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10월 27일 1박2일 일정으로 방송대 출판문화원과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이 함께 진행하는 ‘평화의 길을 가다’ 답사 프로그램 제1기 탐방단에 참여했다. 손금산 부산 총동문회장의 제안을 받고 망설임 없이 신청했다. DMZ 접경지역은 지방에서는 쉽게 접근하기 힘든 곳이기도 하고, 이번 기회에 탐방을 통해 DMZ의 어두운 이미지를 다른 관점으로 재해석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손금산 부산 총동문회장과 부산지역 총동문회 임원으로 구성된 팀은, 부산역에서 집결해 서울역으로 가는 5시 10분발 첫 기차에 올랐다.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선 일행은 시간에 맞춰 기차를 탔다는 안도감과 함께 가벼운 요기를 하면서 어떤 일정이 우리를 기다릴지 들떠 있었다.
어느새 서울에 도착한 일행은 대학로 방송대 본관 앞으로 이동했다. 탐방을 기획한 방송대학보 〈KNOU위클리〉의 최익현 선임기자, 해설을 맡은 건국대 남경우 연구원, 박솔지 연구원과 전국에서 모인 일행과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누고 버스에 탑승한 건 9시 40분이었다.

필자는 열린 대학 방송대 국어국문학과 졸업생이다.
사람은 존재하는 한 배움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입학했고,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이번 탐방을 통해 다양한 각도에서 세상을 보는 유연성,
자신의 고정된 틀을 깨고 나오는 용기,
상대방을 챙기는 따뜻함과 배려하는 마음을 배웠다.
드디어 탐방이 시작됐다. 우리를 태운 리무진 버스가 대학로를 벗어나 서울 북부로 접어들어 목적지를 향해 올라갈수록 서울 북한산의 거대한 자락이 병풍처럼 서서 가을옷을 입은 장관을 연출하는 게 뒤로 지나갔다. 전날 비가 내려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날씨가 쾌청해서 단풍이 절정인 완연한 가을을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드넓은 고석정 꽃밭이 보이자 여기저기서 감탄이 새어 나왔다. 1차 목적지인 철원 DMZ평화공원 일대인 고석정(孤石亭) 근처에 도착한 건 11시 50분이었다. 예약한 식당을 찾아 점심을 들었는데, 고향인 부산에서 멀리 떨어진 탓인지 이 또한 맛있었다.
점심을 먹고 철원의 일등 명승지인 고석정을 찾았다. 임꺽정의 활동 무대로 알려진 고석정은 신비로운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한탄강의 한가운데 치솟아 있는 기암 사이로 간밤에 별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내린 듯 옥빛 강물이 눈이 부시도록 반짝거렸다. 아쉬움을 안고 철원 9경 중 하나인 주상절리 은하수교로 이동했다. 주상절리로는 가장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는 곳이다. DMZ 접경지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탐방지의 풍경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발걸음을 돌리기가 싫었지만, 빠듯한 시간은 일행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같은 철원이지만, 그때와 지금이 달랐다
1일차 일정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소이산전망대를 오르는 데는 느린 걸음으로 30분 정도가 걸렸다. 해설을 맡은 남 연구원은 “눈앞에 보이는 곳이 비무장지대다. 흔히들 훼손되지 않은 천혜의 보고라고들 하지만, 논농사를 위해 많은 농약을 사용하고 있으며, 곳곳에는 아직도 지뢰가 도사려 있는 긴장감 감도는 곳이다.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조금씩 비무장지대 가까이 접근해보는 것은 평화의 의미를 성찰하고, 실천하는 소중한 노력이 될 것이다”라는 설명을 들었을 때, 아들이 바로 이곳 철원에서 군 생활을 한 탓에 몇 번 면회를 왔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때는 DMZ라든가, 분단, 평화 등의 단어를 생각할 수 없었다. 그저 몸 건강히 제대하기만을 바랐는데, 같은 철원이었지만 그때와 오늘은 전혀 다르게 체감됐다.
저 멀리 고지전을 벌이며 수많은 청년들이 피 흘렸던 백마고지, 그리고 그 너머로 피의능선이 시야에 들어왔다. 강원도 북부 산악지대에서 이렇게 확 트인 평야를 접하니 기분이 묘했다. 몇 차례의 화산 폭발로 인해 새롭게 생겨난 ‘젊은 땅’이 철원이라고 들었는데, 과연 그랬다. 소이산 전망대에서 광활하게 펼쳐진 DMZ와 저 멀리 북녘땅까지 마주하고 있으니 만감이 교차했다.
어디선가 끼루룩끼루룩 두루미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찾아 시선을 돌렸지만, 두루미들은 보이지 않았다. DMZ 남북의 하늘을 자유롭게 횡단할 수 있는 두루미는이곳 철원에서 겨울을 보내는 대표 철새다.

소이산전망대를 내려와 1일차 마지막 탐방지인 철원노동당사를 찾았지만, 거대한 장막에 갇혀 있어, 실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내년 12월까지 보수공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인상적인 것은 철원노동당사 앞 길옆에 서 있는 도로원표였다. 평양, 원산 등지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새겨져 있었는데, 곳곳이 총탄으로 문드러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서 있는 이 도로가 철원의 주도로로, 과거 서울과 철원, 평양을 잇던 시절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첫째 날의 일정이 끝나고, 일행은 든든한 식사를 한 뒤 숙소로 돌아왔다. 휴식을 취하고 나서 DMZ 접경지역을 돌아본 소감을 나누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발하고 창의적인 의견을 비롯해 일행의 다채로운 생각을 들어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여행지의 왁자한 밤풍경과는 전혀 다른, 방송대인들만이 할 수 있는 ‘진지한 토론’이었다.
고요한 비무장지대, 평화를 생각하다
이튿날은 민통선 안의 여러 곳을 탐방했다. 제2땅굴과, 평화전망대, 그리고 원산 가는 마지막 역인 ‘월정리역’을 찾았다. 민통선 안이라 전날과는 달리 ‘통제’ 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했다. 답답함과 갑갑함이 찾아들었다.
제2땅굴은 머리를 숙여가며 걸어야 해서 조금 힘들었다. 나중에 한 선배가 땅굴 안에서 잡초를 찍었다며 사진을 보여 주었다. 역사의 아픔이 고인 구석진 곳에서 생명을 피운 잡초가, 여태껏 접근하기 어려운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소외되다시피 한 이곳과 왠지 겹쳐 보였다.
다른 일반 관광객들과 합류해 올라간 평화전망대는 눈앞에 옛 태봉국의 흔적을 간직한 채 소슬한 풍경으로 다가왔다. 멀리 북한 GP와 펄럭이는 인공기가 포대경 안에 비쳤다. 소이산전망대에서 내려다보던 풍경과는 달랐다. 분명 너무나도 아늑하고 평화롭게 보이지만, 어딘가 칼날같은 긴장감이 엄습하는 듯했다.
철원은 전쟁이 남긴 분단과 갈등을 품은 지역이자 삶과 죽음, 희망과 어둠이 공존하는 곳이다. 드넓은 들판에는 여느 시골의 풍경처럼 아름다운 생명이 자라고 있지만, 전쟁의 상흔을 안고 고달프게 살아가는 주민들의 애환도 고스란히 깃들어 있다. 우리가 늘 밝은 빛만 쫓아다닌다면 그늘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늘도 언제든 우리에게 곁을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필자는 열린 대학 방송대 국어국문학과 졸업생이다. 사람은 존재하는 한 배움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입학했고,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누구보다 진지하게 공부한 열정에 자부심을 느낀다. 이번 탐방을 통해 다양한 각도에서 세상을 보는 유연성, 자신의 고정된 틀을 깨고 나오는 용기, 상대방을 챙기는 따뜻함과 배려하는 마음을 배웠다.
글을 마무리하며 편안하고 뜻깊은 여행에 초대해 주고 힘들 때 늘 조언을 아끼지 않는 손금산 회장, 멋진 탐방을 기획한 방송대학보의 최익현 선임기자와 건국대 남경우·박솔지 연구원, 그리고 함께 한 1기 탐방팀 여러분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