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갑진년 새해

무슨 공부에 한이 이렇게 많은지….


초등학교 시절부터 예체능에 소질을 보인 나는 먼저 미술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미술학원을 다닌 적도 없는데 그림을 잘 그리다 보니 대회에 나가서 상도 받고 한번은 중학교 때 복도에 걸어둘 그림을 그려오라고 해서 그려갔더니 선생님께서 내가 그렸다는 걸 믿지 않으셨다.


음악도 그랬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피아노 학원도 다녔다. 방과 후 학원에서 하루 종일 연습하곤 했다. 5학년쯤 됐을 때는 1학년 아이들 레슨을 하기도 했다. 여기서도 대회에도 나가고 상도 받고 하다 보니 집에서는 나를 예술가가 될 아이로 확신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허약한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서 시작한 약수터 운동도 뭔가 징후를 보였다.


이런 이유로 내 방에는 피아노뿐만 아니라 미술도구까지 놓여 있었다. 두 살 위인 오빠의 방은 백과사전부터 컴퓨터까지 그야말로 공부하는 방이다. 피아노와 미술도구가 있는 내 방과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공부는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나는 신나게 뛰놀며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마침내 어느 날엔가 호기심이 발동했다. 책을 읽고 싶고 컴퓨터가 궁금했다. 오빠 방에 가야 하는데 그곳은 금지구역(?) 같은 곳이어서 허락을 받아야 했다. 다행이 오빠가 컴퓨터를 보여주며 설명해주는 기회가 찾아왔고, 처음으로 컴퓨터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아버지께 나도 컴퓨터를 가지고 싶다고 조르자 영어부터 공부하라는 말씀을 들었다.


중학교 1학년이 되자 눈에 불을 켜고 영어를 공부했다. 그러나 대학을 선택하게 됐을 때는 미술, 음악, 체육 중에서 음악을 골랐다. 다시 책과 멀어지고 대학교를 졸업할 때쯤 우연히 도서관에 푹 빠지고 말았다. 아마도 갈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당시 목표가 ‘우리 동네 도서관 책을 다 읽자!’였다. 그렇게 책읽기에 빠져서 1년 남짓 지났을 무렵, 대학원을 가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살았다. 그런 생활 속에서 태교로 사용했던 영어 동화책을 다시 만나면서 잊었던 독서를 다시 시작하게 됐다.


태교 때부터 읽어 주던 영어 동화책이 얼마나 재밌던지 아이가 커서 스스로 읽고 더 이상 그 책을 읽지 않을 때까지 버리지 못하고 간직했다. 아이들에게 더 이상 책을 읽어주지 않아도 됐을 무렵부터는 책이 바뀌었다. 요리책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덧 요리책 없이 눈대중으로 간을 맞출 수 있게 될 무렵부터는 다시 요리책에 먼지가 쌓이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예체능 사람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비싼 영어책을 사지 않고 도서관에서 빌려서 보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이들과 도서관 카드를 만들어 도서관에 첫 방문했을 때, 아이들이 좋아했고 나도 만족스러웠다.

코로나 시대가 왔을 때는 도서관을 가기 위해서 백신을 접종할 정도로 책 읽는 재미에 빠졌다. 바로 이 무렵 방송대를 알게 됐다. 주저하지 않고 입학했다. ‘그래 1학년부터 차근차근 빠짐없이 공부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방송대 생활은 생각보다 공부가 많고 할수록 더 하고 싶게 만드는 마력이 있음을 알게 됐다. 


그런데 인생은 롤러코스터라고 잠시 휴학을 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공부의 참맛을 알아가는 시점에서 아쉬움이 크게 남았지만, 다시 복학하는 그날까지 어떻게 보내야 할지 솔직히 조금은 막막했다. 동기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학년도 올라가고 할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 이대로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이제 포기하지 않아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 이유는 평생 친구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바로 책이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내가 모른 척할 때도 지켜주었던 책은 나의 든든한 친구다. 이번 해에는 좀더 적극적으로 그 친구에게 다가가려고 한다. 긴 호흡으로 방송대와 다시 만나는 날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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