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설날 풍경

2월 10일은 민족의 대명절 설날이다. 작년부터 나이를 세는 방법이 달라지긴 했지만, 아직은 설날에 떡국 한그릇을 먹어야 한 살을 더 먹는 기분이다. 커버스토리 1면에서는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여러 이야기로 알아보고, 2면에서는 새로운 연령대로 진입한 ‘2060’ 학우들의 새해 계획을 들어본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2월 10일은 민족의 대명절 설날이다. 주말이 끼는 바람에 짧은 기간 동안 반가운 얼굴들을 만난다. 친척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뜨뜻한 떡국 한 그릇을 먹고 나서야 비로소 ‘한 살 더 먹었다’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올해 몇 살인지 아직도 헷갈린다. 어린이집에 가는 아이는 왜 여섯 살에서 다시 다섯 살이 되느냐고 동그란 눈으로 묻는데, 뭐라고 대답해줘야 할지 답답하다!

 

나이는 ‘낳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로 본다. 즉 낳은 날로부터 지나온 시간을 합친 것이 바로 나이라는 의미다. 우리나라에서 나이를 세는 방법은 세 가지다. 지난해 6월 28일 윤석열 정부가 ‘만 나이’로 통일하기 전까지는.

 

먼저 첫 번째 방식인 한국식 나이다. 한국은 ‘태어나자마자 한 살’을 먹는 나라다. 여기에는 아기가 엄마의 태중에서 보낸 10개월도 엄연히 한 인격체로 대한다는 의미가 숨어있다.

 

둘째로는 ‘만 나이’가 있다. 만 나이는 각자의 생일을 기준으로 1년이 지나면 한 살을 더 먹는 방식으로 센다. 민법 등 법률이나 정부 공식 문서에서 쓰는 나이로, 전 세계에서 사용하는 셈법이다. 현재년도에서 출생년도를 빼면 된다. 생일이 지났는지 아닌지에 따라 친구 사이에도 한 살이 적어지거나 많아지는 해프닝이 발생한다.

 

마지막으로 나이를 세는 방법은 ‘연 나이’로 새해 첫날이 되면 한 살을 더하는 방식이다. 중국에서 유래한 셈법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는 청소년보호법이나 병역법 등 일부 법률에서 드물게 연 나이를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식 나이인 만 나이와 연 나이를 결합할 경우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면, 2023년 12월 31일생 아이는 2024년 1월 1일 두 살이 된다. 태어난 지 이틀만에. 이쯤이 되면 ‘복잡하다’는 볼멘소리를 넘어 ‘불합리하다’는 불평이 나오는 것이 이해된다.

 

나이에 세세히 의미 부여하는 동양
어쨌든 곧 설날이다. 떡국과 함께 한 살 더 나이를 먹는다. 나이로 인한 신체 변화가 느껴질 때는 서글프기도 하지만, 그래도 정신적으로 지식적으로 관계적으로 한 뼘 더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할 때면 기분이 좋기도 하다. 물론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저절로 지혜가 더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은 각 연령대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능력과 깨닫는 것이 다르다.

 

동양에서는 나이에 의미를 세세히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는 공자의 나이 구분이다. 15세는 ‘학문에 뜻을 둔다’고 해 ‘지학(志學)’, 남자 20세는 관례를 치르고 성년이 된다는 의미에서 ‘약관(弱冠)’, 30세는 세상에 나가 자립한다는 의미로 ‘이립(而立)’, 40세는 세상일에 미혹당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불혹(不惑)’, 50세는 비로소 하늘의 이치를 알게 된다고 해 ‘지천명(知天命)’, 60세는 무슨 말을 듣던 순리로 듣는다고 해 ‘이순(耳順)’으로 불렀다.

 

60세 이후의 나이에도 여러 의미를 담은 말을 흔히 쓴다. 61세는 태어난 해의 간지(干支)로 되돌아간다는 의미에서 ‘환갑(還甲)’ 또는 ‘회갑(回甲)’, 62세는 환갑 다음해로 다시 나아간다는 의미로 ‘진갑(進甲)’, 70세는 당나라 시 「곡강(曲江)」의 구절을 따 ‘고희(古稀)’, 77세는 장수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희수(喜壽)’, 80세부터는 파자를 이용해 ‘산수(傘壽)’ 81세는 ‘반수(半壽)’ 또는 90을 바라본다는 의미에서 ‘망구(望九)’라고 한다. 88세는 ‘미수(米壽)’, 90세는 ‘졸수(卒壽)’, 91세는 100살을 바라본다는 의미에서 ‘망백(望百)’, 99세는 ‘백수(白壽)’, 100세는 사람의 수명 중 최고라는 호칭으로 ‘상수(上壽)’라고 불렀다. 물론 요즘은 100세를 넘겨 사는 이들도 많으니 새로운 호칭이 생길 것도 같다.

 

4050 중년의 신산한 마음
방송대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40대, 50대. 직장에서는 관리자로 일하는, 가정에서는 사춘기 아이와 늙어가는 부모님을 봉양해야 하는 나이다. 체력은 점점 떨어지고 책임져야 할 일들은 많아지지만, 정작 자신을 위한 온전한 시간, 노력은 적어진다. 헛헛한 마음에 서점에 들러 ‘40에 만나는 논어’, ‘50에 읽는 주역’ 같은 제목의 책들을 들춰보지만, 답답함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천하를 호령했던 로마의 황제 아우렐리우스도 신산한 50대를 보내지 않았던가.

 

신현욱 방송대 교수(영어영문학과)는 나이, 나이듦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이’는 과거를 되돌아보며 미래를 예측하는 추(錘)로 저마다의 값이 매겨져 있고 오늘날에는 더 많은 책임이 요구된다. 제 나이의 무게와 균형을 유지하려면 지식과 경험을 쌓는 노력이 필요하다. 균형이 맞지 않으면 어려움을 피할 수 없지만, 균형이 잡히면 미래에 대한 지혜가 열린다.”

 

신 교수의 조언대로 제 나이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다. 심리학자 레이몬드 카텔이 1963년 고안한 개념 중 ‘유동지능’과 ‘결정지능’은 그런 의미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먼저 유동지능은 새로운 추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으로 이해, 문제 해결, 학습과 관련있다. 단기기억 능력, 눈과 손의 빠른 처리 능력이 여기 속한다. 나이가 들수록 퇴화하는 능력이다.

 

성장과 좌절이 진실하게 누적된
자신만의 기록이야말로 유일무이한

나만의 서사가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결정지능은 이전에 학습한 적이 있는 일차적·관계적 추상개념을 적용해 이차적이고 관계적인 추상개념을 연역해 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지혜, 회복력, 평정심, 통찰력 같은 능력으로 나이가 들수록 잘 발휘되는 영역이다. 이렇게 보면, 에너지가 충만한 40대까지는 속도도 내고 경쟁도 하면서 목표지향적인 삶을 산다면, 50 이후에는 나 없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는 점을 명심하고 조직의 일원이나 부모, 배우자, 자식의 역할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인생을 살며 자신의 역사를 써나가야 한다. 성장과 좌절이 있는 그대로 누적된 자신만의 기록이야말로 유일무이한 나만의 서사가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 ‘나’
우리는 훌륭해지기 위해 태어난 것도 아니고, 누구를 위한 도구로 태어난 것도 아니다. 송길영 작가는 『시대예보』에서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 ‘나’라고 지적한다. “‘지금, 여기’를 충실하게 살아내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새로운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나는 소중하기에 내 소중한 삶을 유예할 수 없다. 각자 삶의 중심은 자신에게 있다. 지금의 나는 늙었기 때문에 무언가 해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젊을 때부터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결국 죽음을 향해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의미다. 진세란 작가는 『사람들이 죽기 전에 후회하는 33가지』에서 오늘, 진심으로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질문한다. ‘완벽주의를 버리고 더 많은 실수와 실패를 경험했더라면’, ‘사랑이 다가올 때 두려움 없이 사랑했다면’, ‘완벽한 부모가 되려고 뼈를 갈면서 살지 않았더라면’, ‘돈을 좀 더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먹고 살기 위한 일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았더라면’, ‘시작하기에 늦은 때란 없다는 걸 알고 살았다면’ ….

 

저 거대한 피라미드도, 만리장성도 돌 하나를 놓는 것에서 시작했다. 생각은 쉽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그렇다면, 한 살 더 나이를 먹는 설날 즈음에 죽음을 기억하며 우리가 놓을 돌 하나는 무엇일까? 방송대에서 그 해답을 찾고 있는 학우들의 이야기를 2면에서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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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글 공감합니다.^^
    2024-02-06 11:44:44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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