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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라는 단어가 멀리 있는 행운처럼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가 닿을 수 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이제 ‘100세’는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할 수 있는 현실이 됐다.


실제로 100세가 넘어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는 노인들을 접하면서 우리는 기대와 걱정이라는 이중 감정에 시달린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명제 앞에서 더 오래 살고 싶고 오래 살 수 있다는 기대는 우리를 설레게 한다. 반대로 은퇴 이후에 경제적, 사회적으로 고립의 생활과 건강 문제를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한국 사회는 2023년 기준 ‘고령사회’에 속한다. 전체 인구 대비 노인인구 구성비가 18%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유엔 기준에 의하면, 65세 이상 인구가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한다. 지금 추세라면 2024년 말이나 2025년 초가 되면 ‘초고령사회’가 된다.


고령사회는 사회적으로 다양한 변화를 동반한다. 문제는 그 담론 구조가 대부분 부정적인 측면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특히 건강과 재정 문제는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부담이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하더라도 생물학적 노화와 죽음을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다. 다음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경제적 부담 역시 크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고령사회의 이슈를 건강과 재정 문제로 환원해 강조하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다. 그렇게 되면 국민연금이나 노령연금, 건강보험과 같은 복지 문제로만 치환되기 때문이다. 모든 노인을 ‘늙은 사람’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환원할 수 없듯이, 노인을 한 개인으로, 하나의 삶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개별성이 지닌 아름다움은 갓난아이든 노인이든 사라지지 않는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호명되는 ‘노인’이 아니라 골목에서 동네에서 호명되는 ‘개인’이 중요하다. 그러한 과정은 지역공동체가 이 문제를 어떻게 끌어안고 갈 것인가 하는 점과 관련된다. 단순히 복지 대상으로 바라볼 것인지, 아니면 개별성을 품은 존재로서 존중할 것인가 하는 차이가 있다.


그런 점에서 서울시 성북구와 송파구에서 진행하는 ‘이야기청 프로젝트’는 주목할 만하다. 이 프로젝트는 청년 예술가들이 사라져가는 이 시대 노인들의 이야기를 예술 과정으로 담아내고자 하는 취지에서 시작했으며, 애초 서울시 지원으로 시작했다가 지금은 자치구 단위에서 이어가고 있다.

 

‘이야기청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한 화가 김정헌은 이렇게 말한다. “이야기는 항상 상대방을 전제로 한다. (…)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말하는 권력을 누리고 싶으면 남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현대사회는 이야기가 넘치지만 정작 이야기가 사라졌다. 화자는 많지만 청자는 없다. 모두 자신의 이야기만 한다. 정치인이 그렇고, 유튜버가 그렇고, 부모가 그렇고, 선생이 그렇고, 상사가 그렇다. 우리는 서로 이야기를 나눠야 하고, 그 출발은 골목에서, 동네에서 다양한 세대가 더불어 출발해야 한다. “좋은 이야기는 더 나은 세계를 확장시킨다.”


우리는 또한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기다리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상상해야 한다. 그것은 반복되는 삶에 대한 긍정과 함께 신체와 감정, 삶의 조건의 변화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일 것이다. 삶이 이벤트로 점철되는 시간이 있지만, 노년의 삶은 자극적인 순간보다는 지루한 일상의 연속으로 이뤄진다. 일상의 사소한 것들과 반복적인 습관들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의 문제다.

 

우리가 당연히 누렸어야 했던 것은 없다. 나의 존재를 어떻게 남길 것인가. 100세 시대에 던져야 할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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