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프리즘]

김진환 교수·무역학과

우리는 흔히 그곳을 남국이라 했다. 어느 여름날 오후, 뜨거운 햇살이 정원의 그늘을 걷어 올리고, 눈부신 더위에 한 시절이 흘러갈 때, 어느 대중가수의 원색셔츠와 환한 웃음이 담긴 ‘카렌다’의 추억을 잊지 못한다. ‘트란지스타’ 라디오에선 파도 같은 선율의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한껏 고개 들어, 시원한 바람이 부는 해변가, 수평선 너머 남방(南方)을 우리는 그리워했다.
바닷가를 건너다보면, 짙푸른 바다의 속살같이도 하얀 피부를 드러내는 파도는, 간헐적으로 우리들의 시야를 즐겁게 했다. 한편으로는, 살포시 소매 깃을 들어올리는, 수줍은 바람결의 미소같이도. 그렇게 그 여름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뜨거운 여름의 탄력적 파노라마로 가득 채워졌다. 그리고 우리는 남국이라는 ‘샹그릴라’의 열병으로 달아올랐다.
그곳은 한때 제국주의 회색 식민지의 깃발이 펄럭이는 지배와 피지배가 상존하던 권력의 각축장이었다. 빼앗긴 땅에는 절대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 잔인한 여름의 낭만과 추억의 현장에도 이제 활기와 희망이 깃들고 있다.
그저 상실과 절망의 상징처럼 피폐한 땅에 우리들은 언제부터인가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피곤하게 쓰러져 버린, 그리하여 낡고 거덜 난 대지의 폐허 너머로 이들은 다시 태어나고 있다. 마치 몸부림치듯 살아야겠다는 집단의 생존의식이 하나의 거대한 경제공동체의 실체적 모습으로 말이다.
남방인은 적도의 동거인이다. 작열하는 태양, 습기찬 공기 그리고 남지나해의 해풍을 맞으며 생활하는 아열대의 배가본드(vagabond: 방랑인)들이다. 그들은 해맑은 웃음의 선량함이 있고, 그들은 삶의 진정성을 자각하는 여유가 있고, 그리고 그들은 연민의 순간을 스치는 순수함이 있다. 그들의 문화와 역사는 식민의 어두운 상처와 기억을 간직해도, 항상 타인에 대한 친절과 배려의 자세를 잊지 않는다. 극심한 경쟁의 울타리에서 서로의 시각에 날을 세우는 어느 현대 사회 그리고 어느 현대 도시의 인간들과는 차원이 다른, 그들만의 정체성을 우리는 엿볼 수 있다. 갈증의 도시, 그러기에 이미 주름져 버린 건조한 피부의 결일지라도, 생명의 기원인 물과 나무의 도시로 이들은 구원받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남방인의 의지와 미래에 대한 각성인지도 모른다. 낡고 피폐한 어제의 시대를 극복하려는 작은 외침 같기만 하다. 각박하고 힘든 어제와 오늘, 그들을 이해하는 최소한의 심정적 연민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최소한의 인간성을 향유하고 있는 존재로 여겨질 것이다.
절실하게 다가가는 무엇인가가 있으면 그것은 곧 운명이다. 그들이 오늘을 극복하고 내일을 향한 의지와 미래지향적 시야를 갖고 출발할 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다. 그러기에 오늘의 남방은 어제의 상처받은 국가들의 자화상이다. 그러기에 그들에게서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현재 한국은 싱가포르, 필리핀, 태국 등 10여 개국의 아세안 국가들에 대한 신남방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지금 그들은 21세기 남방이 새로운 제3의 제국이 되어, 거대한 공동체로 거듭나고 있다.
인구 6억이 넘는 10개국의 남방아시아는 세계 각국에게 제2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의 주인공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과의 교역규모는 2020년까지 2천억 달러의 무역규모 확대를 기대하고 있으며, 원자재 수입, 공산품의 수출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한­아시안 FTA의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 관계를 넘어, 4강 외교에서 종속변수로서의 자기발견을 경험한 한국의 입장에서는 신남방정책은 새로운 형태의 협력관계가 될 것으로 보인다.
4강 외교에서 종속변수로서의 자기발견을 경험한 한국의 입장에서는 신남방정책은 새로운 형태의 협력관계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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