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정보 과잉의 시대, 교양이란?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어만 한 번 입력하면 원하는 정보들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시대다. 유튜브, 블로그 등에서 쏟아져 나오는 정보들은 ‘과잉 수준’일 정도로 넘쳐난다. 고급 전문지식부터 ‘성격 나쁜 직장 상사 대응법’까지 다채롭다. 지식에 대한 접근, 정보의 양과 접근성으로 따지면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 사회의 교양 수준은 높아야 할 것 같다. 우리 사회에 ‘교양인’은 과연 많은가. 우리 사회 교양의 척도는 무엇으로 살펴 볼 수 있을까. 이런 문제의식으로 이번 커버스토리 1면에서는 정보과잉 시대 교양의 의미를 짚고, 2면에서는 방송대를 졸업한 동문, 재학 중인 학우들이 말하는 ‘방송대 공부와 교양’을 소개한다. 3면에서는 권영민 방송대 교양교육원 원장(교육학과)을 만나 교양교육의 현재와 나아갈 방향을 들었다. 
 
고서정 기자 human84@knou.ac.kr
 
"오늘날 한국의 교양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위기는
 ‘유의미한 삶’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의 실종이라고 볼 수 있다"
 
한 권으로 끝내는 교양
기자는 평일 오후, 서울 광화문의 한 대형 서점을 찾았다. 한 사회의 교양 정도를 가늠하는 지표를 찾는다면 어떤 ‘책’을 읽고 소비하는지를 통해서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평일 점심시간이 지난 뒤에도 서점은 앉아서 혹은 선 채로 책을 읽는 사람들로 붐볐다. 서점에 있는 도서목록 검색에서 ‘교양’으로 검색하자 4천544종의 책들이 검색됐다. 판매량 순으로 검색이 됐는데 대부분 아동 혹은 청소년을 겨냥해 학습에 도움이 되는 것을 강조한 교양 도서들이었다. 마치 이 책 한 권이면 교양 쌓기가 가능해질 것만 같은, ‘한 권으로 끝내는 교양’ 류의 책부터 하루 1페이지만 읽으면 된다며 ‘가장 짧다’는 점을 자랑한 책, ‘최대한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라고 노골적으로 밝힌 책, ‘재미’를 강조한 교양 도서들이 대부분 이었다. 그만큼 ‘교양’이 청소년의 학습과 같은 특정한 목적에서 소비되고 있으며, 현대인은 그런 교양을 쌓기에 시간 부족에 시달리며, 교양은 긴 시간을 들여서 공부해야 하는, 다소 재미가 없는 것이라고 인식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2023년 한 해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세이노의 가르침』이다. 75만권 넘게 팔리며 베스트 셀러 1위 자리를 석권했다(표 참조). 10위권 내에 자기계발서와 소설이 강세를 보임을 알 수 있다.  『세이노의 가르침』은 이름조차 밝히지 않고 ‘say no(No라고 말하라)’라는 필명을 가진 1천억원대 자산가의 돈 버는 법, 시간 관리법 등을 알려주는 책이다. 그의 책에 많은 사람들은 왜 열광하는가. 불안이 가득한 시대, 방향을 제시해주고 자신의 노하우를 알려주는 책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고, 그런 책에서 세속적인 위로를 받고 있다. 대부분 개인이 노력하면 성취할 수 있다는 ‘성공신화’를 담은 책들이다. 그런데 자기계발서가 베스트셀러 목록의 상위권을 차지한 것은 사실 오래된 일이다. 경기침체 국면일수록 자기계발서가 더 팔린다는 게 출판계 지론이다. 물론 이를 두고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들도 존재한다. 먹고사니즘과 부자가 되려는 욕망이 넘치는 가운데, 교양을 논한다는 것은 다소 공허하게 들리기도 한다. 
 
 
대학에서의 교양 교육
최근 대구의 한 종합대학교에서는 교양 과목을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바꾸기로 하면서 교양 과목 강사들이 사실상의 정리해고라며 기자회견을 벌이는 일도 발생했다. 대자보가 붙고 학교 게시판에는 ‘학우들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교양을 학교 스스로 내팽개치는 것은 대학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입니다. 학교 본부 측에서 학우들의 뻔한 흥미 위주로 된 과목이 아니라 정말 필요로 하는 기본적인 소양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고 알려고 하는지 의문입니다’ 라는 글이 올라왔다. 학교 측은 학생들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계에서 교양 교육은 전공 공부를 위한 예비 교육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교양 과목의 경우 학점을 잘 따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는 경우도 잦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교양과목을 담당하고 있는 ㄱ교수는 “교양 교육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요즘 대학을 보면 취업사관학교로 전락해 버린 것 같다. 대부분의 수업이 취업과 연계되는 실무, 현장 교육 중심이며 교양 교육 담당 교수가 나가더라도 충원을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교양 교육 관련 수업을 좀더 확충하고, 인문학 교육 등을 늘려야 한다고 보지만 현실이 녹록치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실종된 ‘유의미한 삶에 관한 고민들’
교양 교육과 직업 교육은 반대되는 개념은 아니다. 이우창 방송대 교수(문화교양학과)는 “교양 교육의 올바른 옹호자라면 교양인의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삶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라면서 “교양 교육은 인간이 직업적인 삶, 즉 타인의 도구가 되어 물질적인 삶을 영위하는 존재로만 머물 수는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기적인 취업 목표만을 위해 학생의 삶에 필요한 중장기적 역량을 배제하는 방향은 학생들의 삶뿐만 아니라 대학 자체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것이 전부라면 대학 교육은 직업 학원의 도전에 취약해 질 수 밖에 없다”라고 진단했다.교양의 위기, 원인은 무엇일까. 이우창 교수는 “오늘날 한국의 교양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위기는 ‘유의미한 삶’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의 실종이라고 볼 수 있다. 교양의 위기는 애초에 그런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믿음 자체가 사회 전반적으로 급속히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오늘의 한국 사회는 도덕규범이 없는 아노미로 보이지만, 또 잘못된 개인에 대해 비난하는 맹렬한 여론을 보면 ‘과잉 도덕주의’에 빠진 이른바 이중적 사회라고도 할 수 있다. 개인에 대한 비난은 다른 극단적인 부작용을 낳기도 하고,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나 방향을 고민하는 목소리에 힘을 싣기 어렵게 한다. 그렇기에 “유의미한 삶, 올바른 삶의 길을 묻는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에는 한국의 교양은 여전히 위태로운 처지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우창 교수의 진단은 유효할 수밖에 없다. 
 
세상과 타인 그리고 자신에 대한 관심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작가이자 독일 최고의 철학 석학인 페터 비에리(1944~2023)는 그의 저서 『페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에서 교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각도로 고찰한다. 그에 따르면, 교양이란 사람이 자신에게 행하는, 그리고 자신을 위해 행하는 것이며,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으로, 교육과는 다른 개념이다. 그는 교육을 ‘타인이 나를 가르쳐 주고 이끌어 줄 수 있는 것’으로, 교양을 ‘오직 혼자의 힘으로 쌓고 채워 나갈 수밖에 없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이란 무엇인가?’ 대학에서 개론 수업을 들을 때 우리가 항상 마주하게 되는 질문이다. 기본적이면서도 어려운 철학적인 질문이다. 교양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찾아가고 질문을 던질수록 교양이란, 인격과도 가까우며 자신을 돌아보고, 세상과 타인에 대해 관심을 갖고 끊임없이 성찰하는 철학과 마음 수행과도 가까운 개념으로 읽힌다. 페터 비에리의 교양에 대한 정의를 공유하며 방송대 학우들이 춥고 긴 ‘동안거’의 시간, 교양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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