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인구 감소 시대

농촌에 아이 울음소리가 그쳤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 이젠 도심 한복판에서도 듣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2018년 1.0이던 합계출산율은 2023년 4분기 0.65까지 추락했다. 전쟁의 경험을 제외하면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수치다. 고령화사회로의 전환 속도도 압도적으로 빠르다. 통계청은 7년 후 한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50대일 것으로 추정했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속에서 대한상공회의소와 <조선일보>는 5월 24일 전 세계적으로 심화하는 저출생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저출생: 우리는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가」라는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수백 조를 쏟아부은 정부와 언론이 놓치고 있던 근본적이고 구조적이며 복합적인 요인은 무엇일까? 왜 한국의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을 꺼리게 됐을까? 그리고 대안은 무엇인가? 국내외 석학들의 강연과 토론에서 어쩌면 해법의 단초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문제는 부양비야!”
먼저 1세션 기조강연자로 나선 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는 「저출산 정책의 현재와 미래」 발표에서 “인류의 생존 전략인 범세계적인 저출산은 희망이고 축복이다. 저출생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엄청나게 쾌적한 지구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말로 강의를 시작해 좌중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김 명예교수는 인구구조를 시대별로 구분했다. 필요 이상으로 아이를 많이 낳는 생존전략을 취했던 농업사회를 지나, 질병이 퇴치되며 과잉인구 시대로 접어든 산업사회를 거쳐 현재의 ‘인구폭탄+저출생’ 위기 사회로 이행했다는 분석이다.

 

불과 50년 전인 1972년 38억 명이던 세계 인구는 현재 80억 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성평등인식 변화, 일과 삶에 대한 가치관 변화, 경쟁 심화 등을 겪던 인류가 지구생태계에 적응하기 위해 저출산을 시도한 것이다. 저출산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고, 학문적으로도 증명됐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저출생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명예교수는 범세계적인 저출생 추세에도 한국의 합계 출생률은 유례없는 수치로 급전직하한다는 점을 꼽았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인구 감소는 ‘축복’이지만, 단기간에 인구가 급감하면 고령자 부양비 부담, 연금, 의료보험 등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국적 저출생의 원인을 △인구과잉 △과당경쟁 △저성장 등 3개로 분석한 그는 이 모든 원인들은 사람이 만든 실패라는 점에서 ‘인재(人災)’로 규정했다. 프랑스 파리보다 인구밀도가 네 배 높은 서울과 수도권, 그 안으로 몰려드는 젊은이들의 스트레스는 프랑스의 아홉 배에 달한다는 사례를 인용한 그는 이미 한국이 출산율을 높이는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지적하며, 4차 산업혁명을 통한 생산성 향상으로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년 3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던 사회에서 청년 1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사회로 전환하는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에 △로봇, 인공지능의 적극 도입 △55~74세 장년의 이모작 사회로의 전환 △국토 균형 발전 대신 대칭 균형 추구(부울경 메가시티, 호남, 영동 등 4극 체제) 등을 제안했다.

 

양립하지 못하는 한국의 노동-가족시스템 지적도
글로벌 사례’ 토론에는 지난해 8월 EBS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라고 외쳤던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법대 명예교수가 참여해, 한국의 노동시스템이 가족제도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오늘은 나쁜 말을 쓰지 않겠다’며 웃음을 보이던 조앤 명예교수는 본격적으로 토론을 시작하며 냉철한 분석을 제시했다.

 

“한국은 미국보다 생산성이 40% 낮은데, 그 주요 원인을 연구해 보니 주 50시간 이상 일할 때 생산성이 급격히 저하했다. 이런 상황에서 70%에 가까운 한국인이 육아휴직을 하지 못할 거로 생각한다는 조사도 있다. 육아휴직 이후 여성의 정규직 재진입도 어렵다는 것이 한국의 노동 시스템이다. 이는 일하는 여성이 아이를 낳을 경우, 일을 그만두게 압력을 가하는 한국 가족 시스템과 맞물려 있다. ‘엄마는 집에 있어야 한다’, ‘집에 있어도 아이의 숙제를 돌봐주고 학원에 데리고 다녀야 한다’는 사회의 암묵적인 분위기와 현저히 떨어지는 남성의 가사노동 참여 비중은 여성의 결혼, 출산에 대한 기대치를 낮춘다.”

 

조앤 교수의 해법은 무엇일까? 첫째로, 기업은 자녀가 있는 여성에 대한 차별을 해소해야 한다. 육아휴직을 갈 경우, 남은 직원들에게 일감을 떠넘기지 말고 임시직을 채용함으로써 육아휴직자에 대한 비난을 차단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둘째로는 주 50시간이라는 장시간 노동 문화를 탈피해 주 30시간으로 전환해 생산성을 높이는 직장 문화를 정착해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예민한 이슈이긴 하지만 노인 부양을 위해 이민 정책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3세션에서는 작년 12월 발표해 주목받은 「경제전망보고서」를 토대로 황인도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금융통화연구실장이「경제적 원인 및 경제성장 관점의 분석」을 발표했다. 현재 흐름대로 저출산을 방치할 경우 2050년경에는 역성장의 가능성이 68%라고 입을 뗀 황 실장은, 고용의 양과 질이 OECD 국가 대비 열악한 점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먼저 지적했다. 대기업, 정규직 비율이 12%, 중소기업, 비정규직 비율이 88%인 한국 노동시장에서 ‘12:88 사회’가 고착화됐다는 분석이다. 그는 “OECD 35개국 패널자료 분석 결과 초저출산에는 경제적 요인이 상당 부분 기여한다”며 △청년층 소득 흐름이 중장년 세대 대비 부진 △한국 MZ세대의 재무상황에 대한 걱정도 높은 편 등을 근거로 들었다.

 

눈길을 끈 부분은 ‘그간 정부가 저출생 대응으로 380조 원이 넘는 재정을 쏟아부었다는데, 백약이 무효였던가?’, ‘한국 MZ 세대가 문제라서 저출산이 초래됐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황 실장은 “100가지 약을 써야 하는데, OECD 국가와 출산율 여건을 비교해보면, 한국은 10개의 약을 썼다고 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평균에 미치지 못했다. 또한 한국의 출산율은 OECD 평균인 1.6보다 0.8이 낮은데, 이 격차는 한국의 출산 여건 자체가 워낙 나쁘기 때문에 청년층에서 보인 합리적 반응의 결과로 초래됐다고 볼 여지가 있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여건이 바뀐다면 출산율도 높아질 수 있음을 명심하고 노력한다면, 동남아시아 국가들처럼 합계출산율 1명대로 재진입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징벌적·보여주기식 정책 넘어서야
4세션의 종합토론에서는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행사답게 기업의 시각에서 바라본 저출생 해법의 대안들이 제안돼 눈길을 끌었다. 아이를 낳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사결정의 문제라는 점을 전제한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장은 그럼에도 하루의 절반을 회사에서 보내는 상황에서 기업 환경, 일터의 혁신적인 변화를 꼭 가져가야 저출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논란이 된 삼성전자 임원 토요일 근무 도입을 언급한 이 원장은 “연구원 조사 결과 출산, 양육 관련 온갖 도움되는 제도들이 대기업에 갖춰져 있지만, 실제 활용도가 굉장히 떨어진다. 직장인들이 이 제도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전격적으로 문화와 인프라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현재 기업에 대한 정부 정책이 ‘징벌적’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저출생 관련 정책을 어기면 벌금을 매기는 형식도 문제지만, 보여주기식 정책도 넘어서야 한다. 예를 들어, 정부는 유연근무 인프라 개선에 나선 기업에 컨설팅, 유연근무장려금 등을 제공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혜 인원이 극히 제한적인 점 등을 꼽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여성의 육아휴직 후 복귀 시 단축근로, 재택근무 등 선호하는 업무 형태로의 전환, 중소기업 산업단지에 공동 직장어린이집 설치, 대기업 복지제도를 협력사로 확대하는 방안 등을 제안했다.

 

문화·사회학적 맥락에서 살펴본 저출생 대책도 좌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높은 낙태율을 언급한 이재열 서울대 교수(사회학과)는 “공식 통계는 없지만, 2008년에 출산아 46만 명이었는데, 그해 낙태아가 23만 명이라는 추정치가 있다. 보고된 사례만 이 정도니 실제로는 더 많다고 짐작할 수 있다. 이른바 혼외출산과 관련된 문제인데, 한국은 유교적 관념이 강하게 작동해 결혼 외로 출생하는 아이들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가 있다. 가족 개념과 형태에 대한 열린 논의들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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