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회 방송대문학상 예심 심사를 종료하고 며칠 뒤 문학상 진행을 담당했던 기자에게 편지 한 통이 날아왔습니다. 자신이 에세이 부문에 응모했다고 밝히면서 ○○여자교도소에 있는 방송대 문화교양학과 2학년 학생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실 다른 문학 장르와 달리 에세이 부문 응모작들은 모든 글이 가슴 뭉클한 사연을 담고 있습니다. 올해 113편의 응모작을 하나하나 넘기면서 기자는 때로는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고, 한동안 멍해지기도 했습니다. 저마다의 아픔을 녹여서 빛나는 순간을 담아낸 ‘선물’을 보내온 것이죠. 그런 글들을 응모해 준 얼굴 모를 학우님들에게 먼저 깊은 감사와 고마움을 먼저 전합니다.
에세이 예심에서 느꼈던 가슴 뭉클한 기분이 가시기 전에 편지가 도착한 탓인지 편지는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습니다.

그늘진 곳에서도
위클리를 애독하며 꿈을 꾸고
용기를 내어 도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폭염과 함께한 옥중 글쓰기
“타는듯한 여름, 참 많이 더웠던 여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뜬금없는 서신에 다소 당황하신 건 아닐까 염려가 되는 가운데 방송대 학보 위클리를 유익하게 잘 읽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렇게 서신을 드리게 된 건 개인적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입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편지글은 4쪽 분량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8월 초 위클리에 게재된 기자수첩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문학상」을 인상 깊게 읽었다고 썼습니다. 그 글에 힘입어 어렵게 원고를 마감하고 제출해서 다소 홀가분한 마음으로 한 주를 보내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했습니다.
무엇이 그에게 감사하게 느껴진 것일까요. 옥중이다 보니 위클리를 조금 늦게 받게 되는데, 그는 7월 20일경에 받은 학보에서 방송대문학상 공고를 발견했더군요. 지난해 여름방학에는 대상포진을 앓았던 터라 뜻이 있어도 응모할 수가 없었다고도 했습니다. 기회가 다시 온 셈이죠.
“언젠가 한 번쯤 제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에세이 부문 ‘선물’이라는 주제를 보는 순간 아! 하고 번개처럼 스쳐가는 글들을 어쭙잖은 실력으로 끄적거리던 중, 7월 하순부터 너무 더웠잖아요. 정말이지 선풍기 한두 대에 의지해 생활하고, 방에서 공부하는 것조차 잠시 쉬어야할만큼 모두가 힘들고 지쳤던 시간을 핑계로 그만 노트를 접었더랬습니다. 우선은 용기가 나질 않더라고요.”
그는 두 가지 이유에서 마음을 접을까 했노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는, 부끄럽고 부족한 것이 많은 자신과 같은 사람의 글을 누가 공감하고 읽어줄까? 하는 생각에 겁이 났고, 다른 하나는 쟁쟁한 글솜씨를 지닌 분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어서였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마음을 접고 있을 무렵에 ‘방송대문학상은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는 글을 접하고 다시 용기를 내고 도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죠.
“‘글쓰기 축제’가 저처럼 망설이고 겁을 내는 사람들을 위한 것처럼 ‘…방송대문학상은 학우들에게 선물과 같은 존재다. 문학은 다양한 세계를 상상하고, 다른 삶의 가능성을 엿보는 창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많은 학우들이 이 축제의 자리에 참가해 서로가 받은 선물의 의미를 곱씹어 보면 좋겠다’라는 글이 주춤거렸던 제 심장에 와 닿았습니다.
그래, 지금이 아니면 내가 언제 또 이런 글을 써보겠나…하는 생각이 들어, 구석에 꽂아놨던 노트를 다시 펼쳐 밤낮으로 정말 열심히 썼습니다. 36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한 글자 한 글자, 단어를 쓰고 문장을 만들며 내 설움과 내 감정에 치우쳐 소리죽여 울었던 날들도 많았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컴퓨터가 거실에 없으니 오로지 수기로 작업하고 이튿날 학과장에 잠시 나갈 때마다 워드작업을 하는 게 너무 힘들고 오래 걸렸지만, 사회복귀과 직원분의 도움으로 무사히 원고를 끝마치면서, 왜 기자님께서 선물같은 시간이라고, 학우들이 남은 시간을 문학상 응모에 조금쯤 할애해 함께 축제의 자리를 키워보기를 권했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습니다.”
인생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 방송대문학상
그는 결과를 떠나서 글을 쓰는 내내 지난 시간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지난 시간을 성찰할 수 있었던 게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선물 같은 기회’였다고 강조하면서 말이죠. 그의 편지는 다시 이렇게 이어집니다.
“처음에는 단 하루도 못 살 것만 같은 날들이 하루하루가 쌓여 이만큼의 세월이 흐르기까지, 저한테는 힘들고 아픈 시간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보다는 더 기쁘고 감사한 날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선물 같은 ‘글쓰기 축제’를 통해 가족에 대한 사랑과 감사함, 그리고 글을 쓰는 보람을 찾은 것 같아서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옥중에서 에세이를 쓰면서 그는 새로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어렵게 원고를 마치고 나니 어느새 8월이 훌쩍 지나갔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그에게 올해 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고 값진 의미가 있었던 여름’이었습니다.
방송대가 그늘진 곳, 사회적 약자에게 희망의 사다리가 되어준 것처럼, 위클리도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옥중의 학우님이 다시 환기해주셨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늘진 곳에서도 위클리를 애독하며 꿈을 꾸고 용기를 내어 도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망설이고 힘들 때마다 지표가 되어주는 위클리 덕분에 제 평생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된 것 같아서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