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웃음, 그 깊은 연대의 언어

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한 이후 방송대 학우들의 오프라인 활동이 다시 크게 늘었다. 지역 총학생회에서부터 학과, 동아리까지 다양한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북적이는 모습은 언제나 활력을 보여준다. 코로나19로 단절됐던 개인들이 거리를 좁히고, 서로 만나 서로를 응원하고 박수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이 속에는 공통적인 연대의 언어가 있다. 바로 ‘웃음’이다. 웃음은 단번에 서로를 이어주는 견고한 다리가 된다. 때로는 저열한 권력을 비웃고 거기에 맞서는 용기를 일으키기도 한다. 수평적이라는 의미에서 웃음은 탈권위적이면서 동시에 진정한 권위가 무엇인지도 생각하게 만든다. 방송대의 다양한 행사에 등장하는 웃음은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 모두를 교육 공동체의 대등한 주체로 호명한다. 이번 호 커버스토리는 이 깊은 연대의 언어, 웃음을 조명한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웨민쥔은 입을 크게 벌려 웃는 남자 그림 연작으로 유명한 중국 화가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남자는 모두 웨민쥔 자신이다. 1962년 중국 헤이룽장성에서 태어나 소학교 시절 문화대혁명을 겪었고,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톈안먼 사태’가 터졌다. 거대하고 견고한 힘 앞에 인간이 나약한 존재임을 깨달은 그가 주목한 것은 바로 ‘웃음’이었다.
웃음은 경직성을 전복하면서
생동적이고 자유스러운
활동성으로 나아가게 한다.
자기다움을 향해 나아갈 때,
웃음은 경직된 것을 허물게 하고,
용기를 심어주면서 담대한
여정을 계속하게 만든다.

 

 

『장미의 이름』, 웃음에 관한 상반된 해석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1980)은 웃음의 효과와 의미를 두고 서로 대립하는 인물을 그려냈다. 윌리엄 수도사와 수도원장 호르헤 신부다. 이들은 웃음을 서로 다르게 설명한다.
중세의 한 수도원에서 벌어진 잇따른 죽음을 놓고 그 진실을 추적하는 윌리엄 수도사는 웃음을 ‘독단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을 막는 반어적 초연함’으로 해석했다. 반면 호르헤 신부는 웃음을 ‘허약함, 부패, 우리 육신의 어리석음, 농부의 여흥거리, 주정뱅이의 전유물’로 이해한다. 나아가 웃음이 악마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킨다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우스꽝스러운 것들에 관해선 따로 『시학』에서 정의해 놓았다”라고 썼지만, 오늘날 전해지는 『시학』에는 비극과 서사시에 관한 언급만 있다. 많은 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 제2권도 썼고, 희극을 다뤘을 것으로 보고 있다)의 존재를 찾아 나선 윌리엄 수도사는 이렇게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웃음을, 교육적 가치가 있는, 선을 지향하는 힘으로 이해합니다. 거짓말이라도 하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실상이 아닌 것을 보여주고 있긴 하나, 희극은 기지가 번득이는 수수께끼와 예기치 못한 비유를 통해 그 실상을 다시 한 번 검증하게 하고, 아하, 실상은 이런 것인데 나는 모르고 있었구나, 하고 감탄하게 만든다는 것이지요. … 성인의 삶이 우리에게 보여준 서사시보다, 비극보다 열등한 것을 그림으로써 진리에 도달하는 것, 어떻습니까?”
그러나 호르헤 수도 원장은 윌리엄 수도사에게 이렇게 반박한다.
“율법이란 두려움이 지운 짐입니다. 이 두려움을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하지요. 헌데 이 서책은 악마를 두드려 불똥을 튀게 하고 이 불똥으로 온 세상을 태우려 하는가 하면, 웃음을, 프로메테우스도 알지 못하던, 두려움을 물리치게 하는 새로운 예술로 정의하고 있어요. 웃는 순간 사악한 인간에게는 죽음이 문제가 아니게 됩니다.”(『장미의 이름』,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2009)

베르그송, “웃음, 행동과 말을 교정하는 힘”
철학자 강신주는 에코가 『장미의 이름』에서 진정 말하고자 했던 것은 “웃음이 불가능할 때 인간은 무엇인가에 의해 억압돼 살아가게 된다는 통찰”이라고 읽어내면서 베르그송을 소환해 “웃음은 맹목적으로 이뤄지는 인간의 말과 행동을 교정하려는 힘이며, 그것이 곧 웃음이 지닌 혁명성이다”라고 주장했다(「웃음: 생동감 가득한 혁명성」, 동아비즈니스리뷰 57호, 2010).
1927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이자,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이 ‘웃음’에 관해 쓴 세 편의 논문을 묶은 『웃음』은 1990년 초판이 나온 이래 세계 각지에서 놀라운 판매 부수를 기록하며 웃음 이론에 관한 독보적인 고전으로 손꼽혀 왔다.
이 작은 책에는 그의 철학적 사유의 핵심인 ‘생명’이란 키워드가 스며들어 있다. 베르그송은 모든 희극적인 것들 속에서 “생명적인 것에 덧붙여진 기계적인 것”이라는 중심 주제를 찾아낸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생명은 기계로 환원될 수 없으며 뒤집을 수도 없고 결코 반복되지도 않는다. 이 생명 개념을 사회로 확장해 유연하고 살아 숨 쉬는 활력 없이, 딱딱하게 굳은 기계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야말로 웃음을 유발하는 요인이다. 베르그송은 이렇게 말한다.
“물건과 비슷한 면이 있는 사람은 희극적이 된다. 인간이 하는 일인데도 뻣뻣하기 짝이 없어서 마치 순전한 기계장치, 자동주의, 말하자면 생명이 없는 기계적 움직임을 흉내 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희극성이란 즉각적인 교정을 요하는 개인과 집단의 결함을 나타낸다. 웃음은 이것을 교정한다. 웃음은 이런저런 사람이나 사건에서 보이는 특정한 방심 상태를 두드러지게 만들며, 그것을 응징하는 사회적 의사 표시인 셈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베르그송이 ‘희극성’과 ‘웃음’을 구분하면서 사유를 펼쳐나간 지점이다. 베르그송은 희극성의 근저에는 어떤 종류의 경직성이 있다고 보았다. 웃음은 이 경직성을 경계하게 만든다.
“이 경직성으로 인해 자기 길만을 줄곧 고집하고, 그 어떤 것도 귀담아듣지 않으며, 아예 아무것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 자기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힌 인물은 아무리 만류해도 고집스럽게 자신의 생각으로 되돌아간다. 그리하여 아무것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서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는 사람으로, 결국에는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보려는 사람으로 서서히 이행해 간다. 고집불통의 정신은 사물을 보고 사물에 맞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자기 생각에 끼워 맞추도록 한다.”(『웃음: 희극성의 의미에 관하여』, 정연복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1).


방송대 행사 속의 웃음과 유머
지난 4월 10일 방송대 열린관 강당에서 ‘사회복지연구소’ 창립 행사가 열렸다. 이날 사회복지학과 교수들은 여느 때처럼 예의 그 ‘꽁트’를 선보이면서 참석한 학우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더 재미있는 장면은 축사를 하기 위해 무대에 오른 대학원 원우 대표자의 위트있는 발언이었는데, 교수들과 학우들은 배꼽을 부여잡고 한참을 신나게 웃었다.
올해 사회복지학과 3학년에 편입한 한 학우는 “교수님들이 직접 웃음을 선사하며 이렇게 탈권위적 모습을 보여주고 나아가 학우들과 하나가 돼 깜짝 놀랐다.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함께 웃으면서 학과가 제시하는 ‘인간다움’에 대한 가치를 자연스럽게 공유할 수 있게 돼 신선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가을학기부터 학과에 합류한 인지훈 교수는 “우리 학과는 모든 모임을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파티’로 보고 있다. 그런 철학을 가지고 있기에 다소 ‘무리(?)’해서라도 함께 웃고 즐기려 한다. 사회복지는 인간다운 삶에 대한 고민과 실천이 요청되는 영역이다. 인간다움이란 곧 자기다움을 의미한다. 웃음(유머)을 통해 자신을 편안하게 드러내는 공동체에서 그 길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자기다움’이란 사회복지학과만의 전유물이 아닐 것이다. 자기다움과 자기완성은 모든 학과가 추구하는 교육 철학인 동시에 대부분의 학우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임이 분명하다. 그것은 독단이 아닌 진리를 향한다. 그래서 웃음은 경직성을 전복하면서 생동적이고 자유스러운 활동성으로 나아가게 한다. 자기다움을 향해 나아갈 때, 웃음은 경직된 것을 허물게 하고, 용기를 심어주면서 담대한 여정을 계속하게 만든다.
베르그송이 『웃음』에서 말한 ‘웃음이 강조하고 교정하려는 것’의 의미, 움베르토 에코가 『장미의 이름』을 통해 강조한 ‘진리에 도달하게 하는 웃음’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
학교 곳곳에서, 방송대인들이 만나는 자리 곳곳에서 더 많은 ‘웃음’이 피어나길 기대한다. 그래서 방송대라는 지평 위에서 유연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자신의 성채를 뛰어넘어 진리의 언덕에 함께 설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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