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써 12월. 직장 일로, 학업으로 바쁘게 살아온 2023년을 돌아본다. 그 과정에서 이룬 성취도 있지만, 정작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고민은 미뤄둔 것만 같다. 또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가족과 보낸 시간도 적어졌다. 193호 커버스토리는 ‘연말을 보내는 세 가지 키워드’로, 진정한 어른의 모습, 가족의 소통, 돌아본 2023년을 짚었다. 1면에서는 ‘꼰대’만 가득하고 ‘어른’은 사라진 시대에 진정한 어른은 누구인지 영화 「어른 김장하」로 생각해 본다. 2면에서는 기쁘다 방송대 교수(생활과학부·가정복지상담학 전공)에게 건강한 가족관계 회복을 위한 조언을 들어본다. 3면에서는 방송대 학우들이 ‘연말, 가족’을 주제로 돌아본 2023년 이야기를 소개한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2023년 한국 사회. TV, 스마트폰에서 접하는 뉴스에서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곳. 비상식적인 일들이 하루가 멀다고 벌어지고, 그 안에서 그럴듯한 소리처럼 들리지만, 각자의 욕망에 이끌려 살아가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경쟁사회. 본받고 싶은 ‘어른’은 간데없고 ‘꼰대’들만 가득한 세상에, 실로 추앙하고 싶은 어른이 있다면? 최근 개봉한 휴먼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감독 김현지)는 우리 시대에 필요한 어른이란 과연 어떠한 존재여야 하는가를 알려준다. 우리 사회에 어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인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안도감까지 느껴진다.
수백억 기부하고도 모든 인터뷰 고사
1944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난 김장하 선생은 가난 탓에 동성중학교 졸업 후 학업을 잇지 못하고 1959년 삼천포 남각당한약방에 점원으로 취업했다. 주경야독 끝에 1962년 한약종상 시험에 합격했지만, 미성년자라 1년 후 면허를 받아 이듬해 남성당 한약방을 개업했다. 1973년 진주시로 이전해 60년 동안 한약방을 지켰다.
김장하 선생의 원칙은 ‘박리다매’. 당시 한약사들이 기술료 명목으로 한약값을 비싸게 책정했지만, 그는 아픈 이들을 외면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저렴하게 약값을 매겼다. 약관의 한약방 원장 실력이 입소문을 타면서 한약방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남성당 한약방이 싸고 질이 좋다’라는 이야기가 퍼지며 전국에서 주문이 쇄도했고, 당시 가장 많은 세금을 낸 한약방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렇게 번 돈으로 그가 펼친 활동은 그야말로 셀 수 없을 정도다. 1천 명이 넘는 장학생을 후원했다. 1983년에는 학교법인 남성학숙을 설립해 명신고등학교를 개교했으며, 1991년에는 공립으로 전환해 관련 건물과 토지 모두를 국가에 헌납했다. 1992년에는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초대이사장으로 후원했다. ‘형평운동’은 1923년 백정과 양민이 모두 평등한 사회를 만들자는 백정의 외침으로 시작된 한국 최초의 인권운동으로 올해 100주년을 맞이했다. 지역신문인 <진주신문>부터 지역 서점, 지역사 연구단체, 극단, 이웃, 여성 보호 시설, 환경운동 단체, 문학가까지, 진주시와 인근 도시에 김장하 선생의 선한 영향력이 미치지 않은 곳을 찾아보기 힘들다. 2022년 남성당 한약방을 폐업하면서 남은 재산은 전부 경상국립대에 기부했다.
‘무주상보시’ 정신이 몸에 밴 사람
하지만 김장하 선생은 자신의 선행을 알리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대통령들의 초대를 거절한 것은 물론이요, 단 한 번의 언론 인터뷰도 하지 않았고, 그 어떤 상도 받지 않았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들을 도우면서도 결코 자기 옷 한 벌 허투루 사지 않은 사람. 집도 없이 한약방 3층에 살면서, 30년 넘게 써 다 해진 방석과 소파에 앉아 환자들을 만난 사람. 김장하 선생은 영화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내가 돈을 벌었다면 결국 아프고 괴로운 사람들을 상대로 해서 번 것인데, 그 소중한 돈을 함부로 쓸 수 없었다.”
김장하 선생은 “돈이란 똥과 같아서 모아두면 악취가 나지만, 밭에 골고루 뿌려두면 좋은 거름이 된다”라는 신념으로 주변을 도왔다. ‘줬으면 그만이지’라는 마음. 준다는 생각도 없이, 줬다는 기억도 없이 타인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것. 불교 용어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정신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
똥은 쌓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습니다.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핍니다.
「어른 김장하」는 조금 특이한 다큐멘터리다. 주인공인 김장하 선생 인터뷰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절대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이 김장하 선생의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7년간 그를 취재해 온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전 편집국장과 김현지 경남MBC PD는 김장하 선생의 주변인을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그의 도움을 받은 이들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김주완 기자는 100명이 넘는 주변인을 인터뷰한 과정을 이렇게 회고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통기자가 불쑥 찾아가면 뭔가 안 좋은 일로 뒤를 캐러 온 것은 아닌지 경계하거나 일단 거부하는 게 다반사인데, 이번취재 과정에서는 ‘김장하’라는이름만 대면 모든 사람들이 순식간에 협력자가 됐다. 또 이 사람을 만나면 저 사람을 소개해 주면서, 퍼즐을 맞춰가듯 취재가 술술 되는 과정이 즐겁고 행복했다.”

“몇 명에게 장학금을 주셨습니까?”라고 묻자 그저 먼 산만 쳐다보던 김장하 선생. 그런 선생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던 김현지 PD도 새로운 취재 방법을 찾아냈다. 장학생 이야기만 하면 김장하 선생의 눈빛이 부드러워진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 이후 장학생을 수소문해 함께 김장하 선생을 찾아가며 취재를 이어갔다. 선행을 한사코 숨기려는 김장하 선생과 그가 사회에 끼친 선한 영향력을 어떻게든 알리려는 기자와 PD의 미담 추적기가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평범한 사람이 지탱하는 사회
2019년에 열린 김장하 선생의 깜짝 생일 잔치에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다. 문형배 헌법재판소 재판관이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공부를 계속하기 힘들었던 그의 사정을 들은 김장하 선생이 ‘당연히’ 대학까지 장학금을 지원했다. 이날 문형배 재판관은 울먹이며 이렇게 말한다.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러 갔더니 선생님께서 자신에게 고마워할 필요 없고, 자기는 이 사회에 있는 것을 너에게 주었을 뿐이니 혹시 갚아야겠다고 생각하면 이 사회에 갚으라고 말씀하시더군요.”
남성당 한약방이 문을 닫던 날 찾아온 한 장학생은 김장하 선생에게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평범하게 살아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머리를 숙인다. 그의 어깨를 다독이며 김장하 선생은 말한다. “그런 걸 바란 게 아니야.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야.”
부끄럽지 않기 살기 위하여
평생을 강직하게 살아온 한 인물의 이야기는 영화 내내 묵직하게 관객의 가슴을 울린다. 김장하 선생이 평생토록 지키고자 한 신념은 어디서 온 것일까? 김주완 기자는 김장하 선생의 조부, 남명 조식 선생, 공자의 가르침에 그 바탕이 있다고 설명한다.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식’이라고 실천 학문을 강조한 남명 선생의 가르침을 김장하 선생은 그의 생으로 보였다. 『논어』 「학이」편에 나오는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이면,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아’ 역시 그를 붙든 하나의 문장이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겠는가’라는 뜻이다.

『맹자』「진심」편에 나오는 ‘앙불괴어천부부작어인(仰不愧於天俯不於人)’, 즉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고, 사람을 향해서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사는 것’ 또한 김장하 선생이 평생 좇았던 가치다.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기 위해 평생을 노력해 온 것. 일례로 그가 설립한 명신고에 정부가 전교조 교사를 해고하라는 압력을 행사하며 세무조사에 착수하겠다고 겁박하자 “그렇게 나오면 나는 오히려 쉬워요. 잘못한 게 없거든”이라며 미소 짓는다. 60년간 진주를 치유해 온 한약사 김장하 선생의 삶은 개인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진 2023년의 한국 사회에 감동을 주면서, 어떤 어른으로 살아야 할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연말, 직장 일에 가사, 자녀 양육, 부모님 돌봄에 학업까지. 숨 가쁘게 살아오다 보니 어느덧 달력 한 장만이 남았다. 세밑, 힘든 마음을 잠시 내려두고 「어른 김장하」를 만나보면 어떨까. 내년에는 조금 더 나은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