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 전 내가 다니던 여자상업고등학교의 목표는 대기업, 은행에 얼마나 많은 학생을 취업시키는가 하는 거였다. 거기에 휩쓸려서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어 하는지 그런 걸 생각할 사이도 없었고, 누군가에게서 너는 어떻게 살고 싶니? 라는 질문을 들어본 기억조차 없다.
학교가 추천한 대기업에 무난히 취업했고, 스스로가 어른이라 생각하며 성실하게 회사생활을 하던 중 일과는 무관하지만 지식의 부족함을 느끼는 일들이 자주 발생했다. 대학을 가면 알 수 있으려나? 대학에 가면 뭘 배우게 될까 하는 궁금함과 함께 대학을 가고 싶다는 희망을 갖던 중 퇴근길 전철 안에서 누군가 선반위에 두고 간 신문을 보다가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의 신입생 모집 광고를 보게 됐다.
‘일하면서 배울 수 있다’는 그 문구가 내게는 너무나 강렬히 다가왔고, 나는 바로 경제학과에 입학원서를 제출했다. 시간 맞춰야만 들을 수 있었던 라디오방송 때문에 집으로 달려가던 일, 아버지께 녹음을 부탁드리면 어느 때는 앞이 잘리기도 하고 어느 때는 뒤가 잘리기도 했지만, 그에 의지해서 공부를 하던 시절이 낭만적이기도 하다.
이후 방송대를 다녔던 게 언제인가 싶게 바쁜 세월을 살기를 30여년, 현실에 부딪히는 상황들이 나를 다시 방송대 교육학과로 이끌었다. 어릴 때와는 다르게 하고 싶은 만큼 열심히 공부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지역대학에서 학우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하는 스터디는 공부만이 아닌 그 무엇이 있는 방송대의 매력을 한껏 느끼게 해 주었고, 여전히 끈끈한 유대관계로 정기적인 모임을 하고 있으니, 평생의 친구를 방송대에서 만났다고 할 수 있겠다.
학부를 마치고 바로 방송대 대학원 평생교육학과에 지원했다. 좀더 넓은 세계가 나를 부르는 기분이 들었다. 방송대 대학원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탐색하는 단계였다고 할 수 있다. 나의 장래를, 진로를 50대 중반 이후에서야 방송대와 방송대 대학원에서 생각해 보게 됐다고 하면 누군가는 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살아야 할 날이 많이 남아 있고, 그때까지 나는 어떤 신나고 즐거운 일을 하면서 살 것인지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평생교육을 전공하는 박사과정에 있다. 노인의 평생교육분야를 연구의 주제로 삼고 이론공부와 함께 현장을 찾아 바쁘게 지내고 있다. 이 바탕에는 나를 지식의 세계로 들어올 수 있게 해 준 방송대가 있음에 감사한다.
나는 내가 만나는 상황들을 외면하기보다 하나씩 해결해 왔던 것 같다. 궁금할 땐 궁금함을 해결하고, 하고 싶을 때는 해 보면서 하나씩 해결해 온 것이다. 존 듀이가 아동에게는 지속적인 흥미와 호기심을 일깨우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나는 뒤늦게 그 과정을 거치는 듯하다. 늦게 뿌려진 학습의 지속을 위한 씨앗이 이제서 싹트는가 보다.
린드만(Eduard Lindeman)이라는 학자는 우리 능력의 범위와 한계를 발견할 때 자유로워진다고 했다. 이를 잘 해석해 보면 목표를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범위에 두고 성취하게 되면 우리의 능력은 증대되고 그 다음은 또 새로운 목표가 생겨남을 의미할 것이다. 이러한 반복이 결국은 나 자신을 더욱 성장시키는 힘이 아니었을까.

어떤 이유로 방송대를 찾더라도 방송대는 그 모든 것을 품어줄 수 있는 대학이다. 부족함이 없는 학문적 소양을 닦을 수 있으며, 최선을 다해 주시는 교수님들, 함께 공부하는 학우들과 원우들…. 이 모든 것이 방송대에 있다. 생각해 보면 나의 가장 빛나던 젊은 시절도 방송대와 함께였고, 인생의 후반기를 설계하는 지금도 방송대와 함께다. 방송대에서의 든든한 경험은 내가 평생 가지고 갈 자산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