 고려되고 배려돼야 하지 않을까요? 「학생인권조례」로 학생 인권을 배려해야 한다는 시각은 커졌지만, 그 반작용으로 교사 권리가 위축된 상황이죠. 그래서 저는 늘 균형잡힌 시각으로 접근하라고 학생들에게 강조합니다. 여론에 휩쓸리지 말고요.
최근 10년간 민사 소송 건수는 35만건 사이를 오갑니다. 최근에는 작은 일에도 민사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고요.
사회 분위기가 기본적으로 정신적 여유가 없는 거 같아요. 다들 쫓기듯 급하게 살다 보니, 무슨 문제가 생기면 대화와 타협보다는 가장 손쉬운 공권력의 도움을 받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경찰이나 법원의 도움을 받겠다는 인식이 커진 거 같아요. 이 기저에는 그 동안 억눌려왔던 국민의 권리의식이 분출되는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정보가 유통되면서 국민의 권리의식은 높아진 상황이죠. 문제는 권리의식에 비례해서 같이 가야 할 책임의식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또 여론의 영향도 크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사건이 발생하면 여론에 떠밀려 법부터 만듭니다. 심사숙고하는 과정, 법이 만들어졌을 때의 여파를 충분히 고려해야 하는데 말이죠. 법은 강력한 도구입니다. 바람직한 법률이 되기 위해서는, 조금 더 깊이 있는 고민과 그 법률이 가져올 사회적 파장을 고려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국가 권력이 법 제도를 운용함에 있어서 너무 엄격하고 형식적이라는 이유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보죠. 누가 날 때려요. 맞서 싸우려면 정당방위가 인정돼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정당방위 요건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합니다. 둘 사이에 분쟁이 생기면, 누가 분명 먼저 때렸을 텐데도 도망가야 해요. 맞서 싸우면 ‘너도 때렸잖아’라고 말하며 정당방위가 성립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죠. 그런 상황에서는 누구나 공권력의 도움을 받길 원할 겁니다. 정당방위의 성립요건을 완화해 운용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휘말려서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결국 맞서야 할 텐데요. 통상 민사 소송의 절차는 어떻게, 얼마 동안 진행되는지 그리고 그 과정 중에 조언을 주신다면요?
민사소송에서 많이 실수하거나 착각하는 것이 ‘나는 당당하고 옳기에 굳이 대응하지 않겠다’라는 입장이죠. 이건 법절차를 무시하는 겁니다. 내용이 아무리 실체적 진실이라고 확신하더라도, 절차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걸 따르지 않으면 무조건 집니다. 소가 제기되면 국가가 개입하고, 그 틀 안에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절차를 준수해야 하거든요. 예를 들어 상대방이 소를 제기하면 2주 내에 답변을 보내야 한다든지, 1심에 졌을 때 2주 이내에 항소를 해야 한다든지 같은 내용이죠.
하나 더요. 일반인 중에 ‘주장’과 ‘증명’을 헷갈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주장은 ‘내가 이런 권리를 침해받았다’라고 말하는 거죠. 하지만 주장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증명이 중요하죠. 증명을 위해서는 증거를 제출해야 하는데, 증거의 핵심은 문서와 증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민사소송에 휘말리게 된다면 이 둘은 무조건 확보해야 해요.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안다’라는 말은 필요 없습니다. 법원이 모르니까요. 주장을 근거짓는 핵심인 문서와 증인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혼자서 버겁다면 도움은 어디서 받을 수 있을까요
단순하고 작은 분쟁이라면 본교의 법률봉사단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국가기관인 대한법률구조공단은 전국에 지부가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요즘은 시청, 구청에서도 상담센터를 설치하는 추세라 법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문호가 넓어졌죠.
다행히 문제가 잘 해결됐다고 해도 정신적인 피해와 감정적으로 받은 스트레스가 남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있을까요
약간 다른 맥락인데요. 일반적으로 민사소송은 재산권에 대한 구제를 위한 절차이고, 승소한 이상 피해자의 모든 권리가 회복되었다고 봅니다. 따라서 정신적 스트레스가 있다고 해도 이에 대해서 별도로 손해배상을 받을 수는 없고, 스스로 감수해야 할 몫이 되는 거죠. 다만, 교통사고를 당해서 몸이 다친 경우에는 약간 상황이 다릅니다. 상해가 발생하면 이와 더불어 정신적 피해, 이른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걸 위자료라는 명목으로 별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피해자가 소송을 통해 주장해야만 합니다. 주장하지 않으면 배상받을 방법이 없다는 점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한편, 형사소송은, 가해자의 범죄 행위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국가기관의 도움을 받아 가해자를 처벌하는데 목적이 있다는 점에서, 재산에 대한 피해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민사소송과 목적을 달리 한다는 점을 구별해야 합니다.
인공지능(AI)의 발달로 미래 사회에서 법조인의 역할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가끔 국민의 상식에 배치되는 판결이 언론에 보도되곤 합니다. 예컨대, 회사가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버스기사를 해임한 것이 적법하다는 판결이 있었어요. 이 판결은, 판사가 자기 주관에 따라 상황을 이해하고, 그 상황 판단에 기초해서 판결한 것인데(당연히 법적 근거는 존재합니다.), 국민의 눈높이에는 맞지 않는 측면이 있죠. 그런데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이슈화돼서 눈에 띄니까 국민들이 판결에 의문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소송에서 판사가 엄격하게 법조문에 얽매여 판단하기 보다는, (재량의 범위 내에서) 당사자의 사정을 고려해서 판단하는 경우가 상당합니다. 판사도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저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를 대입해서 판단하는 거죠. 하지만 AI는 기계ㆍ통계적으로 나온 정보에 기초해 판단할 수 있을 뿐, 인간이 가진 여러 사정을 모두 고려해서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AI 덕분에 판사나 변호사가 해야 할 업무 중 상당 부분을 줄일 수는 있겠지만, 개개인의 사정이나 인간의 고유한 감정을 고려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법이란 것이 결국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건데요, 다시 말씀드려서, AI는 통계적 확률에 의한 판단을 할 수 있을 뿐이므로, 그 판단이 무조건 타당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인간이 해야 할 역할은 있다고 봅니다.
고시낭인 양산 등을 이유로 사법시험이 폐지되면서 로스쿨이 도입된 지 15년이 됐습니다. 하지만 빈익빈부익부 등 새로운 문제들이 도출되면서 야간?온라인 로스쿨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데요. 방송대의 로스쿨 추진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재작년에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공청회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얽힌 수많은 단체들이 있어요. 우선 25개 법학전문대학원이 있고요, 또 대한변호사협회도 있죠. 당시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총선 공약이었지만, 실제로 입법까지 가진 못했죠. 여기에 변호사 시장이 이미 포화상태라는 주장에 더해, 억대 연봉 변호사와 그렇지 못한 변호사라는 변호사시장의 양극화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고 있죠. 사실 로스쿨의 당초 출범 목적은 법조계의 뿌리 깊은 학벌 구조 타파와 법률밖에 모르는 법조인체제로부터의 탈피였어요. 특히, 전자의 측면에서, 기존 명문대 중심 합격자를 전국에 분산시켜, 균형적인 법조 시장을 만들자는 거였죠. 그런데 결과는 오히려 반대가 됐어요. 로스쿨이 있는 대학의 학부생이 로스쿨로 진학하죠. 그리고 대부분의 로스쿨생은 서울소재 대학 출신입니다. 학벌이 더 공고하게 작용하게 되고,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날 수는 없는 상황이 된 거죠.
이런 상황을 깨려면요
문호를 개방해야죠. 사법시험 시절에는 학력 제한이 없었지만, 로스쿨 체제에서는 로스쿨을 졸업하지 않은 학생에게는 원천적으로 기회가 봉쇄됩니다. 그렇다고 로스쿨 체제를 없애자고 할 수는 없으므로, 현재의 로스쿨 체제 내에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바로 야간ㆍ온라인 로스쿨입니다. 이 문제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이뤄져야 하는 문제니, 우리 학생들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꾸준히 관심을 갖고 문제제기를 해주어야 합니다. 다음 총선 때 또 공약으로 나오겠죠. 다만 지난번처럼 공허한 약속이 되지 않도록, 실질적 공약이 되게끔 학생들의 관심이 더욱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번 변론대회 출전팀들을 보니 수준이 매우 높더라고요. 법학과는 어떤 커리큘럼으로 학생들의 준비를 돕고 있나요
변론은 기본적으로 논리적인 설득과정입니다. 상대방 주장을 인정하는 걸 전제로 내 주장을 덧붙여 논박하는 거라, 법철학, 헌법, 형법, 민법, 상법, 행정법 등이 다 필요해요.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다만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소양은 ‘리걸 마인드(legal mind)’입니다. 어떤 결론이 나기까지의 논리적 추론 과정을 이성적으로 잘 구성해낼 수 있는가가 리걸 마인드죠. 리걸 마인드 형성의 핵심은 개념이나 용어의 정확한 이해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커리큘럼으로 말하자면, 법학과 과목이 전반적으로 다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웃음).
법학을 배워서 어디에 활용할 수 있을까요?
법학과 학생 중에 공인중개사가 많아요. 법무사, 법률사무소 사무장, 로펌 직원, 경찰, 군인, 공무원, 교수도 있고요. 무슨 말인가 하면, 일을 하다 보면 항상 법이 얽히게 돼 있다는 겁니다. 단순히 분쟁과 소송 절차만 다루는 법조계에 국한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현실을 보면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이 법과 연관돼 있어요. 생활의 지혜로서 배우는 법도 필요하다는 거죠. 전세사기도 민법을 배웠다면 안 당했을 겁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법을 법조계라는 협소한 영역의 전문가들에게 국한된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로 보지 말고,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상식적 도구로 보고, 익힐 필요가 크죠. 교통사고만 해도 그래요. 사고 나면 보험사부터 부르는데, 도로교통법도 알아야 하고, 합의가 안 되면 교통사고분쟁조정위원회도 가야 해요. 경찰에 신고하면 범칙금도 나오고요. 보험사가 다 해결해주는 게 아니잖아요? ‘법 없이도 산다’라는 옛말이 있긴 하지만, 법 없이 살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니까요.
일반인에게 법학은 어렵고 다가가기 힘든 학문이라는 선입견이 있죠. 하지만 일상생활을 살아가며 맞닥뜨리는 상황에서 법지식이 필요해지기 마련입니다. 법학과 친해지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결국은 많이 보고 듣고, 배우는 수밖에 없어요. 사회에서 발생하는 많은 사건·사고들을 법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이걸 내가 법적으로 알아야 접근할 수 있다는 거죠. 다람쥐 쳇바퀴 같기도 하고, 순환논법 같기도 한데요. 제가 사건·사고 당사자가 되면 관련된 법을 세세하게 알 수밖에 없겠죠. 사전에 아무리 법을 공부해도 체화되지 않지만요. 예를 들면 임대차계약은 누구나 하는 흔한 계약입니다. 이걸 어떻게 할 것인지 경험하면서 계약서 쓸 때 무얼 알아야 할지, 내용 기재하는 부분부터 경험이든 사례든 통해서 수업처럼 배워야 할 겁니다. 주변의 사건·사고이야기를 듣거나 수업을 듣는 것이 간접경험일 테고요, ‘나 홀로 소송’을 진행하는 경우가 직접경험이겠죠. 결론은 자신이 법과 가까워지면 된다는 겁니다. ‘법 없이도 산다’라는 옛말이 있긴 하지만, 법 없이 살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니까요. 당사자가 된다면 그런 점을 유념하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