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기고

“그러게 말야. 6천만 원 모으면 된단다. 얼마나 깔끔하고 좋니~.”
고등학교 동창들과 요양원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야기는 곧 우리들의 노후로 이어졌고, 우리는 ‘깔끔한 존엄사’를 가능하게 하는 스위스행에 적극 동의했다. 사적 공간이라고는 조금도 허용하지 않는 요양원의 비루한 일상을 참기 힘들기도 했거니와, 부모님들의 먹어가는 귀와 느려지는 반응에 대한 답답함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늙으면 스스로 삶을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 끝이어서였을까. 영화 「플랜 75」(감독 하야카와 치에)이 끝나고 나서 한참을, 먹먹한 가슴으로 앉아 있었다. 친구들과의 대화가 엔딩 장면에 겹쳐졌다. 우리의 그런 ‘깔끔한 죽음에 대한 소망’이 ‘국가적 제도화’를 등에 업게 되면 얼마나 손쉽게 개인의 존엄을 짓밟는 정책이 될 수 있는지를, 영화는 주인공 미치의 삶을 통해 조용하고도 깊게 웅변하고 있었다.


1
영화의 시작은 한 청년의 노인살해, 그리고 그 살인에 대한 변명으로 시작된다.
“노인인구의 과잉은 일본경제를 말아먹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젊은 세대가 당하고 있다. …나의 이 용기 있는 행동이 계기가 되어 … 이 나라의 미래가 한층 밝아지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청년은 노인을 살해한 후, 자신의 ‘용기 있는’ 살인을 사회가 이해해줄 것을 기원한다. 청년의 독백에 화답하듯, 오랫동안 노인문제에 시달려 왔던 저발전의 일본정부는 노인의 죽음과 장례를 보장하는 제도를 도입한다. 이른바 ‘플랜 75’. 75세가 넘는 노인들은 이 자살 플랜을 신청할 수 있다. 신청하면 국가는 곧바로 10만 엔을 지급하며, 24시간 콜센터 상담사가 일대일로 인생을 정리하는 상담을 진행한다.
“태어나는 건 내 선택이 아니었지만, 죽는 건 선택할 수 있잖아요?”
국가는 ‘플랜 75’를 그렇게 홍보한다. 개인의 자발적 선택에 의한 죽음을 국가가 보장해준다는 것, 영정사진도 예쁘게 찍어주고 마지막 호사를 할 수 있는 돈도 주며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상담도 제공된다. 제도적으로는 나무랄 것이 없다. 아니, 환상적일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뭔가 좀 꺼림직하다. 뭐가 문제일까?


「플랜 75」는 우리의 늙음에 대한 혐오가 어렵지 않게

국가정책의 제도적 폭력성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동시에 우리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관계이며 연민임을

조용히 돌아보게 하는 수작(秀作)이다.

 

 

2
첫 아이를 낳자마자 잃고 혼자 살면서 호텔 청소일을 하는 78세의 미치는 흐트러짐 없이 살아가는 단단한 여성이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지만 눈동자가 맑고, 굵어진 손에는 옹이 박혀있지만 몸이 재고 날렵하다. 작고 초라한 집이지만, 미치가 들어서면 생기가 돈다. 작은 화초하나, 밥 한 끼, 차 한 잔에도 미치는 늘 감사를 표하며 두 손을 모은다. 사소한 몸짓에도 오랜 기간 다져진 예절이 배어있다.
잔잔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미치에게 변화가 찾아온다. 나이 많은 동료 이네가 업무도중 쓰러지자 나이 많은 직원들이 일괄 강제퇴직을 당하게 된 것이다. 미치는 퇴직의 순간에도 작은 사물함 앞에서 “그간 감사했습니다”라며 사물함을 깨끗이 닦고 두 손을 모은다. 한숨, 다시 집, 그리고 취업센터. 다시 한숨, 집. 혼자 사는 빈곤여성은 재취업을 할 수도, 융자를 받을 수도, 이사를 할 수도 할 수 없다. 미치는 결국 생활보호센터를 찾았다가 무료급식을 나눠주는 공원에 가게 된다. 차마 급식을 타지 못하고 앉아있는 미치에게 친절한 목소리가 들린다. “괜찮으시면 이거 드셔요.” 친절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플랜 75의 직원 히로무. 미치는 결국 생활보호대상자가 아닌 플랜 75를 선택하게 된다.
플랜 선택 이후, 미치는 전화 상담을 받는다. 15분의 짧은 상담시간 동안, 미치는 자기 삶의 이야기를 들어준 상담사 요코에게 더없는 연대감을 느낀다. 누구와도 내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던 정갈했던 한 여인. 그 여인은 마지막 바람으로 상담사와 만나 식사를 하고 생전 처음 볼링을 친다. 너무나 밝고 건강한, 삶에의 에너지가 넘치는 스트라이크. 마지막 상담에서 미치는 전화기를 부둥켜안은 채 머리 숙여 인사하며 오열한다. “감사합니다. 제 얘기를 들어주어 정말로 감사합니다….”
미치는 자신이 선택한 죽음의 날을 맞이한다. 희뿌연 아침 커튼 위로 옹이 진 손이 올라온다. 세월을 가득담은 성실함의 손. 동료의 외로운 손을 잡아주었던 단단한 손. 행주를 빨고 찬합을 단정하게 정리한 후 미치는 센터로 향한다. 약을 먹고 눕는다. 옆자리에는 늙은 남자가 호흡기를 쓴 채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언젠가 인연을 맺었을 수도 있을 남자. 아, 이렇게 죽는 것은 아닌데, 라는 급작스런 깨달음. 결국 미치는 침상을 도망치듯 빠져나온다.
센터를 벗어나자, 미치는 잠시 선다. 마을 건너 능선으로 거대한 태양이 저물고 있다. 이미 집도 돈도 없어져 버린 미치에게 아무것도 남은 것은 없다.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게 될지, 한 끼 밥은 가능할지 알 수 없다. 그래도 태양은 찬란하게 빛나고 미치는 그 태양을 마주하고 있다. 숨을 쉰다. 살아있다. 일몰을 바라보며 미치는 노래 부른다. ‘늙은’을 삽입한, 자신의 존재증명과 같은, 고독한 심연의 생명력이 깃든 노래.
“늙은 사과나무 그늘 아래에서 내일 우리 다시 만나요 황혼이 깃들고 석양이 서쪽으로 기울면…”
간단하게 ‘처리’될 뻔 했던 인간은 그렇게 다시 길을 나선다.


3
미치에게 무료급식을 권했던 플랜 75 직원 히로무는 자신의 삼촌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화장돼 산업폐기물 처리장에 뿌려지는 것을 도저히 볼 수 없어 헐레벌떡 센터로 들어와 삼촌의 시신을 빼돌린다. 유품정리사가 된 이주여성 마리아는 히로무가 시신을 옮기는 모습을 보고 얼른 자기 카트를 빌려주며 함께 옮긴다. 전화상담원 요코는 미치와 개인적으로 만나고 상담이 종료된 미치에게 전화를 건다. 등장하는 청년들 모두가 ‘플랜 75의 규정을 어기고’ 그렇게 한다.
‘차마’ 혹은 ‘도저히’ 인간이 부품처럼, 폐기물처럼 처리되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헐떡임과 숨소리만 오가는 아무 말도 없는 동참, 눈빛에 담긴 연민. 인간은 구체적인 다른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이 되고, 존엄이란 제도적 훼손을 인간이 막아서는 데서 지켜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영화는 이들 청년들의 모습을 통해 분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깔끔하고 명료한 것, 누군가에게 신세지지 않고 독립적인 것,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을 좋아한다. 제도는 그것이 옳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생은 그렇게 깨끗하지도 명료하지도 독립적이지도 않다. 삼촌은 아마도 미치의 첫 남편일 지도 모른다. 유품정리사 마리아는 돈을 남기고 죽은 노인 덕분에 아이의 심장수술을 하게 될 거다. 히로무는 삼촌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렇듯 처절한 마음으로 회사의 규정을 위반하지 않았을 것이다. 관계란 그런 것이다.
말로는 ‘평등한 죽음의 기회’를 말하지만 사실 국가는 ‘죽을만한 누군가’를 찾아다닌다. 플랜75 직원들은 생활보호대상자들에게 무료급식을 제공하고, 노숙자들이 누워 잘 수 없도록 벤치에 칸막이를 하고, 빈곤층이 많은 공원에서 신청서를 받는다. ‘사회문제’가 되어버린 노인들이란 사실은 빈민 노인들인 것이며,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미명하에 플랜 75는 빈민노인 청소, 예컨대 노숙자나 끼니를 걱정해야하는 생활보호대상자들을 사회에서 체계적으로 걷어내는 작업을 했던 셈이다. 국가는 빈민노인들 대한 관리비용을 최소화하고 ‘3년 동안 1조 엔’의 경제적 이익을 성공적으로 거둬 냈다. 성공적인 이 정책이 버린 것은 ‘인간’이었다.

사진 출처=www.imdb.com
4
영화의 말미, 국가는 플랜 75의 성공을 이어, 플랜 65, 즉 65세 이상의 국민들에게 죽음의 선택권을 확장하는 제도를 고려하고 있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사회는 또다시 국가경쟁력의 팻말을 들고 돈 없고 힘없는, 다소 젊은 노인을 찾아 나설지도 모를 일이다. 나치의 인종청소가 그랬듯, 타자성 혐오에 기반한 국가정책은 가공의 파괴를 낳는다. 무능한 노인에 대한 혐오는 곧 무능한 인간 전반에 대한 처리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10억 엔에 달하는 ‘생산성’을 소리 높여 외치는 플랜 75에 대해, 영화 어디에서도 반대하는 목소리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도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치의 건너편에 앉은 어떤 이는 벌떡 일어나 플랜 75 홍보영상 플러그를 빼버리고, 어떤 이는 플랜 75 홍보 입간판에 토마토를 던진다.
플러그를 뽑아버린 사람을 바라보며 미치는 조용히 훗, 하고 미소 짓는다. 작은 연대감. 미치는 평범했지만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은 고유한 인간이었으며, 그녀는 또다시 살아갈 것이다.그녀의 감사함의 기도는 다시 누군가의 손끝에서 타인에 대한 존중과 관용으로, 그리고 연대로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플랜 75」는 우리의 늙음에 대한 혐오가 어렵지 않게 국가정책의 제도적 폭력성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동시에 우리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관계이며 연민임을 조용히 돌아보게 하는 수작(秀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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