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제47회 방송대문학상

박영숙(영어영문학과 4학년)

 

 

미희
단장, 42세, 소프라노 파트

소라
신입 단원(가입 3개월 차), 35세, 소프라노 파트

인자
평 단원, 52세. 알토 파트. 평일 오후에는 감정노동이 필요한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선영
평 단원, 47세. 메조 파트, 2년 차 (15개월 차)

누군가
평 단원


때(시간): 합창 연습 1시간 후 쉬는 시간 (오전 11시)
장소: 화장실


「꽃밭에서」 잔잔하게 피아노 음악이 깔리고 화음이 어우러진 합창 소리가 들린다. 합창단 연습 후 쉬는 시간, 화장실이며 변기 10칸, 세면대 3대, 파우더룸에 큰 거울과 테이블 1개, 의자 3개가 마련되어 있다. 미희와 인자가 노래 부르며 화장실로 들어온다.

미희: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꽃이여…
인자:  (화음을 넣으며) 오늘 연습곡 너무 좋다. 완전 힐링이야.
미희: 그죠. 이 노래 좋더라고요. (약간 들떠서) 전국합창제 가능할 것 같아요? 3개월밖에 안 남았어요.
인자:  출전하면 좋지. 조금 일찍 공지하지 그랬어?
미희:  지난주 임원 회의 때 갑자기 나온 안건이에요. 으샤으샤 해보자는 건데 반대 못 하죠. 뒤숭숭할 땐 단합할 이슈가 필요해요. 창단 때 한 번 참가하고는 다시 엄두도 못 냈죠. 전국대회라 쟁쟁하잖아요.
인자:  자기는 ‘아니오’ 소리를 못 해서 그래. (웃으며) 그땐 우리 진짜 못했어. 지금 실력이면 해볼 만하지? 나 일하는 날만 안 겹치면 좋겠다. 어느 팀 간데? 레이디 싱어즈 합창단은 출전하겠지?    
미희:  그러겠죠. 협회 회의 가면 알아볼게요. 협회장이 우리 봄 공연 보더니 의외로 잘한다고 놀랐답니다. 
인자:  내가 창단 멤버잖아. 우리 5년 차 중 지금이 제일 잘하는 것 같아. 미희 단장, 기 펴도 돼!

미희는 파우더룸과 제일 가까운 첫 번째 변기 칸으로, 인자는 두 번째 변기 칸으로 들어간다. 소라, 손거울 보며 화장실로 들어오느라 두 사람을 못 본다. 소라, 콧노래를 흥얼거리다 「얼마나 좋을까」 고음을 노래하는데 음정이 맞지 않는다.

소라: 왜 이게 안 되지? 아까는 잘 됐는데. (다시 부르지만, 음정이 맞지 않는다) 오전 연습은 역시 무리야.

소라, 화장을 고치려고 손가방을 여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파우더룸 의자에 앉아 전화를 받는다.

소라:  (코맹맹이 소리로) 뭐하긴! 합창 연습 중이야. 주차 만차에 에어컨도 시원찮고 오늘 또 새 곡 나갔어. 곡이 어렵네. (짜증이 조금 섞여) 아침 거르고 왔는데 간식도 없고, 알잖아. 아침부터 어떻게 고음이 나겠어? 필라테스? 그거야 일대일 주 2회 레슨 받지. 그 정도 투자는 필수! 합창이랑 안 겹쳐. 겹치면 당연히 필라테스 가지. (도도하게 몸을 한 번 움직여 주고) 이 몸매는 다 투자야, 투자! 몸이 괜히 명품이 되는 거 아니에요. 

선영이 화장실로 들어오자, 소라, 선영을 본다.

소라:  잠깐만, 이따 내가 걸게. (전화를 끊고 반갑게 선영에게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소프 신입 임소라예요. 딴 파트는 통 모르겠네요. 언니는 메조? 알토? 어느 파트에요?
선영:  메조 박선영이에요. 단원이 많이 바뀌어 나도 잘 모르겠어요.
소라:  선영 언니, 너무 잘하셔서 부러워요.
선영:  잘하긴요. 1년 조금 넘었는데 정기연습 안 빠지고 집에서 조금 연습하면 금방 따라와요. 다른 파트는 나도 잘 모른답니다.
소라:  어머, 1년 넘었는데도 잘 몰라요? 모임 별로 없어요? 봉사도 매달 하길래 연주 무대 많은 줄 알았어요.
선영:  봉사 연주는 단장 바뀌면서 최근에 늘었어요. 난 참석 못 했고요.
소라:  저는 지난달 요트 축제랑 이번 달 병원 연주했었어요. (신이 나서) 차르르 반짝이는 드레스 입고 연주할 때 희열감 있잖아요. 제가 주말마다 제주도로 골프하러 가는데, 그거보다 무대 경험이 더 짜릿한 거 같아요. 막 떨리고 긴장했다가 노래가 진행되면 가슴이 뻥 뚫리고 주인공 된 기분 들고요. 끝나고 박수받을 때면 그간 고생이 확 풀리는 거요. 완전 신세계라니까요. (화장품 가방에서 파운데이션을 꺼내 얼굴을 두드리며) 풀메이크업에 머리도 착 올리고, 신부 화장 같아서 너무 좋아요. 딴 데 가면 튄다고 난리일 텐데, 공연 있었다고 하면 다들 부러워해요. 사람이 더 괜찮아 보이잖아요. 노블레스 오블리주랄까. 봉사도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하는 거니까요. (미스트를 뿌리며) 합창단 들어오길 너무 잘했어요. 저도 솔로 할 수 있을까요?
선영:  보람 있어서 다행이네요. 솔로는 소리만 맞으면 누구나 할 수 있죠.
소라:  그렇죠? 노래가 눈에 보이는 대로 들린대요. (슬쩍 선영의 위아래를 훑어보고 된소리로 강조하며) 언니도 화장 조금만 하면 분위기 확 달라 보이고 화사할 것 같아요. (자신의 화장품 가방에서 립스틱을 꺼내 건네며) 한 번 이거 발라 볼래요? 신상인데 저 아직 한 번도 안 썼어요.
선영:  (소라의 눈길을 알아차리지만 조용히) 소라 씨는 젊어서 더 예쁘고 분위기 있어요. 나는 메이크업엔 통 관심이 없어서요.
소라:  (기분이 좋아서) 필라테스에 투자 좀 했거든요. 그런데 단원이 많이 바뀌었어요? (호기심을 갖고) 최근에요? 왜요?
선영:  (답변을 피하며) 잘 몰라요. 에어컨 바람이 너무 셌나, 으슬으슬한 게 따뜻한 물 좀 마셔 야겠어요.

선영이 나가자, 소라 다시 지인에게 전화를 건다.

소라:  미안. 오늘은 스트레스야. 최근에 단원이 많이 바뀌었나 봐. 세대 차인가? (선영이 나간 곳을 바라보며) 조금 무뚝뚝한 사람도 있고. (도도하게) 이 사회성으로다가 내가 한 번 뛰어야 할까 봐. 너도 같이 합창할래? 심심하지 않고 좋을 것 같은데! 대충 불러도 부담 없어. 아무나 해도 된다니까. 일단 회비가 부담 없어. 파트 연습도 선택. 봉사 연주? 의무아냐. 빠져도 돼. 시장, 시의원 오는 무대만 해도 괜찮아. 무엇보다 드레스가 제일 예뻐. 완전 야시야시. 가슴골 탁 드러나는 게 우아한 섹시미 같은 거 있어. 비용? 동네 합창단  열악하잖아. 회비 내는 것만 해도 어딘데? 단원 해주는 것만도 큰 역할이야. 많을수록 좋은 거지. 뭐? 노래했었다고? 솔리스트?

변기 칸에서 물 내리는 소리가 연거푸 들려온다. 인자, 변기 칸에서 나와 세면대에 선다. 소라, 화들짝 놀라 엉겁결에 전화를 끊고 인자에게 인사한다.

소라:  (애교스럽게) 어머, 언니! 아까 알토 솔로 너무 좋더라고요. 어쩌면 그리 잘하세요? 언니는 독창이 체질 같아요. 우리 합창단 오면 좋겠다 싶은 지인이 있는데 합창이랑 독창이 뭐, 달라요?
인자:  독창자가 합창단에 오겠어? 합창은 화음 중심이고, 솔로는 아무래도 호흡이 깊은데?
소라:  (어리둥절하게) 호흡이 깊어요?
인자:  술피아토, 마스케라, 몰라? 혼자 실컷 박수받는 사람이 다른 화음에 섞여 자기 소리를 통제하는 합창을 좋아할까? 독창자가 튀면 화음이 깨져. 배려 없이는 망한다고.
소라:  (멋쩍게) 맞아요. 화음 맞추는 건 배려죠, 배려. 제가 메리골드 합창단 진짜 어렵게 들어 왔잖아요.
인자:  이 좁은 동네에서 어찌나 질투하던지 우리만 특별 대우한다고 해서 지금 지원금이 없어서 그렇지, 처음에는 대기하다 들어왔어. 없어진 합창단도 많은데 우리는 창단부터 지금까지 쭉 (강조하면서) 중간에 지원금 끊겼어도 성장하고 있고.
소라:  네에. 저도 얘기 많이 들었어요. (조심스럽게) 근데 단원이 많이 바뀌었다던데, 왜 그렇게 되었어요?
인자:  나간 사람들은 연습도 안 했어. 점심 먹고 차만 마시려는 듯 연습 끝날 때 오는 사람도있었고 매주 어려운 곡 부르는 것도 힘들었겠지. 어중이떠중이 합창단은 아니니까 쉬운 곡만 재탕할 수는 없잖아. 전국합창제 출전 기회도 괜히 오는 거 아니야. 
소라:  전국합창제가 뭔데요? 우리도 해요?
인자:  아까 연습 때 공지했는데 못 들었어?
소라:  (당황하여) 오늘 주차가 만차라 조금 늦게 와서요.

소라의 핸드폰이 울린다. 소라, 전화를 받으며 화장품 가방은 테이블 위에 둔 채 인자에게 눈인사하고 화장실 밖으로 나간다. 물 내리는 소리가 나고, 미희, 변기 칸에서 나온다. 한숨을 쉬며 인자 쪽으로 걸어온다.

미희:  인원이 없어도 오디션 보고 뽑아야 했어요. 정기연습 외에 파트별 연습도 의무화시키고. 아무나 가입 못 하게 수칙 변경해야 하지 않겠어요?
인자:  나도 희망 사항이다. 그런데 되겠어? 오십 명 넘으면 모를까 이제 겨우 서른여섯 명이야. 이번에 너무 많이 나갔잖아.
미희:  연주회 경비는 똑같이 내고 연습 빠진 사람은 무대에 서지 못하도록 안건 낼까요? 이번에 확실하게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니까요.
인자:  일단 대회 참가 인원부터 파악하자. 수칙은 신중해야지. (조심스럽게) 늦긴 했지만, 다른 합창단으로 간 사람들 이유 알아보면 어떻겠어? 
미희:  저도 답답해서 미치…….
 
미희, 선영이 화장실로 들어오자 말을 멈춘다.

인자:  선영 씨, 안색이 안 좋던데, 괜찮아요?
선영:  (기운 없이) 따뜻한 물 마셨더니 괜찮아졌어요. 지역 봉사 못 해서 미안해요.
미희:  언니가 없어서 솔로 없는 곡으로 했어요.
선영:  솔로는 다른 사람이 맡으면 어떨까요?
미희:  무슨 소리예요? 딴맘 먹으면 안 돼요. 봉사 무대였으니까 괜찮아요. 봄 축제 때 언니가 잘해줘서 박수 많이 받았잖아요. 전국합창제는 꼭 같이해야 해요. 언니가 메조 꽉 잡고 있는데 계속 리더 역할 해주셔야죠.
선영:  다들 잘해서 내가 딱히 하는 거 없어요. 

인자와 미희, 선영이 파우더룸 의자에 앉는다.
 
선영:  인원이 적은 게 아쉽네요. 연주 무대에 꼭 서지 않아도 되면 진짜 마음 편하게 할 수 있겠어요. 연주회 잡히면 약속한 무대에 못 설까 봐 불안하거든요. 피치 못 할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미희:  (조금 흥분하여)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면, 나 없어도 되겠지, 연습을 계속 빠지니까 그 몇 사람 때문에 힘들어져요.
인자:  (미희의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쉬는 시간 얼마 안 남았네. 우리 그만하고 연습하러 가자. (미희 말을 끊으려고 하지만 막지 못한다.)
미희:  뭘 그만 해요?
미희:  인원이 많으면 뭐 해요? 이번에 해체된 합창단도 인원 많았잖아요. 더 해체되기 쉽다고요. 프로처럼 실력 있으면 서른 명이어도 괜찮아요. 실력 없으면 추가 연습을 하고, 안 나오면 벌칙이라도 넣어서 매일 연습해야죠. 전국합창제, 이번에는 못하는 사람들 빼버려요. 뭘 노래하는지도 모르면 비슷한 소리라도 낼 줄 알아야죠.
선영:  현실적으로 힘들지 않을까요?
미희:  개인 사정 봐주면 아무것도 못 해요. 정기연주회도 창피해서 할 수 없다고요. 이만큼 하는 거 쉽게 된 거 아니에요.
선영:  저야 노래 좋아하지만 매주 새로운 곡 익히는 것도 힘들고…. (망설이다) 지금처럼 연습만 하면 길에서 봐도 모르고 지나갈걸요. 악보만 보다 헤어지는 거니까 고급 합창 교실 같아요.
미희:  임원회의 때 다들 좋다고 해서 레퍼토리 늘리고 우리한테 맞는 곡 찾느라 그런 겁니다. (뾰로통해서) 언니도 밥 먹고 차 마시면 되잖아요. 그럼 친해질 수 있는데요. 연습만도 부족한 시간이라 정기연습 때 친교까지는 현실적으로 힘들어요.
선영:  전국합창제요? 알지도 못하는 이탈리아어 외우는 것도 힘들고, 아카펠라로 음정 맞춰 부르는 게 무리라면 안 할 사람은 빠지게 해줘야죠.
미희:  (답답해서) 제 이야기가 그거예요. 지각하고 결석하는 단원 때문에 똑같은 곡 죽어라 연습해도 계속 틀리잖아요. 소라 씨는 지난번 봉사 무대에서 립싱크만 하기로 했었는데,  그렇게 약속하고 무대에 섰는데, 음 이탈을 해서 깜짝 놀랐어요. 소라 씨 음정 이탈 티안 나게 하려고 다른 단원들이 소리를 커버하느라 혼났는데, 정작 당사자는 모르더라고요. 오늘도 늦게 와서 목 풀기도 안 한데다 곡 해석은커녕 자기 맘대로 불렀잖아요.
선영:  출전 후보곡들이 너무 고음이라 연습 끝나면 목이 아파요. 메조도 힘든 고음이라고요. 소프라노는 악쓰는 소리 낼 수밖에 없어요. 합창제 입상이 우리 수칙은 아니잖아요.
인자:  전국합창제, 파트별로 의견 듣자. 미희 씨, 고생해서 어쩌지? 지휘자, 임원진 의견도 중요하지만, 일단 선영 씨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아. 참석 의향 있는 사람 몇 명이고, 누가 참석하냐가 중요해.
미희:  실력 없는 사람은 빠져주고, 실력 있는 사람은 반드시 가야 하는데요? 곡 해석도 안 듣고 연습 빠진 사람이 가겠다 하고, 있어야 하는 사람 빠진다고 하면 어떡해요? 딱 까놓고 선영 언니 빠지고, 소라 씨 가면요?
인자:  선영 씨 안 빠져. 왜 그래?
선영:  전 시아버지가 치매라 시댁에서 전화 오면 바로 달려가야 해요. 연주회 때 일정 꼬일까봐 제가 솔로 맡는 게 무척 부담이에요.
인자:  어머, 그런 사정 몰랐어. 지금이라도 바꿀까?
미희:  인자 언니, 무슨 말이에요? 그런 건 누구한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잖아요. 선영 언니가 해야죠. 일단 언니가 하는 걸로 하고, 정 안되면 그때 급조해요.
선영:  현재 합창단 실력이 입상까지 갈 수 있는 실력은 아니지 않아요?
미희:  정 안 되면 우리도 전공자들 급조하자고요. 이 정도면 정말 잘하는 거잖아요. 작년 우승팀 보니까 우리랑 별반 차이 없더라고요. 아니, 우리가 더 잘하는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어요. 전공자 몇 명만 섭외하면 돼요. 우리를 알릴 절호의 기회라고요.
선영:  전공자들 섭외가 능사는 아니에요. 연주회 때만 하는 전공자들은 우리한테 애정 없잖아요.
인자:  우리 너무 작은 동네에만 있었어. 결과까지 얻는 걸 목표로 하면 좋겠어. 무대나 경험하자고 전국합창제 갔을 때 진짜 느슨한 마음이었지. 그 후 성과도 없었고. 미희가 단장 맡으면서 열심히 하자, 분위기 전환했더니 금세 실력 늘었잖아.
미희:  목표가 확실해야 연습 겸 자주 모이고, 친해지고, 실력 늘고 좋잖아요? 최근에 확 나간 사람들한테 배신감 느끼는 건 무임승차 때문이었어요. 단장 쫓아낸 것도 결국 그들이었잖아요. 친한 사람 솔로 시킨다고요? 노래도 못하는 엉터리들이 질투만 많아 트집 잡고 그러니까 끝내 못 견디고 단장이랑 솔로 했던 언니, 나갔잖아요. 다 후벼놓고 망쳐놓은 걸 내가 수습하면서 열심히 하니까 옛날 단장은 안 그랬다는 둥 임원도 아니면서 이래라저래라했어요. 공연하려면 복장 갖추고 하는 거 당연한 거지. 드레스, 메이크업 비용 많이 나간다고 추가 회비에 대해 되려 말을 만들더니 못마땅해서 우르르 탈퇴한 거잖아요. 실력 있으면 동네에서 놀지 말고 오디션 해서 당당하게 시립합창단 가라 해요.
선영:  지나치면 독이 될 수도 있어요.
인자:  미희 씨가 헌신과 열정이 좀 있지.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거 처음이야. 지역사회 봉사 시작한 것도 알아보고 세팅하느라 고생했어. 내년에 보조금 지원받으려면 봉사 실적부터 쌓아야 한대.
누군가:  언니들, 안 들어와요?
다같이:  안 가!
누군가:  왜 나한테 화를 내요?

미희, 인자, 선영의 격해진 견해 차이 중간에 소라가 들어온다. 소라는 전혀 분위기 파악을 못 하고, 화장을 고치기 위해 세면대 앞에 선다.

소라:  (신이 나서) 어머, 언니들, 깜박 화장품을 놓고 갔지 뭐예요. 방금 합창단 하는 지인이랑 통화했거든요. 레이디 싱어즈 팀은 지역 보조금을 진짜 잘 받는데요. 봉사연주 해도 비용 지원받는데 연주비가 들어오나 봐요. 그 팀에 마당발 있어서 그 사람이 연줄로 보조금을 싹 끌어와서 추가 회비 같은 거 안 걷는대요. 월회비는 다 간식과 식대로 쓰고요. 연주회나 대회 출전할 때만 함께 하는 전공자들도 있는데, 주 멜로디는 맡아서 해주니까, 나머지 기존 단원은 편안하게 내는 음정만 한대요. 전공자들 연주비도 다 보조금에서 해결된대요. 대박 좋죠? 그리고 진짜 빅이슈는 이거에요. 뭐더라. 그 합창단 이름이 해올 합창단인가?
인자:  해올요?
소라:  네에. 해로 시작하는 합창단 맞아요. 단장과 지휘자 갈등으로 최근 해체됐는데요. 그게 불투명한 회비 운영이 핵심이었대요. 추가 연습비에, 편곡비에, 회비를 추가로 막 걷었는데 근거가 확실하지 않았나 봐요. 드레스랑 액세서리도 단체로 엄청 비싸게 새로 맞췄는데 뭐 사업자가 단장 지인인가 그랬대요.
미희:  이야기가 소설 수준이네요. 해체된 거 협회도 안타까워해요. 회의에 직접 참여하는 나만큼 알지 못하면서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에요.
소라:  (확신에 차서) 확실한 정보통이에요.
미희:  어디서 듣고 와서 그러는 거예요? 특히 회비 운영, 알고 말하는 거예요? 지휘자에 임원들, 말 많고 질투 많은 단원 눈치 봐 가며 스트레스 너무 받아서 불면증에 우울증, 이명까지 왔대요. 도저히 단장 못 하겠다고 내놨더니 아무도 지원자가 없어서 해체된 거예요. 얼마나 골치 아팠으면 그 많은 단원 중에 지원자가 한 명도 없겠어요?
소라:  (의아해서) 단장 없으면 합창단 못하는 거예요?
미희:  고유번호증이 괜히 있는 줄 알아요? 보조금 사업을 받아도 단장이 책임지는 건데, 회계를 어떻게 불투명하게 운영해요? 연주회 때 섭외한 전공자들만 사례비 주고, 기존 단원 중에 전공자는 왜 연주비 안 주냐고 갈등 있었어요. 보조금 지원사업은 기존 단원은 줄 수 없는 게 회계 수칙이라서요. 보조금 규정상 내부 인원에게는 지급할 수 없단 말입니다. 보조금 회계 규정대로 한 건데, 그걸 비리처럼 말하면 안 되죠! 액세서리요? 드레스요? 지인한테 부탁해서 협찬 식으로 정말 싸게 한 건데요? 드레스 기성 제품 아니고 맞춤한 거라 처음에만 가격이 좀 나갔고요. 매번 연주 때마다 무료 수선해 준 걸로 알아요. 만날 맛집 가서 실컷 먹어대는데 어떻게 살이 안 찌냐고, 그러다 또 우르르 빨간 다이어트약 무리하게 먹어서 살을 쭉 빼고, 연주회 때마다 늘였다 줄였다 더는 무료 수선 못 하겠다고 했답니다.
인자:  나도 잘 아는데 단장이랑 지휘자 갈등은 없었어. 그 지휘자는 곡 해석이 좋아서 인기 있었거든. 추가 연습하면 추가 비용 내는 것도 당연하지. 동네에서 아무나 쉽게 지휘자 구하는 줄 아는데, 그건 몰라서 하는 소리야.
소라:  메리골드에서 우르르 나간 언니들이 가입한 합창단에 제가 아는 지인이 있어서….
미희:  (더 이상 못 참고 짜증이 나서) 어휴. 그 사람들 앞에서 하는 말 다르고 뒤에서 하는 말 다르고, 내 인생에 다시는 안 엮이고 싶은데. 나도 괜히 단장 맡은 것 같고, 그만두고 싶네요. 정말 발 쭉 뻗고 잠잔 적 언젠가 싶은데, 동네에선 이상하게 소문나고. 연습도 안 한 사람들은 자기가 연습 안 한 건 생각도 안 하고 곡만 어렵다고 투덜대기만 하고, 대체 음정도 안 익히고 오면서 어떻게 솔로 할 생각을 해요? 그거 완전 도둑놈 심보 아니에요? 일대일 필라테스 하는 만큼 시간도 돈도 노래에 투자하면 실력이 안 늘겠어요? 실력 있으면 누가 솔로 안 시켜준대요? 골프 한 번 안 가고 개인레슨 받으면 실력 금세 는다고요.

미희,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화장실 밖으로 나간다.

인자:  (당황하여 소라에게) 미안, 미안해요. 미희 씨가 감정이 격해서 이야기가 너무 훅 나간 거 이해 좀 해줘. 잠깐만 기다려요.

인자, 미희를 뒤따라 화장실 밖으로 나간다.

선영:  (소라에게 의자에 앉으라 하며) 감 놔라 배 놔라 할 처지는 아니라 조용히 있었어요. 왜 최근에 인원이 바뀐 건지 궁금하다고 했죠? 단원들이 조금씩 불만이 있었나 봐요. 그걸 회의 때 공식적으로 이야기했으면 좋았을 텐데 뒷담화로 풀다가 오해가 생긴 것 같더라고요. 알죠? 소라 씨도 방금 겪은 것처럼.
소라:  단장 역할이 그렇게 힘든지 몰랐어요.
선영:  오해가 부풀려져 해결되지 않았어요. 합창단이야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냥 친한 사람끼리  다른 데로 확 가버렸죠. 어디 갔는지 알아도 모른 척했어요. 거기 가서 우리 합창단 안좋게 말한 거 나도 들었어요. 나한테도 거기로 오라더군요.
소라:  그냥 들은 거 말한 건데…. 아무런 의도 없었어요.
선영:  알아요. 조금만 겪으면 소문 안 나겠어요? 결국 다 알잖아요. 메리골드 꽃말이 ‘우정‘, ’꼭 오고야 마는 행복‘이래요. 노래 부르면서 동네 단짝처럼 우정 쌓아보자고, 초창기 단원들이 투표해서 지었대요. 합창단 하니까 무더운 여름에 활짝 핀 메리골드가 더 예뻐 보이고 좋더라고요. 인간관계에서 오는 오해는 어딜 가나 있는 것 아니겠어요? 오만가지 갈등을 뛰어넘어야 진짜 우정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소라:  약간 멜랑콜리 한데요?
선영:  내가 한번 아프고 진지 풍이네요.
소라:  어디 아팠어요?
선영:  실은 위암 1기였거든요. 심각했던 건 아니에요. 완치 판정받고 의사가 복식호흡이 좋다고 합창단 권했어요. 내가 점심, 티 타임 안 가는 거 나 때문에 불편할까 봐 살짝 빠지는 거예요. 젊은 엄마들은 자극적인 거 좋아하고 맛집 가니까. 내가 조절하면 되는데 그게 잘 안 돼서요. 나도 한 성격 하는지라 옛날 성격 나오거든요.
소라:  그렇게 안 보이는데요?
선영:  소라 씨, 내가 한 성격 하니까 모든 곡 다 외워 오고 연습하는 겁니다.
소라:  어떻게 모든 연습곡을 다 외워요? 메조 파트를요?
선영:  그 정도 각오로 열심히 한다는 거예요. 목과 어깨에 힘 빼는 연습을 매일 해요. 소리가 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호흡에 소리를 실어 멀리 보내요. 과장하지 말고 내 소리를 최대한 깨끗하게요. 무리하면 소리가 갈라져요. 이렇게 연습해도 옆 사람 소리를 들으면서 내 소리를 조절하는 것이 가장 어렵더라고요.
소라:  매일 연습한다고요?
선영:  암 재발할까 무섭거든요. 두려움이 올라올 때마다 심호흡하면 기분이 나아져요. 힘 빼는 연습이 참 어렵죠. 내가 화장 안 하는 거 화학성분 피하려는 거예요. 회식도 안 가고 관리하기 까다로운 단원, 한 성격 맞죠? 친해지기 불편하겠죠?
소라:  색조 화장 안 하면 집 앞 편의점도 안 가는지라 저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어요. 
선영:  알아요. 소라 씨가 화사하고 분위기 메이커 같달까. 합창단 분위기가 발랄해진 거 좋아 요. 몇 개월만 파트 연습하면 어떻겠어요?
소라:  언니가 그 정도면 저는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요.
선영:  미안해서 공연은 같이하려 했는데, 오늘 같은 분위기는 힘드네요.
소라:  스트레스받느니 그냥 하지 말자, 뭐 그런 거요?
선영:  (살짝 웃으며) 그래요. 합창단 스트레스라고 하면, 당장 관두라고 할 것 같아 어디 가서 털어놓지도 못해요. 소라 씨야 워낙 사교적이라 단짝은 없어도 될 것 같고. 난 맘에 맞는 사람 한두 명은 있어야 하거든요.
소라:  (애교 섞어) 아유, 언니이! 지금부터 제 단짝 되어줘야겠네요. 비밀 다 털어놨으니 이제 오해할 일도 없고요. 천연 화장품 피부 테스트해서 알려 드려요? 이제 언니랑은 물만 마신다. 점심은 샐러드바만 간다. 어때요? 단짝 괜찮죠? 실은 제 몸매가 풀떼기만 먹고 운동한 몸매예요. (선영을 쭉 훑어보며) 언니는 풀떼기 상당히 더 먹어야 할 듯한데요?
선영:  (막 웃으며) 못 말린다니까.
  
소라와 선영이 웃으며 암전.
조명이 들어오고 인자와 미희, 화장실 밖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인자:  미희야. 이번 건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다. 접자. 너도 상처받은 거 같고.
미희:  우리, 아무 목표 없이 살았잖아요? 언제까지 그래야 해요? 합창단이라도 하면서 뭔가 할 수 있다, 그런 자신감 가지면 안 되냐고요.
인자: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부모, 원가족, 시댁 갈등에 다들 힘겨운 엄마들이야. 힐링하는 정도로만 노래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미희:  어려운 걸 도전해 보면 어때서요? 들쑥날쑥 정체성 없다고 제대로 배워보자고 다들 그랬잖아요. 저한테 총대 메라면서요?
인자:  기회는 다음에도 있어. 천천히 가자.
미희:  이번에는 제대로 해보고 싶었어요.
인자:  나한텐 너도 중요해. 포기하자는 건 아니고 일단 단원들 마음부터 확인하자는 거야. 응? 들어가자. 다들 기다린다.
미희:   화장실 가서 소라 씨 먼저 만나고요.
인자:  그래. 풀 건 빨리 풀어버리자.

인자, 미희를 다독거리며 암전.
조명이 들어오고 인자와 미희가 화장실로 다시 등장한다.

미희:  (감정이 조절되어) 소라 씨, 아까는 미안했어요. 내가 말이 좀 심했어요.
소라:  저도 잘못한걸요. 오늘 점심은 제가 냅니다. 샐러드바로 갈까요? 그리고 노래 잘하는 사람 꼭 찾아볼게요.
인자:  다른 데서 빼 오지는 말고. 각자 맡은 파트만 열심히 하면 되지. 우리 이제부터 서로의 소리를 잘 듣자고. 그러면 돼.
미희:  나도 욕심내려 놨어. 단원들 의지가 중요하지. 거기서부터 합창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조만간 다 같이 소통하는 시간 마련해 볼게요.
소라:  우리 마음부터 완벽한 화음 연습하는 거예요? 완전 고단수! 전국합창제 입상하면 상금으로 뭐할 건데요? 연주 여행 갈까요?
미희:  (맞장구를 치며) 못 갈 것도 없지.
선영:  (미희에게) 소라 씨가 이상한 소리 내면 봐주지 말자고요.
인자:  (소라에게 사뭇 진지하게) 각오해.

인자의 말에 모두 웃는다. 변기 칸에서 핸드폰 벨 소리가 울린다.
미희, 변기 칸으로 들어가서 핸드폰을 들고나온다.

소라: 누가 핸드폰을 두고 갔나 봐요?
미희: (핸드폰을 흔들며) 내 거예요. 우리 안 와서 전화한 것 같아요. 합창제, 어떤 곡이 좋겠어요? 각자 맘에 드는 곡 좀 말해 봐요. 들어가서 연습해 보자고요. 당장 지금부터.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한 소절씩 소개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개사해서 노래한다. 지금부터는 모두 배경음악이 깔리며 노래로만 나온다.
 
미희:  “나 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하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우면 결국 풀밭이 꽃밭 되는 거 아니겠느냐.” 이 노래에 배우며 내가 단장 맡았지. 풀밭 같지만 우리는 꽃밭이 될 거니까.
인자: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화내지 마. 힘든 날들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꼭 올 거야.” 힘든 순간마다 힘을 주지. 감정 노동하는 나에게 날마다 위안이 되어 오늘 하 루를 견딜 수 있어.
선영:  “가장 아름다운 노래, 아직 부르지 않았지. 오늘 나 초라하고 슬퍼도 지금 멈추지 않을테요.” 건강 회복하고, 언젠가 가장 아름다운 노래 꼭 부를 거야.
소라: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꽃이여” 이제부터 합창으로 충분해. 내 인생, 아름다운 이들과 행복할 거야!

소라, 약간의 음 이탈을 하자 모두가 웃으며 묘한 화음으로 노래한다.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꽃이여.” 내 인생, 아름다운 이들과 행복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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