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프리즘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동료 교수와 함께 학생 82명을 인솔해 일본의 나가사키에 간 적이 있다. 이 짧은 지면에 그때의 여정을 모두 소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메가네바시 다리 뒷골목에서 만난 커피숍과 나가사키 항구의 어느 카페에서 경험한 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하겠다.

 

일본 최초의 아치형 돌다리로 유명한 메가네바시 다리 뒷골목에서 마신 커피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커피숍은 건물의 겉과 내부 모두가 고풍스러웠다. 커피잔, 주전자, 스푼, 설탕통까지 모두 고풍스러운데 음악까지 재즈였다. 게다가 물수건을 가져다준 분은 70대의 할머니였고, 커피를 내리는 분은 여든 가까운 할아버지였다. 일본에 커피가 최초로 전해진 유서 깊은 나가사키라서 그런지 맛과 향이 남달랐다.

 

찻집을 나와 옛 정취를 그대로 간직한 뒷골목을 거닐고 차이나타운도 돌아보았다. 나가사키의 대표적인 풍경 중 하나인 노면 전차를 타고 데지마로 나와 나가사키 항이 보이는 곳까지 걷다가 비를 만났다. 비도 피할 겸 항구에 있는 카페로 들어가 라떼를 주문했는데, 커다란 하트모양 위에 사카모토 료마가 그려져 있는 게 아닌가. 결하트, 로제타, 스완 정도의 라떼 아트만 알던 내게는 충격이었다.
한참을 앉아 있다가 이번에는 어떤 인물이 나올까? 하는 호기심도 생기고 한 잔 더 마셔도 괜찮을 것 같아 석 잔째 주문했다. 커피를 석 잔이나 마시는 내가 걱정스러웠는지 종업원이 다가와 괜찮냐고 물었다. 괜찮다고 하면서 또 어떤 라떼 아트가 있는지 물어보았더니 시볼트도 있다고 했다. 료마, 이와사키, 글로버에 이어 시볼트까지?

 

라떼를 주문했는데,
커다란 하트모양 위에
료마에 이어 글로버, 시볼트까지
그려져 있는 게 아닌가!

 

시볼트(Philipp Franz von Siebold, 1796~1866)는 독일에서 의사가 된 다음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서 일하다가 일본에 관심이 생겨 나가사키로 왔다. 나가사키에서는 의사로 활동했을 뿐 아니라 데지마에 의학교를 세워 일본인들에게 의술도 가르쳤다. 일본 문물에 관심이 많아 데지마에 머물면서 적극적으로 자료를 모으고 지리, 동식물, 기후, 천문까지 조사 연구하면서 여러 방면에서 활동했다. 시볼트가 모은 자료 가운데는 국외 반출이 금지된 일본 지도가 들어있는 것이 발견돼 추방당했는데, 이를 ‘시볼트 사건’이라 한다.

 

일본에서 추방당한 시볼트는 네덜란드로 돌아가 『일본왕국도』를 비롯해 다수의 지도가 수록된 『일본지도집』을 출간했다. 『일본왕국도』에는 일본의 해안선은 굵은 청색 선으로 칠해 일본 영토임을 표시하고, 조선의 일부와 울릉도·독도 해안선에는 색을 칠하지 않아 구별했다. 즉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이 나타나 있다. 그는 네덜란드 정부 후원으로, 일본에서 연구한 자료를 집대성한 『일본』 『일본 식물지』 『일본 동물지』를 출판했다. 『일본』에는 제한적이긴 하지만 조선 편이 수록돼 있어 눈길을 끈다.

 

시볼트가 일본에서 수집해 유럽으로 가지고 간 다양한 물건들은 일본 연구의 기초 자료가 됐고, 이를 기초로 유럽에서 일본학이라는 새로운 연구가 시작됐다. 200여 년 전, 시볼트는 『일본』이란 책을 통해 조선의 존재를 서양에 알렸고 그가 만든 지도에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로 표시돼 있다. 나도 우리 학생들과 함께 직접 확인했다.

 

나가사키의 카페에서 라떼 아트로 시볼트를 재현하는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역사와 문화는 책이나 영상으로만 배우는 게 아니었다. 커피 한 잔에도 역사와 문화가 녹아 있었다. 카페의 건물과 도구와 분위기, 심지어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마저도 문화를 구성하는 한 부분임을 일본의 카페를 다니면서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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