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민 동문, 시인 - 우리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예슈아신학대학원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했다. 월간 <한맥문학>세 시를 발표해 등단했다.
벼룩은 높이뛰기의 달인이다. 보통 30센티미터를 뛰지만 생물학자가 7~8센티미터 높이의 컵에 넣고 뚜껑을 닫아버리자 여러 차례 뚜껑 문에 부딪친 후에 똑똑해진 벼룩들은 유리병 뚜껑 높이에 맞춰 뛰기 시작했다. 아기 코끼리 다리에 쇠줄을 달아 나무에 묶어 놓으면 아기 코끼리는 움직이지 못한다. 성체가 된 그 코끼리에게 다시 쇠줄을 묶어 놓아도, 엄청난 힘으로 그 쇠사슬을 끊을 수 있음에도, 어릴 적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포기한다.
위의 두 사례는 ‘학습된 무기력’을 실증하고 있다. 어릴 때는 인생이 상당히 긴 것 같으나 실상 나이가 들어보면 상당히 짧은 것을 실감한다. 그래서 인생에서 간접경험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수많은 인간을 다 만나서 인생을 물어볼 수도 없다. 책은 인류가 남긴 위대한 유산이며 간접경험을 할 수 있는 최고의 자산이다. 책은 우리가 살아 온 날을 거울로 비춰보게 하며 앞으로 살아갈 날을 안내하는 멋진 길잡이다.
근래 한국인은 책을 가까이 하지 않고 있다. 한 권의 책의 가치를 모르는 자는 책을 무시한다. 하지만 단 한 번이라도 책을 써 본 사람은 책의 가치를 안다. 책의 가치를 아는 자는 책을 안 볼 수 없다. 그 속에 가장 빨리, 가장 높이 오르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이 독서의 진정한 효과다.
우리는 참다운 성공의 길을 가려면 세 가지의 틀을 깨야 한다. 욕심의 틀, 자아의 틀, 무지의 틀이 그것이다. 인간은 이 세 가지의 틀에 갇혀서 태어난다. 이 틀을 깨야 학문의 단계인 ‘진실의 눈’이 열린다. 그 다음 ‘진리의 눈’이 열린다. 끝으로 ‘본질의 눈’이 열린다. 그 때 비로소 나와 인생을 알고 살아 갈 수 있다. 책을 통해서 이 틀을 깰 수 있다.
인생은 세 가지의 보람을 느끼고 살아간다. 하나는 무언가 배우고 성취할 때 오는 보람이다. 그래서 공부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내가 모르는 인생을 깨달을 때 오는 보람이다. 책을 읽으면 그것을 느낄 때가 많다. 자신을 알고, 인생의 의미를 찾고, 새로운 미래를 찾아가는 여행이 시작된다. 우리가 배우고 깨닫는 데 독서만큼 위대한 발명은 없다. 세 번째는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성취할 때 오는 보람이다. 책은 이 세 가지를 발견하게 하는 엄청난 효과가 있다.
벼룩과 아기코끼리는 스스로의 한계에 갇혀서 자유로운 세상이 왔는데도 자신의 틀을 깨지 못해 우물 안 개구리가 되고 말았다. 한 권의 잘 써진 책이란 적어도 십년의 진실을 압축하고 있다. 만약 누군가 천 권의 책을 읽었다면 그는 적어도 만년의 시간을 압축해서 인생을 보고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책을 읽은 사람과 안 읽은 사람의 차이는 이토록 분명하다.
니체는 ‘인간은 초극 돼야 할 존재’라고 말했다. 인생을 주인으로 사느냐 종으로 사느냐의 문제, 시대를 이끄는 자로 살 것이냐 끌려가는 자로 살 것이냐의 문제는 여기에 달려 있다. 장자라는 책에서 장자와 혜자가 대화를 한다. 장자가 “저 물고기를 보시오. 저것이 물고기의 낙이라네.” 혜자가 “아니 자네는 물고기도 아닌 것이 어떻게 저 물고기의 낙을 아는가?” “나는 직관으로 알았다네.” 학문은 이론과 경험과 직관의 요소로 구성되었다. 직관의 눈으로 물고기와 소통했던 장자야말로 인간과 자연과 시대를 통달한 위대한 선각자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론의 틀도, 경험의 틀도 깨고 나와야 새로운 미래의 영적인 르네상스가 펼쳐진다. 독서가 이를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에 새로운 독서가 필요한 이유다. 독서는 나를 읽는 것이며 인생을 읽는 것이며, 동시에 진리와 미래를 읽는 통찰력을 제공해 준다.
위의 두 사례는 ‘학습된 무기력’을 실증하고 있다. 어릴 때는 인생이 상당히 긴 것 같으나 실상 나이가 들어보면 상당히 짧은 것을 실감한다. 그래서 인생에서 간접경험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수많은 인간을 다 만나서 인생을 물어볼 수도 없다. 책은 인류가 남긴 위대한 유산이며 간접경험을 할 수 있는 최고의 자산이다. 책은 우리가 살아 온 날을 거울로 비춰보게 하며 앞으로 살아갈 날을 안내하는 멋진 길잡이다.
근래 한국인은 책을 가까이 하지 않고 있다. 한 권의 책의 가치를 모르는 자는 책을 무시한다. 하지만 단 한 번이라도 책을 써 본 사람은 책의 가치를 안다. 책의 가치를 아는 자는 책을 안 볼 수 없다. 그 속에 가장 빨리, 가장 높이 오르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이 독서의 진정한 효과다.
우리는 참다운 성공의 길을 가려면 세 가지의 틀을 깨야 한다. 욕심의 틀, 자아의 틀, 무지의 틀이 그것이다. 인간은 이 세 가지의 틀에 갇혀서 태어난다. 이 틀을 깨야 학문의 단계인 ‘진실의 눈’이 열린다. 그 다음 ‘진리의 눈’이 열린다. 끝으로 ‘본질의 눈’이 열린다. 그 때 비로소 나와 인생을 알고 살아 갈 수 있다. 책을 통해서 이 틀을 깰 수 있다.
인생은 세 가지의 보람을 느끼고 살아간다. 하나는 무언가 배우고 성취할 때 오는 보람이다. 그래서 공부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내가 모르는 인생을 깨달을 때 오는 보람이다. 책을 읽으면 그것을 느낄 때가 많다. 자신을 알고, 인생의 의미를 찾고, 새로운 미래를 찾아가는 여행이 시작된다. 우리가 배우고 깨닫는 데 독서만큼 위대한 발명은 없다. 세 번째는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성취할 때 오는 보람이다. 책은 이 세 가지를 발견하게 하는 엄청난 효과가 있다.
벼룩과 아기코끼리는 스스로의 한계에 갇혀서 자유로운 세상이 왔는데도 자신의 틀을 깨지 못해 우물 안 개구리가 되고 말았다. 한 권의 잘 써진 책이란 적어도 십년의 진실을 압축하고 있다. 만약 누군가 천 권의 책을 읽었다면 그는 적어도 만년의 시간을 압축해서 인생을 보고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책을 읽은 사람과 안 읽은 사람의 차이는 이토록 분명하다.
니체는 ‘인간은 초극 돼야 할 존재’라고 말했다. 인생을 주인으로 사느냐 종으로 사느냐의 문제, 시대를 이끄는 자로 살 것이냐 끌려가는 자로 살 것이냐의 문제는 여기에 달려 있다. 장자라는 책에서 장자와 혜자가 대화를 한다. 장자가 “저 물고기를 보시오. 저것이 물고기의 낙이라네.” 혜자가 “아니 자네는 물고기도 아닌 것이 어떻게 저 물고기의 낙을 아는가?” “나는 직관으로 알았다네.” 학문은 이론과 경험과 직관의 요소로 구성되었다. 직관의 눈으로 물고기와 소통했던 장자야말로 인간과 자연과 시대를 통달한 위대한 선각자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론의 틀도, 경험의 틀도 깨고 나와야 새로운 미래의 영적인 르네상스가 펼쳐진다. 독서가 이를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에 새로운 독서가 필요한 이유다. 독서는 나를 읽는 것이며 인생을 읽는 것이며, 동시에 진리와 미래를 읽는 통찰력을 제공해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