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프리즘

방송대에서 추구하는 배움과 학문은 각자의 분야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공통적으로 배움을 추구하는 우리 역시

모두 얽혀 있는 존재며, 마치 탱고 댄스를 추듯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상호작용하고 있습니다.

 

방송대에서 새 출발을 하게 된 올해부터 따뜻한 환영을 받으며 계속 새로운 얼굴을 알아가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새 만남의 자리를 통해 많은 분들과 인사를 나누었지만, 제 이름과 전공만 간단히 소개했을 뿐, 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통해 소개한 경우가 적었던 것 같아 방송대 공동체 여러분께 인사말을 몇 줄 적게 됐습니다.


예전부터 영어영문학과는 무엇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학과냐는 질문을 받을 때, 많은 사람에게 쉽게 대답하기 어려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영어를 잘하는 법을 가르치기보다, 책이라는 매체를 자세히 읽고, 작품(더 세부적으로는 소설)을 통해 사유하는 방법을 탐구하는 일을 한다고 하면 어렵게 생각하는 분도 많았습니다. 문학을 왜 연구하는지 설명하는 것은 더욱 복잡한 과제 같습니다


저의 세부 연구분야는 19세기 영국 소설입니다. 강의에서 다루는 작품은 대부분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태동한 시기와 대영제국이 다른 나라의 주권을 침탈하던 시기를 반영하며, 이런 사회 변화를 역동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책을 학생들과 함께 읽어나갑니다. 이 시대의 영국 작가들은 목가적 시골 풍경부터 황폐해져 가는 농촌까지, 귀족층의 화려한 전원생활부터 빈곤층의 암울한 도시 생활까지 많은 상황과 쟁점을 글로 재현합니다. 소설이라는 매체가 가진 감각과 분위기를 통해 독자의 생각을 자극하며 독자를 깊이 사유하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 공부는 독자에게 쉬운 해답을 주지 않지만, 인문학적 사고의 깊이를 키워줍니다.


현재 인문학은 위기에 처해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디지털 시대에 전통적 인문학이 전공 분야로서 점차 인기를 잃고 있으며, 전지구적 기후 위기 등의 상황으로 인해 인문학적 지식과 가치가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책을 읽고 연구하는 것이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기에 눈앞의 효율과 수익만 보면 가치가 떨어지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인문학이 당장의 위기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사유와 가치관 형성에 여전히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미국의 UC버클리대학교 교수 주디스 버틀러는 인간이란 모두 위태로운 생명이며, 벌거벗은 생명이라는 존재는 위기 앞에서 ‘취약함(precarity)’을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누구도 재난이나 위기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는 점, 모든 생명은 근본적으로 위태로움에 처해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상호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 타자의 연결을 계속해서 탐색하는 학문은 더욱 필요하며,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과연 누구와 (혹은 무엇과) 어떻게 얽혀 있으며 새로운 연대를 어떻게 구축할 수 있는지 질문하는 것은 더욱 의미 있습니다.


또한 기후 위기를 맞아 인간과 자연 모두의 장기적 안녕과 비인간(nonhuman) 존재와의 공생 전략을 모색하는 사유는 더욱 중요합니다. UC산타크루즈대학교 명예교수 도나 해러웨이의 저서 『트러블과 함께하기』는 모든 생명을 지구에 묶인 자들로 정의합니다. 해러웨이는 자연을 수동적인 자원으로만 인식하던 근대적 사고에서 벗어나, 다종(multispecies)간 공생이라는 뿌리 깊은 전략적 생존 방식을 주목합니다. 인간과 비인간 존재가 얽혀 있는 형태를 통해 위기에 처한 삶을 다시 되돌아보며, 근대 인간중심주의를 탈피함과 동시에 공생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고 이를 통해 인문학적 사유의 지평을 넓히자는 것입니다.


모든 인문학적 사유란 궁극적으로 이와 같이 인간과 인간의 맞닿음뿐 아니라, 인간이 아닌 존재와의 복잡한 얽힘까지 모니터링하고 기록하고 새로 구축하는 사유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결국 버틀러가 말하는 대로 지구라는 위태로운 보트를 함께 탔다는 것 자체가 상호의존의 근거라면, 위기에 처한 사회는 모든 생명의 공통 분모인 취약함에 대한 더욱 깊은 성찰이 필요할 것입니다.


저 역시 영국 소설을 연구하면 할수록 현재와 동떨어진 예전의 것으로 보기보다, 위태롭게 발전한 오늘의 고도 산업자본주의 사회에 문학이 시사하는 바를 찾으며, 현재와의 접점을 통해 문학의 가치를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방송대에서 추구하는 배움과 학문은 각자의 분야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공통적으로 배움을 추구하는 우리 역시 모두 얽혀 있는 존재며, 마치 탱고 댄스를 추듯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상호작용하고 있습니다. 이 상호작용을 통해 우리 학교가 풍부한 지식과 교육의 기반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지니며, 앞으로도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방송대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3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0
댓글쓰기
0/300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