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영나물 리뷰] 「괴물」(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나물 리뷰]  ‘영화가 나에게 물었다’의 줄임말. 최근 개봉한 영화에 대한 리뷰. 한 편의 영화에는 하나의 세상이 담겨있다. 그리고 감독은 자신이 만들어낸 세상에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영나물 리뷰’는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정답은 없다. 백 명의 관객에게서 백 개의 영화평이 나올 수 있는 것이 영화의 매력이기에. 세상 어딘가에서 영화를 보면서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쓰는 씨네마 레터.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그러니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是枝裕和, 1962~)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건 아마 「아무도 모른다」(2005)였던 것 같다. 아니, 그 이름은 혜성 같은 데뷔작 「원더풀 라이프」(1998)로 접했지만, 내게 그의 첫 영화는 「아무도 모른다」였다.

 

‘크리스마스 전에는 돌아오겠다’라는 메모와 약간의 돈을 남긴 채 어디론가 떠나버린 엄마. 열두 살 장남 아키라는 세 명의 동생과 함께 엄마를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아니 버텨낸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돼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전기가 끊긴 집에서 인기척이 나면 혹 쫓겨날까 밤에 몰래 나와 공원에서 수돗물로 배를 채우는 네 아이를 보며 느꼈던 먹먹함은, 극장을 나서면서도 집으로 돌아와서도 한동안 내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짓눌렀다.

 

20년을 천착한 질문 ‘가족이란 무엇인가’
부모란 누구인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과연 이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행보는 뚜렷해졌다. 어린 아들을 가슴에 묻은 엄마의 모습을 그렸던 「걸어도 걸어도」(2009), 저마다 사연을 가진 아이들의 성장을 그린 「진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에서 계속해서 아이들과 부모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가 ‘가족’이라는 주제에 보다 직접적인 질문을 던진 영화는 제66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라고 생각한다. 한날한시에 같은 병원에서 태어난 두 아이가 병원의 실수로 부모가 바뀐다. 6년이 지난 후에서야 양쪽 부모에게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이 전해진다.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설정이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특유의 급하지 않은 호흡으로 노련하게 배우들의 감정선을 따라간다. 낳았다고 자식인가, 길렀을 때 자식인가. 낳은 정과 기른 정이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이 질문은 그에게 또 한 번 칸의 선택을 받게 한 「어느 가족」(2018)에서 정점을 이루고(제71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최근작 「브로커」(2022)에서도 재확인된다. 혈연보다 관계. 그것이 바로 가족의 본질이라고. 그러니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들은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여러 상황 속에서 변주해온 셈이다.

 

다만, 칸의 유난한 사랑을 받은 덕분에 찍을 수 있었던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2019)은 조금 멀리 가긴 했다.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 카트린느 드뇌브와 프랑스 영화의 든든한 버팀목 줄리엣 비노쉬가 당최 무엇이 아쉬워 유교적 가족 관념을 놓고 충돌한단 말인가(물론 서양에도 모녀 관계에서 드러나는 보편성은 있다). 그래도 이 영화에서 우리는 미래가 ‘심히’ 기대되는 아역 배우 클레망틴 그르니에라는 행운 어쩌면 희망을 발견하긴 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여전히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중 하나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새로운 질문 ‘괴물은 누구인가’
20년 넘게 ‘가족’이라는 주제에 천착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이번에 들고 온 영화는 「괴물」이다.

 

싱글맘 사오리(안도 사쿠라)에게는 목표가 있다. 초등학교 5학년 외아들 미나토(쿠로카와 소야)가 커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보통의 어른’으로 키운다는 것. 하지만 신발 한 짝이 갑자기 사라지고, “사람의 뇌에 돼지 뇌를 이식하면 사람일까”라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아들. 거울 앞에는 가위로 잘라버린 머리카락 더미가 수북하다. 엄마는 ‘아빠 없는 아이’라는 소리 듣지 않게 하려 되려 씩씩한 모습으로 살아왔는데, 아들이 몰라보게 바뀌었다.

 

용기를 내 학교를 찾아가지만, 교장 선생님부터 눈에 초점이 없다. 모든 선생님은 그저 쉬쉬하기만 한다. 아들이 따돌림을 당한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담임 선생님은 “당신 아들이야말로 가해자”라고 소리친다. 그때 조금은 달라 보이는 아들 친구 요리(히이라기 히나타)가 눈에 들어온다. 엄마는 혼란스럽다. 도대체 내 아이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괴물」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절정에 다다른 연출력을 선보인다. 하나의 사건(건물 화재)를 바라보는 세 개의 시선 그러니까 세 개의 이야기로 영화를 구성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아들의 변화를 알아챈 엄마가 학교를 찾아가 선생님들을 만나고, 또 친구들을 만나는 이야기다. 믿고 자녀를 맡긴 학교라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고발한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담임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의 시선을 통해 행정편의주의, 관료주의에 젖은 사회(학교)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여기에서 첫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이자 불쌍하기만 했던 싱글맘은 ‘진상’ 엄마가 된다. 세 번째 이야기는 이 모든 사건의 중심인 아들의 시선으로 진행한다. 반에서 왕따를 당하는 친구를 나서서 구해주지는 못하지만, 은근슬쩍 챙겨주는 우정이 반짝인다. 여기에서 두 번째 에피소드의 담임 선생님과 엄마의 화해가 이뤄진다. 그리고 아들과 친구의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드러난다.

 

영화는 세 이야기를 각기 다른 인물의 시선으로 살펴보지만, 무리 없이 이어지고 적절히 멈추며 화면을 전환한다. 모든 것을 잃고 학교 옥상으로 올라간 담임 선생님을 멈춰 세우는 괴이하고도 장중한 소리마저 에피소드 전환에 매우 영화적인 방법으로 사용하는 영리함을 보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완급 조절 능력이 십분 발휘된 걸 느낄 수 있다. 마치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1950)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아이의 사춘기는 부모에게 어떻게 다가오는가? 그 과정에서 가족은, 부모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학교라는 시스템은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가? 올곧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한 신임 교사는 어떻게 사회에서 망가져 가는가? 모든 것이 오해였을 때, 우리는 어떻게 화해 해야 하는가?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영화는 계속해서 질문한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을 향해 달려간다. 그래서 도대체 ‘괴물’은 누구인가?

 

「괴물」이라는 정삼각형은 각각의 모서리로
관객의 마음을 뾰족하게 찌르고 있다.
남겨진 우리들이 어쩌면 서로에게
괴물은 아니었을지를 질문하면서 말이다

 

초등학교 동급생의 눈부신 우정과 사랑을 그린 이야기일 수 있었던 영화 「괴물」은 부모의 과도한 개입, 교사와의 소통 부족과 친구의 놀림 등 주변인들의 오해로 일그러진다. 여기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개인적인 관계를 넘어 학교와 사회라는 시스템적인 문제까지 지적하면서 한 차원을 더 확장한다. 학교라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도 믿지 못하는 부모, 학교라는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개인으로서의 교사의 모습, 자녀를 보호하려는 싱글맘의 고군분투가 갑질로 변해가는 과정을 목도하면서 관객은 도대체 ‘괴물’이 누구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 딱 하나 아쉬웠던 부분이 있다면, 미나토와 요리를 왕따시키는 같은 반 친구들의 행동에 대한 이야기는 그렇게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는 우물 안 개구리에게 돌을 던지는 장난일 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가. 큰 사건들은 모두 작은 사건들의 파동에서 시작된다. 여하튼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괴물」은 그런 점에서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는 영화다. 가족에 이어서 그가 오랫동안 천착할 두 번째 주제가 될 것인지, 단발성 질문으로 끝날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 질문을 충분히 미려하게 스크린에 그려냈다.

 

일본 최고의 작가 사카모토 유지 그리고

영화 음악의 거장 고(故) 사카모토 류이치와의 협업
과연 「괴물」이 이토록 높은 완성도를 보인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탄탄한 시나리오의 힘이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등 수많은 히트작을 내며 일본 최고 각본가로 자리매김한 사카모토 유지가 작가로 참여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오래전부터 그의 팬임을 공식 석상에서 밝혀왔고, 2017년 첫만남을 가진 바 있다. 이 영화로 제76회 칸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사카모토 유지는 “단 한 명의 외로운 사람을 위해 썼다. 그것이 평가돼 감개무량하다”라고 전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괴물」 시나리오를 받고서 “내가 쓴 것이 아닐까 착각이 들 만큼 와닿던 이야기”라고 말할 정도로 둘 사이의 공통항이 크다는 점을 고백하기도 했다. 타이밍과 접근 방식에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두 사람은 가해자 유족, 베이비박스, 아이들의 모험, 유사 가족 등 비슷한 모티브에 관심이 많다.

 

여기에 「마지막 황제」(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1988)로 제60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제 음악상을 받은 고(故) 사카모토 류이치가 그의 마지막 영화 OST 작업으로 「괴물」을 선택하며, 영화는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는 완벽한 피아노 선율로 배우들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 연기 디렉팅 방식을 바꾼 것도 영화 몰입도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 전작에선 오디션에서 뽑은 아이들이 평소 사용하는 말투나 행동을 반영해 캐릭터를 구현했다면, 「괴물」에서는 대본 리딩을 하면서 성인 배우와 동일하게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현장에서 생각난 대사를 사카모토 유지가 완성한 각본에 추가하는 것은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판단이었다.

 

아마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괴물」을 뛰어넘는 작품을 내놓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 같다. 그 자체로 미나토와 요리였던 아역 배우들의 연기는 차치하더라도 사카모토 유지의 각본, 고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 그리고 절정에 다다른 그의 연출력이 정삼각형처럼 안정적이면서도 단단한 영화를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괴물」이라는 정삼각형은 각각의 모서리로 영화를 본 관객들의 마음을 뾰족하게 찌르고 있다. 남겨진 우리들이 어쩌면 서로에게 괴물은 아니었을지, 아이들을 위해,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를 질문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세상의 모든 편견을 깨트릴 생각인가?


7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6
댓글쓰기
0/300
  • cryp***
    세상사에 대해 '깔끔하게' 단정지을 수 없는 찜찜함과 모호함, 그리고 불편함을 선사했던 '어느 가족'. 어떤 생각이든 느낌이든 '그게 전부가 아니야'라는 결론 같지 않은 결론을 남겼지요. 아마 이 영화 '괴물'은 찜찜함과 모호함, 불편함이 '어느 가족'이상일 듯요. 용기를 충전한 후 보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24-01-11 16:15:00
  • kwan***
    올 연말에는 어떤 영화를 봐야하나,,,,, 큰 고민이였는데 좋은 정보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챙겨보겠습니다.
    2023-12-22 21:49:20
  • prye***
    오, 일본 영화에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리뷰를 보니까 꼭 '봐야 할 결심'을 하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2023-12-21 14:26:37
  • come***
    영나물 리뷰 너무 잘 봤습니다! 「라쇼몽」(1950)을 보는듯한 영화라니?!?! 그리고 고(故) 사카모토 류이치 ost라니?!?!?!? 당장 「괴물」 영화 보러 가야겠습니다!! 영나물 리뷰 감사합니다!
    2023-12-21 12:34:53
  • wisd***
    이번 연말에 어떤 영화를 볼까 고민했었는데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를 봐야겠어요ㅎㅎ 리뷰 감사합니다!
    2023-12-21 11:20:44
  • *** 수정 | 삭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늘 여운이 많이 남는 것 같아요. <영나물 리뷰>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2023-12-20 15:28:31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