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건강하게 늙는 사회를 생각하다

최근 ‘건강한 노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와 정보들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건강한 노화가 무엇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 보건사회학계 대표학자인 조병희 서울대 보건대학원 명예교수와 그의 제자인 정영일 방송대 교수(보건환경학과)가 신간『젊게 늙는 사회』(지식의날개)를 내놓아 눈길을 끈다. 우리가 마주한 초고령 사회의 건강은 현재의 노인뿐만 아니라 지금의 젊은 세대와도 연결 지어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자들은 이 당연한 사실을 놓치고 있는 우리에게 다양한 통계 데이터를 통해 100세 시대의 건강 문제를 쉽게 풀이해 준다. 한 사회의 의료체계가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증진할 수 있도록 탄탄하고 효율적으로 구축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는 조병희 교수를 만나『젊게 늙는 사회』를 중심으로 좀더 상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서울대대학원 재학 중 사회와 의료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위스콘신대(매디슨)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를 지내다 2019년 정년퇴임했다. 의사의 권력화에 관한 연구로 『한국의사의 위기와 생존전략』, 『의료개혁과 의료권력』을 집필했다. 최근 10년간 통계청에서 발간하는〈한국의 사회동향〉편집에 참여하면서 보건통계의 대중화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초고령 사회의 건강은

개인과 더불어 사회 차원에서도 살펴야 하며,

현재의 노인뿐만 아니라 지금의 젊은 세대와도
연결 지어 생각해야 한다
.

 


이번 책에서는 다양한 ‘건강통계’를 활용해 ‘사회적 수준의 건강 문제’를 짚은 부분이 인상적인데요. 개인이 건강하기 위해서 왜 사회적인 노력이 필요할까요
술 권하는 사회라는 말이 있듯이 불건강 행동은 개인적 동기보다는 사회구조로부터 유래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금연 구역도 정하고 하는데, 사회적 구조개혁은 아직 너무 부족해요. 의학계에서는 고혈압과 비만이 만성병으로 진입하는 신호 같은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비만은 예전에는 없던 현상이고 최근에 급격하게 증가했습니다. 이것은 과거와 달라진 우리의 식단, 식생활, 신체활동 부족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보이는데, 결국 사회경제적 변화가 근본 원인인 거죠. 사회개혁은 어렵고 또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이런 현실에서 개인이라도 건강증진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만성병은 불건강한 생활 습관이 오래 누적되면 발생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노년기에 건강하게 지내려면 젊어서 건강한 습관을 실천해야 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실천하려고 하면 이것이 점차 사회적인 이슈가 될 것이고 그럴수록 건강을 위한 사회적·정책적 개선도 수월하게 이뤄질 것입니다.


책의 머리말에서도 밝혔지만, ‘생로병사’라는 개념은 농경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오늘날의 삶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하면서 청(년)과 의(료)를 더 추가하셨습니다
과거에 전염병이 무서웠던 것은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이 감염되고 죽었다는 점인데, 당시 늙은 사람은 물론이고 젊은 사람들도 많이 죽었죠. 만성병 시대는 근본적으로 집단감염이 사라집니다. 그 결과 청년기에는 병이 없고 건강하게 수십 년간 살게 됩니다. 인류역사상 이렇게 장기간 건강한 채로 지낼 수 있는 세대가 등장한 것은 대단한 사건이고 생로병사에 버금가는 일로 생각할 수 있어요. 청년기에는 항상 건강하다 보니까 수십 년 뒤의 불건강한 상태를 미리 대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수명이 길어질수록 목숨은 붙어 있지만 신체적·정신적으로 매우 아픈 상태로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10년 이상 타인의 도움을 받으면서 생존하게 됩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아픈 상태로 지내며 의료의 집중적인 도움을 받게 되는 것 역시 역사적으로 처음입니다. 그래서 ‘의’를 통과의례로 설정해 보았습니다. 청년기를 조명하는 것은 건강할 때 몸을 잘 관리하는 것이 오랫동안 건강을 유지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또한 ‘의’를 생로병사의 반열에 두게 된 것도 우리 생애에서 길어진 와병상태를 반영해야 되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됩니다.

안토노브스키의 건강생성론은 처음 듣는 이론인데 어떤 내용인가요
안토노브스키(Aaron Antonovsky)의 건강생성론(salutogenesis)은 한마디로 건강역량을 키우자는 것입니다. 세상은 온갖 위험요소가 광범위하게 퍼져있어 우리의 건강을 위협합니다. 각종 환경위해 물질은 물론이고 사고,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구조적 긴장과 사회적 억압 등을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려면 개인적으로 자긍심을 키우고 필요한 지식을 쌓는 것도 중요하고 주변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사회적 지지를 얻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 또 문화적으로나 종교적으로 헌신하는 것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개인과 지역사회의 건강역량을 키울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적 재난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재난에 처한 사람들에게 공감하는 마음을 전하는 것도 사회적으로는 건강역량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공통의 건강자산이 큰 사회일수록 건강불평등이 감소한다는 연구들도 많이 있습니다.

‘건강노화(healthy aging)’를 나이 듦에 따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안녕을 유지하며 건강하게 나이 든다는 개념으로 설명하셨습니다. 사실 이 개념은 기대수명이 좀 더 높은 젊은 층에게 더욱 어필할 것 같은데요. 어떻게 건강노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기존에 노년학 등에서 ‘active aging’을 강조했는데 그것은 노년기에 적합한 소일거리와 보람을 찾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울 종로에 남자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모습을 보면 보람 있는 소일거리를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보건학적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며 늙는 게 보다 근본적인 문제라고 보입니다. 노인이 될수록 혼자 살게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혼자 살 때 먹거리를 어떻게 조달하고 조리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적절한 대안이 마땅치 않습니다. 어떻게 신체활동을 해야 할지, 퇴화하는 인지력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등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주변의 경험담은 있지만 마음 놓고 선택할 수 있게 대안이 정리돼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이런 노인들의 경험, 어려움과 기대를 체계적으로 엮어내는 플랫폼이 필요할 것 같고 많은 노인이 더 건강해질 수 있도록 현실적인, 일상생활의 선택을 제공해 주는 것이 시급해 보입니다.

우리 사회가 급속하게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다보니 노인 의료 부담도 함께 증가하고 있습니다. 노인 의료와 복지는 어떤 방향으로 풀어가야 할까요
현재는 의료(질병치료), 돌봄·요양, 복지가 제각각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다 보니 구조적 모순이 발생합니다. 요양원에는 의료기능이 빠져 있다 보니 평소에도 누워서 생활하던 노인도 아파서 질병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갔다가 다시 요양원으로 오게 되는데 각 기관별로 입·퇴원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환자를 병원에 모시고 가려면 누가 동반할지, 이동수단을 어떻게 마련할지 큰 문제가 됩니다. 집에서 지내는 노인의 경우에도 신체가 허약해져서 병원방문이 어려워 의학적 진단을 제때 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의사들이 왕진을 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지역사회 간호사에게는 어떤 역할도 부여하지 않고 있지요. 직역간 이해관계 갈등 때문입니다.
이렇게 노인들이 집에서 사는 것이 좋을지,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보내는 게 좋을지, 그들을 누가 어떻게 돌볼지, 또 기본생활비는 어떻게 조달할지 등 복잡하게 얽힌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는데 쉽게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의료-돌봄-복지가 잘 연결돼 노인의 삶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좋은 방향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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