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제28대 전국총동문회 상임부회장으로 이번에〈KNOU위클리〉전국동문통신원 단장을 맡게 됐다. 짐을 떠안고 보니 지나간 시간이 빠르게 뇌리를 스쳐간다. 제21대 서울총동문회장의 임기를 마칠 때 ‘이제는 동문회도 졸업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다시 제28대 전국총동문회와 발걸음을 함께하게 되면서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게 됐다.
‘위클리’ 동문통신원의 역할은 동문회와 학교, 후배 학우들과 소통하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방송대를 졸업한 선배들이 지역사회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어떻게 방송대의 명예를 드높이고 있는지 발굴하는 한편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동문을 통해 방송대 구성원의 자긍심을 드높이는 것은 정말 중요하고 값진 일이다. 상임부회장으로서 동문통신원 단장이란 막중한 직책까지 겸하게 된 데는 학보 ‘위클리’를 통한 소통과 교감 작업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이해가 작용한다.
사실 필자는 동문회도 잘 모르고 살 뻔했다. 아마도 두 번째 학과인 일본학과에 입학하지 않았다면, 동문회의 의미도 모르고, 무늬만 ‘방송대 졸업생’으로 살았을 것이다. 1986년 행정학과를 마치고 20년이 흐른 뒤에 일본학과를 찾은 데는 계기가 있었다.
2005년 가을, 회사 일로 일본을 1주일간 견학한 적이 있었다. 이 1주일 동안, 나는 내 자신이 일본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또한 일본어로 대화 한 마디도 제대로 나눌 수 없는 궁색한 처지임을 알게 됐다. 새로운 고민이 시작됐다. 앞으로도 회사 일로 일본 출장을 하게 될텐데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야 할지 두려웠다. 고민 끝에 2006년 일본학과 1학년으로 입학했다.
히라가나, 가타가나도 모르고 일본학과에 입학했기에 어학으로서의 ‘일본어’를 배운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스터디를 추천받아 공부하면서 같은 학번의 젊은 친구들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사실 젊은 친구들과 공부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청량한 자극제가 됐다. 젊은 학우들을 따라가려면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러한 노력이 일본학과를 4년 만에 졸업할 수 있게 만든 동력이었던 것 같다.
일본학과를 졸업한 후 일본학과 동문회에 참여하면서 비로소 ‘방송대 동문회’의 의미를 알게 됐다. 제9~10대 일본학과 동문회장을 역임한 후 40여만 명의 동문이 소속돼 있는 서울총동문회장(2020~2021)을 거쳐 지금에 이르게 됐으니, 일본학과 선택은 개인적으로도 방송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도 중요한 인생 기로였다고 할 수 있다.
동문통신원단은 빈원영 제26대 전국총동문회장 때 첫걸음을 옮겼다. 이후 성준후 제27대 총동문회장의 ‘100만 인의 꿈’을 지나 손현례 제28대 총동문회장의 ‘서울에서 한라까지’로 이어졌다. 학교와 재학생, 동문 등 80만 방송대인의 소식을 전하는 ‘위클리’의 동문통신원은 전국 13개 지역에서 활동하는 동문과 동문회 소식을 알차게 전달하려고 한다. 지역 동문회의 발전과 동문들의 화합을 위해 동문통신원단은 모두가 자신의 역할을 다할 것이다.
지금까지 방송대와 함께한 39년의 인연을 돌아보면, 필자 역시 모교 방송대가 ‘내 인생을 바꾼 대학’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전국동문통신원 단장으로서 방송대의 부흥과 13개 지역동문회의 동반 성장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자 한다. 39년을 함께한 방송대, 사랑합니다. 방송대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