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時與知 시대를 여는 지식 네트워크]

전성원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 - 1987년 서울지역고등학생운동연합(서고련)을 결성해 그해 겨울 공정한 대통령선거와 교육민주화를 주장하며 명동성당에서 벌어진 농성시위에 참여했다. 1996년 새얼문화재단에 입사해 현재까지 <황해문화>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 지금까지『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길 위의 독서』등의 책을 썼다.

미디어이론가이자 철학자 빌렘 플루서(Vilem Flusser)는 현대사회를 웹과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텔레마틱 사회(텔레커뮤니케이션+인포마틱)’라고 정의했다. 문화가 ‘삶의 방식’이라면, 디지털 기술은 삶을 변화시켰고,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은 우리의 존재 기반을 정보망 안으로 이전시킨다. 과거엔 특정 정보를 먼저 입수하고, 생각하고, 정리해 다른 이들에게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지식인(intellectual)’일 수 있었지만, 오늘날의 지식인은 ‘네이버’와 ‘유튜브’에 있다. 디지털 미디어 환경은 지식과 정보에 이르는 모든 문턱을 없앴다.
거리에 우체통이 사라진 지 오래됐고, 손으로 쓴 편지가 수신인의 손에 당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물론 답장을 어떻게 쓸지 몇날 며칠을 고민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사라진 지 오래다. 우리는 실시간(real-time)의 시대를 살고 있다. 시간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공간 개념도 해체되고 있다. 손 안의 스마트폰은 공적인 담론장과 사적인 담화 사이의 장소성(placeness)을 제거했다. 광장과 밀실은 하나가 됐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디지털 매체 혁명은 글쓰기의 주체와 독자, 전달 매체와 방식, 인문학적 지식의 의미 등을 바꾸어 놓고 있다. 하이퍼텍스트의 시대, 소수의 저자(생산자)가 지녔던 저술 권력과 이를 뒷받침해주던 출판·인쇄·유통 구조가 변했다. 디지털 문화 환경에서 대중은 텍스트의 단순한 수용자가 아니라 생산·유통·재생산에 이르는 다양한 측면에 참여하는 능동적인 존재가 됐다.
이처럼 시간과 공간의 벽이 허물어진 시대인데도 나는 지난 1996년부터 23년 동안 3개월에 한 번이란 느린 속도로 발간되는 계간지를 ‘인천’에서 만들어 내고 있다. 계간지 종사자는 다른 잡지처럼 기자가 직접 글을 쓰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계간지를 만드는 사람은 기자보다 단행본 편집자에 가깝다. 계간지는 다른 매체처럼 특종을 쫓을 일이 없고, 본인이 생각하는 바를 글쓰기를 통해 직접 드러내기보다 기획이란 형태로 다른 필자에게 청탁해 그의 의견(원고)을 받는, 복잡한 공정을 거쳐야만 하는 불편한(?) 매체다. 인터넷 공간을 통해 어떤 사회적 이슈에 대해 누구나 실시간으로 말할 수 있는 시대에 이처럼 느린 속도로 발간되는 잡지가 계속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나는 그 이유에 대해 다음의 세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 디지털 미디어 시대일수록 창조적이며 비판적인 사유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창조와 비판, 사유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계간지는 자본과 소비의 급류가 격렬하게 휩쓸고 지나가는 ‘빅데이터’의 홍수와 이슈가 다른 이슈를 덮어버리는 이슈의 파도 속에서 그래도 사람들이 믿고 건너갈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둘째, 무엇이 옳은지, 현상의 이면에 숨겨진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때, 우리는 혼란에 빠진다. 계간지는 그처럼 혼란스러운 현실의 전장에 꽂힌 ‘깃발(standard)’이다. 그 깃발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는 그 깃발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가늠해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어떤 자료(data)도 내 안에서 새롭게 재구축되는 과정(in+formation) 없이 지식(knowledge)이 될 수 없다. 텍스트(text)의 형태는 달라질지라도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은 인간이 존재하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검색(檢索)만 하고 사색(思索)하지 않으면 지식은 내 것으로 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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