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한 작가가 어느 한국 대학의 졸업식장 풍경을 정리한 글이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다. 최고의 지성인 대학 총장이 앞에서 졸업식 축사를 전할 때, 졸업식장 밖에서는 졸업 가운을 입은 이들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어묵을 먹고 있는 진기한 풍경이 대학가를 배회하고 있다고 했다. 시간이 제법 흘렀지만, 이 졸업식장 풍경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2월이면 한국 대학가는 졸업식이 이어진다. 졸업식장으로 가는 길은 차로 빽빽하게 막히고, 식장 근처에는 꽃을 파는 이들이 즐비하게 이어져 있을 것이다. 졸업식장 안에서는 공부 잘해서 상 받는 이들이 앞 열에 앉아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연단에는 멋진 표현으로 수놓아진 축사를 머릿속으로 점검하는 내·외빈이 꼿꼿한 자세로 내려다볼 것이다.
졸업식은 이 앞 열과 연단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 외의 공간은 텅 비어 있다. 공간의 무게만큼 서로가 서로에게서 따로 존재한다. 대학 졸업식은 왜 이렇게 형식화된 것일까. 최고의 지성,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를 배출하는 대학 졸업식이라면 좀더 역동적이고 기발할 수는 없을까.
방송대도 2월 20일 학위수여식을 한다. 체육관에서 열린 과거 졸업식 행사의 경험으로 본다면, 올해 행사도 예년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스무살 안팎에 대학생이 돼 4~5년 공부해 졸업하는 일반 대학이 아닌 방송대라면 졸업식의 무게를 좀더 고민해 봐도 좋을 것이다. 5년, 10년, 20년 걸려 졸업하는, 요컨대 ‘인간승리’와 같은 감동의 서사가 졸업생들 모두에게 있을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감동과 설렘을 졸업식에 담아낼 방법은 없을까.
아이디어가 없는 건 아니다. ‘감동과 설렘을 담아내는 졸업식’으로 10명 정도의 흥미로운 사례로 스토리텔링을 만들 수도 있다. ‘캠퍼스패밀리’ 학우들, 초고령학습자, 사회 엘리트층, 역경 속에서 완주한 이들, 방송대 공부를 통해 사회에 건강한 빛을 던진 이들, 여러 학과를 졸업하며 학업을 이어온 평생학습자 …. 이들 모두가 방송대를 구성하는 소중한 보물이다.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는 이들을 격려하고 상을 주는 것 못지않게 이들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방송대의 저변에 흐르는 단단하고 유연한 전통을 한국 사회에, 우리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엘빈 토플러는 “21세기의 문맹은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배울 줄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끊임없이 배우고 도전하는 이들, 바로 방송대 사람들이다. 유명 가수가 나와 분위기를 돋우는 것도 아름답지만, 자기 도전의 한 단계를 완주하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졸업생의 이야기를 방송대 안에서 증폭하고, 이를 한국 사회로 내보내는 일이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이미 학교를 졸업한 방송대 선배 동문들께도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지난해 방송대는 졸업가운을 전면 개편했다. 훨씬 더 아름답고, 산뜻하고,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디자인이다. 학과 교수들에 따르면, 이미 졸업한 동문들 가운데는 학교에 찾아와 바뀐 이 졸업가운을 입고 ‘졸업사진 다시 찍기’를 하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 뜻이 맞는 이들, 스터디나 학생회를 같이 했던 이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새로운 졸업가운을 입고 ‘졸업사진 다시 찍기’를 조용히 확산해 가는 건 어떨까. 학교를 다시 찾아 새로운 졸업가운을 입고 졸업사진을 찍다 보면, 어느새 새로운 학문과 공부에 눈길이 가지 않을지? 학교도 졸업생들이 새 졸업가운을 입고 졸업사진 다시 찍기를 권장하고, 이를 활용하는 일에 어려움이 없도록 도움을 준다면, 재입학의 기회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