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마로니에]

이현구 출판문화원 편집팀

“사랑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보는 것이다.”
생텍쥐페리가 했다는 이 말에 수긍하려면 서로를 언제든 떠나보낼 수 있어야 한다. 더는 같은 방향을 볼 수 없을 때가 올 테니까.
사랑에 대한 내 나름의 좀 덜 낭만적인 정의는 이렇다. “사랑은 상대가 어디를 보든 내버려두는 것이다.” 결혼 10년 차인 나와 아내의 현실이기도 하다. 늦은 밤 소파에 앉은 내가 스마트폰으로 비트코인 시세를 확인할 때 옆자리의 아내는 ‘트렌디 드라마’에 빠져든다.
이런 드라마에서 남주인공은 너무 완벽하고, 통과의례 같은 장해물은 너무 쉽게 극복된다. 그런 비현실적인 이야기에 열광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물론 사랑은 상대가 어디를 보든 내버려두는 것이니 난 간섭하지 않는다.
하지만 주변인물들이 너무 평면적이고 전형적이라는 게 불편하다. 심각한 고뇌나 복합적인 감정은 1도 없어 보이는 그들은 예정된 결말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주변인’이다. 현실 속의 나처럼.
얼마 전에 모처럼 아내와「눈이 부시게」라는 드라마를 같이 보기로 했다. 잠시 같은 방향을 보기로 한 셈이다.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줄거리가 그럭저럭 재미있었지만 후반부까지도 인물들의 감정 변화나 행동의 이유, 작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종영을 앞두고 ‘혜자’가 수십 년 전의 자신과 만난 장면에 이르러서야 드라마는 진면목을 드러내고 ‘역대급 반전’ ‘웰메이드 드라마’ 같은 찬사를 얻어낸다. 혜자는 시간여행자가 아니라 알츠하이머 환자였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실제로는 아들과 며느리였다. 초중반의 모든 이야기는 치매 노인의 온전치 않은 정신이 빚어낸 환상이었다.
현실의 혜자는 수십 년 전 독재 권력에 의해 남편 준하와 사별했고, 편부모가 된 후엔 아이마저 사고를 당해 신체적 장애를 입는다. 가혹한 운명을 묵묵히 견뎌낸 혜자는 삶의 끝자락에서 기억 속의 행복과 눈앞의 실제를 뒤섞어 자기만의 현실을 재구성했던 것이다.
심리학 관련 서적들을 조금 읽은 아마추어로서 해석해 보면, 퇴행성 뇌질환인 알츠하이머가 혜자의 영혼을 구원한 것 같다. 취사선택한 기억을 현재와 뒤섞음으로써 그녀는 과거의 행복에 구속된 동시에 과거의 고통으로부터는 해방되었기 때문이다. 질병이 역설적으로 일종의 심리치료로 작용한 셈이다. 과거와 현재를 재구성해서 대안적인 삶을 만들어낸 것은 ‘이야기치료’의 원리를, 아들 내외를 부모로 인식한 것은 ‘재양육’ 기법을 연상시킨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과 뒤이은 용서와 화해를 목격하며 아내와 나는 오랜만에 같은 곳을 바라보고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드라마를 타인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혜자의 고통은 본질적으로는 주변인이기에 감내해야만 했던 것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불현듯 나 역시 대안적 현실에서 행복을 찾고 있음을 깨닫는다. 난 가끔 상상 속 타임머신을 타고 6~7년 전으로 돌아가 비트코인을 산다. 미래를 뻔히 알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면 거액을 손에 쥘 수 있다. 부질없는 몽상일 뿐이라고 비웃어도 어쩔 수 없다. 행복과 기쁨이 그렇듯이 불행과 고통도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다. 시간여행이 허락된다면 주변인 콤플렉스에서도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아내가 트렌디 드라마에 몰입했던 것도 그래서였을까? 이런 한심한 남편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 남주인공과의 상상 속 로맨스를 즐겨온 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또한 반전이다.
나도 죽음을 앞두고 혜자처럼 ‘어느 하루도 눈부시지 않은 날은 없었다’고 회고할 수 있을까? 비트코인으로 떼돈을 버는 망상에 빠졌던 날들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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