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통합인문학연구소 학술대회

오늘의 추출주의는 여전히
‘지구적인 한계를 넘어
지속적으로 채굴, 생산, 소비, 폐기하도록

만드는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방송대 통합인문학연구소(소장 이상진)가 6월 22일 방송대 본관 3층 소강당에서 제28차 정기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여름을 재촉하는 빗줄기를 뚫고 학술대회장을 찾은 이들로 소강당은 금세 가득 메워졌다.
무엇보다 ‘기후정의를 묻다―인간, 환경, 기술의 공존’이란 주제가 흥미롭다. 기후 위기가 아니라 ‘기후정의’를 내세웠으며, 공허한 해법보다는 ‘공존’에 무게를 실었다. 근본적인 의미에서 기후 문제를 살펴보겠다는 통합인문학연구소의 고심을 읽을 수 있는 용어 선택이다.
학술대회는 이상진 통합인문학연구소장의 개회사, 고성환 총장의 축사를 듣고 1부와 2부로 나눠 진행됐다. 1부에서는 한예림 방송대 교수(영어영문학과)의 사회로 이성미 방송대 교수(영어영문학과)가 「소설로 읽는 환경사: 빅토리아 시대의 에너지 고갈과 재생 이야기」(토론 설연지·서울대)를, 이종민 국립군산대 교수(과학사·과학기술정책)가 「기후 위기 시대에 되돌아보는 석탄과 석유 풍경」(토론 한석현·방송대)을 발표했다.
이어진 2부에서는 이자명 방송대 교수(교육학과)가 사회를 맡고, 김상수 방송대 교수(경제학과)가 「ESG 성과와 신용 위험」(토론 권재현·인천대)을, 박소현 방송대 교수(생활과학부 의류패션학 전공)가 「지속가능성과 패션: 우리는 어떤 옷을 입을 것인가」(토론 김승민·방송대)를 발표했다.
평이해 보였지만 좀더 곱씹어볼 거리를 던져준 것은 이성미 교수와 박소현 교수의 발표다. 이성미 교수는 과거에서 현재와 미래의 문제를 복기했으며, 박소현 교수는 옷의 선택에 작동하는 지속가능성이란 흥미로운 문제를 환기했다.

18세기 영국 소설에 나타난 환경 문제들
“정확히 인간 활동이 지구 환경을 변화시켜 온 그 시기에 문학적 창작 활동이 급격하게 인간 중심적으로 달라졌다”라는 인도 작가 아미타브 고시(Amitav Ghosh)의 말을 인용한 이 교수는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에 주목하면서 논의를 전개했다.

제임스 와트의 증기 기관 개량으로 화석연료 시대로 도입한 이래 영국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급격히 증가했으며, 원자폭탄 실험과 투하로 방사성 동위원소는 앞으로 약 10만 년간 서서히 붕괴하며 퇴적층에 남겨질 예정이다. 이 교수는 이러한 일련의 변화에 주목하면서, “‘인간의 역사’와 ‘자연사’를 분리해서 다뤄 온 그간의 관점이 무너지고 있다”라는 인도 출신 역사학자 디페시 차크라바르티(Dipech Chakrabarty)의 말에 동의했다.
발표자의 논의는 산업혁명기 영문학을 생태비평적 시각으로 조망하는 데서 빛을 발했다.
산업혁명이 진행되던 18~19세기, 구체적으로는 1710~1850년대에 주목할 만한 변인이 등장하는데, 이는 소설의 대중화와도 겹친다.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개량(1776), 쾨니히의 원압 인쇄기 제작(1818), 리처드 호의 윤전기 제작(1843)인데, 정확히 이들 요인에 맞물려 소설의 대중화가 전기를 맞았다.
근대 과학기술에 힘입어 소설이 확산하면서 작가들도 새로운 고민을 작품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찰스 디킨스, 조지 엘리엇, 브램 스토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아서 코난 도일, 심지어 버지니아 울프 등 많은 작가들이 안개를 비롯한 대기현상(스모그) 및 런던의 기후를 작품 속에 담아냈고, 이것은 그대로 당대 런던의 기후 연구로 이어질 수 있는 소설적 자산이 됐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의 소설적 변화를 놓고 생태비평적 분석이 가능한 지점이다. 예컨대, 기존 영문학사에 적용되는 시대 구분과 다르게 100년간의 화석연료 추출에 따른 영문학사(1830~1930년대) 재해석이 가능하며, 재생불가능한 에너지원의 대량 추출(extraction)이 영국 사회에 가져온 ‘장기 고갈’에 대한 불안이 담긴 영문학사라는 담론을 구성할 수도 있다.

이 교수는 새로운 자원 개척에 대한 모험서사의 예로『암흑의 핵심』,『노스트로모』,『솔로몬 왕의 광산』,『보물섬』 등을 들면서, 빅토리아 시대 제국주의의 팽창, 산업 시대 에너지 체제 전환, 오늘날의 기후 위기와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로 충분히 확장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 교수는 빅토리아 시대 에너지 논쟁에 주목하면서 ‘갑작스러운 고갈은 불가능하다’ vs ‘석탄은 지속될 수 없다’라는 의견 대립으로부터 현재적 의미를 이끌어냈다.
“20세기 이후에도 현대 산업사회의 기초인 화석연료 에너지 위기는 마치 ‘우리’가 아닌 ‘다음’ 세대가 겪을 위기로 인식하고 있다. 화석연료 추출을 기반으로 한 에너지 집약적 삶은 다음 세대에 손실을 수반한다. 오늘의 추출주의는 여전히 ‘지구적인 한계를 넘어 지속적으로 채굴, 생산, 소비, 폐기하도록 만드는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교수의 제안은 무엇일까. 그는 인류세 대신 미국의 문명비평가인 도나 해러웨이(Donna Jeanne Haraway)가 언급한 ‘툴루세(Chthulucene)’를 강조했다. “툴루세는 그리스어 크톤(khthon)과 카이노스(kainos)의 합성어로, 손상된 지구에 묶인 이들이 응답-능력을 키우는 시공간을 의미한다. 인류세가 땅 위와 하늘 아래에서 일어난 변화에 주목한다면, 툴루세는 땅속(크톤) 존재들의 연결망을 강조해 지구에 묶인 자들의 복잡한 연결망 안에서 함께 살기를 의미한다.”

옷의 선택과 관리에도 지속가능성 중요
의류패션학을 전공한 박소현 교수는 패션산업의 환경영향 문제를 겨냥하면서 우리가 어떤 옷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제고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의복의 생산과 소비, 폐기 과정은 그 자체가 환경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박 교수는 수자원이 고갈되고 있는 현실을 환기하면서 패션산업에 사용되는 수자원 문제부터 짚었다.
발표자가 예시한 문제는 광범위했다. 예컨대 목화농업으로 인한 우즈베키스탄 지역의 수자원 고갈, 가죽가공에 따른 물 사용량의 증대(원피 1천kg은 250kg의 무두질된 가죽으로 생산되는데, 2만7천410kg의 물을 사용한다. 가죽 1kg 기준 109.64kg의 물이 쓰인다), 섬유패션 산업으로 인한 폐수량 증대(전세계 폐수 중 패션산업이 20%를 배출), 면을 얻기 위해 재배 기간 중 농약 등의 사용으로 수질 및 토지 오염이 심각해지고 있는 현상, PH가 높고 생분해성이 낮은 화합물질을 함유한 염색 폐수 문제, 패스트패션의 확장에 따라 지난 30년 동안 패션산업의 에너지 소비가 2배 이상 증가한 점, 섬유 생산 방법에 따라 지구온난화지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 등 구체적 사례가 이어졌다.
박 교수는 패션산업뿐만 아니라 패션 관리 즉, 패션소비자도 환경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분명히 짚었다. “세탁, 건조, 다림질, 보관과 같은 관리로 인해서 물과 에너지 사용, 폐수 발생 등으로 환경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잘못된 관리습관은 제품 수명을 단축하거나 환경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 그래서 효율적으로 패션관리를 할 수 있는 소비자 교육이 중요하다. 최근 의류제품의 폐기가 미치는 악영향이 주목받으면서 소비자의 역할이 날로 중요해지고 있다.”

비시코스 레이온 섬유보다는 라이오셀 섬유와 대나무 섬유를,

폴리에스터 섬유보다는 재생 폴리에스터 섬유,

인조가죽 소재 등이

환경영향을 고려할 때 훨씬 더 우수한 대안재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그의 선택은 무엇일까. 친환경 텍스타일을 강조한 그는 비시코스 레이온 섬유보다는 라이오셀 섬유와 대나무 섬유를, 폴리에스터 섬유보다는 재생 폴리에스터 섬유, 인조가죽 소재 등이 환경영향을 고려할 때 훨씬 더 우수한 대안재라고 주장했다. 예컨대 대나무 섬유의 원료인 대나무는 관계수가 필요 없고, 일반 목재에 비해 생장 속도가 빠르며, 재료공급 측면에서도 지속가능성이 높다.
토론자로 나선 김승민 교수(생활과학부 식품영양학 전공)는 “의류업체 중 파타고니아라는 브랜드는 친환경 재활용 소재를 활용하고, 기후변화 대응에 매출의 1%를 기부하고, 친환경 정책을 통해 공급망을 확보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라고 소개하면서 “환경적 지속가능성이라는 트렌드는 패션 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들도 망라해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큰 화두”라고 말했다.
통합인문학연구소는 이번 정기학술대회에 앞서 지난 1월 17일 ‘포스트휴먼시대, 인간의 삶―인간 이후의 인간을 생각한다’를 주제로 27차 정기학술대회를 열었고, 이어 5월 11일에는 한국여성문학학회, 한국여성사학회, 한국여성철학회와 공동으로 ‘1990년대 페미니즘적 전회의 재구성’을 주제로 제10회 여성주의 인문학 연합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시의적절한 주제를 놓고 활발하게 지적 탐색을 벌이는 통합인문학연구소의 다음 행보가 주목된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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