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우 경제학과 교수
# 지금 미국의 이야기이다. 작년, 당시 28세이던 신예 정치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는 미국 중간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최연소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녀는 올해 초 이른바 ‘그린 뉴딜(Green New Deal)’이라는 획기적인 개혁정책을 주도적으로 발의하였는데, 이는 2020년 대선의 민주당 대표 공약으로 부상하였다. 그린 뉴딜의 핵심 목표는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을 위해 2030년까지 미국내 전기에너지원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후변화 대응 관련 인프라에 1조 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수백만에서 1천만 명에 이르는 공공 일자리를 만드는 것 이외에, 이 정책은 건강보험 적용범위 대폭 확대와 무상고등교육 등 포괄적인 사회보장 프로그램을 담고 있다. 정책 수행을 위해서는 현행 연간 국가예산을 훨씬 초과하는 천문학적 예산이 소요되는데, 그녀가 이러한 재원의 조달이 실현 가능함을 역설하면서 제시한 근거가 이른바 현대화폐이론(Modern Monetary Theory)이다.
다소 극단적인 비주류 경제이론의 하나인 현대화폐이론의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다. 정부가 자국화폐로 돈을 빌리는 한 정부부채는 아무리 커져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으며, 따라서 수요가 부족한 불황기에 정부는 적자재정을 통해 적극적으로 재정지출을 늘림으로써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있고, 또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부는 필요하면 얼마든지 화폐를 발행하여 빚을 갚을 수 있으므로 결코 파산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정부는 발행한 화폐로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얼마든지 구매할 수 있으므로 재정지출의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굳이 빚을 내거나 세금을 거둘 필요조차 없다. 물론 이렇게 찍어낸 돈의 양이 지나쳐 경제의 생산능력을 초과하게 되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데, 현대화폐이론 지지자들은 이러한 인플레이션의 발생가능성이야말로 재정지출과 정부부채에 대한 유일한 제약이라고 주장한다. 쉽게 말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정부는 빚 걱정 없이 얼마든지 자유롭게 돈을 찍어 지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린 뉴딜에 아무리 많은 예산이 소요된다 하더라도 재원 조달에는 전혀 문제가 없으며, 이를 통한 투자사업에 투입할 노동과 자본만 충분하다면, 즉 유휴생산능력만 충분하다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을 우려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 지금 우리나라의 이야기이다. 지난 5월, 대통령 주재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경제부총리는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40% 수준에서 관리하겠다고 보고하였다. 회의 당시 보고된 2018년 기준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비율은 38.2%로 40%에 육박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에 대해 대통령은 100%가 넘는 OECD 평균 국가채무비율을 언급하면서 우리나라가 40%를 유지해야 하는 근거가 무엇인지를 물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국가채무비율의 이른바 ‘마지노선’ 논란이 정치권과 학계로 급속히 번져나갔다. 40% 마지노선의 이론적·경험적 근거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일부 정치인과 학자들은 급속한 고령화와 잠재적 통일비용에 근거하여, 지금 추세로 재정이 방만하게 운영되면 그리스나 베네수엘라와 같이 될 수 있다며 섬뜩한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한국은행은 GDP 등 국민소득통계의 기준연도를 5년마다 개편하면서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를 재추산하는데, 이번 개편 결과 지난 해 GDP가 6% 넘게 높아지면서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기존 38.2%에서 35.9%로 뚝 떨어진 것이다. 게다가 바로 내년부터 국가채무비율이 40%를 넘어설 것이라던 당초 전망과 달리, 기준년 개편으로 GDP 규모가 증가하면서 2022년까지도 이를 넘지 못할 것으로 전망이 바뀌었다. 40% 마지노선에 대한 논란의 의미가 완전히 무색해진 것이다.
# 사실 필자는 현대화폐이론이나 40% 마지노선이 타당한 것인지 잘 알지도 못하고, 크게 관심도 없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재정의 역할에 대한 정치인, 관료, 학자들의 인식 및 태도에 있어 우리나라와 미국의 차이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18년 현재 미국 경제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100%를 훌쩍 넘으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무려 121개월 동안 경기확장이 지속되면서 사상 최장의 호황 기록을 매달 갈아치우는 중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미국에서는 돈을 찍어서라도 정부가 지출을 늘려 완전고용을 달성하고 빈곤을 해소하자는 주장이 공공연히 거론되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비율은 상기한 대로 미국뿐 아니라 전체 OECD 국가 평균에 비해서도 턱없이 낮으며, 지난 1분기에는 10년 만에 최저 수준의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할 정도로 경기가 부진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40% 마지노선 운운하면서 의미 없는 숫자놀음에 빠져 나라 곳간을 움켜쥐고 있다.
국가경제를 가정에, 정부를 가장에 비유한다면 우리나라 정부는 마치 얼마 안 되는 빚을 갚느라 못난 자식의 교육이나 건강에 대한 투자를 포기하는 자린고비 가장이나 다름없다. 오죽하면 사채업자 격인 IMF마저 얼마 전 우리나라 정부에 대해, 추경이든 뭐든 해서 돈 좀 쓰라고 충고했을까!
다소 극단적인 비주류 경제이론의 하나인 현대화폐이론의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다. 정부가 자국화폐로 돈을 빌리는 한 정부부채는 아무리 커져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으며, 따라서 수요가 부족한 불황기에 정부는 적자재정을 통해 적극적으로 재정지출을 늘림으로써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있고, 또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부는 필요하면 얼마든지 화폐를 발행하여 빚을 갚을 수 있으므로 결코 파산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정부는 발행한 화폐로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얼마든지 구매할 수 있으므로 재정지출의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굳이 빚을 내거나 세금을 거둘 필요조차 없다. 물론 이렇게 찍어낸 돈의 양이 지나쳐 경제의 생산능력을 초과하게 되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데, 현대화폐이론 지지자들은 이러한 인플레이션의 발생가능성이야말로 재정지출과 정부부채에 대한 유일한 제약이라고 주장한다. 쉽게 말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정부는 빚 걱정 없이 얼마든지 자유롭게 돈을 찍어 지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린 뉴딜에 아무리 많은 예산이 소요된다 하더라도 재원 조달에는 전혀 문제가 없으며, 이를 통한 투자사업에 투입할 노동과 자본만 충분하다면, 즉 유휴생산능력만 충분하다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을 우려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 지금 우리나라의 이야기이다. 지난 5월, 대통령 주재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경제부총리는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40% 수준에서 관리하겠다고 보고하였다. 회의 당시 보고된 2018년 기준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비율은 38.2%로 40%에 육박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에 대해 대통령은 100%가 넘는 OECD 평균 국가채무비율을 언급하면서 우리나라가 40%를 유지해야 하는 근거가 무엇인지를 물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국가채무비율의 이른바 ‘마지노선’ 논란이 정치권과 학계로 급속히 번져나갔다. 40% 마지노선의 이론적·경험적 근거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일부 정치인과 학자들은 급속한 고령화와 잠재적 통일비용에 근거하여, 지금 추세로 재정이 방만하게 운영되면 그리스나 베네수엘라와 같이 될 수 있다며 섬뜩한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한국은행은 GDP 등 국민소득통계의 기준연도를 5년마다 개편하면서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를 재추산하는데, 이번 개편 결과 지난 해 GDP가 6% 넘게 높아지면서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기존 38.2%에서 35.9%로 뚝 떨어진 것이다. 게다가 바로 내년부터 국가채무비율이 40%를 넘어설 것이라던 당초 전망과 달리, 기준년 개편으로 GDP 규모가 증가하면서 2022년까지도 이를 넘지 못할 것으로 전망이 바뀌었다. 40% 마지노선에 대한 논란의 의미가 완전히 무색해진 것이다.
# 사실 필자는 현대화폐이론이나 40% 마지노선이 타당한 것인지 잘 알지도 못하고, 크게 관심도 없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재정의 역할에 대한 정치인, 관료, 학자들의 인식 및 태도에 있어 우리나라와 미국의 차이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18년 현재 미국 경제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100%를 훌쩍 넘으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무려 121개월 동안 경기확장이 지속되면서 사상 최장의 호황 기록을 매달 갈아치우는 중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미국에서는 돈을 찍어서라도 정부가 지출을 늘려 완전고용을 달성하고 빈곤을 해소하자는 주장이 공공연히 거론되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비율은 상기한 대로 미국뿐 아니라 전체 OECD 국가 평균에 비해서도 턱없이 낮으며, 지난 1분기에는 10년 만에 최저 수준의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할 정도로 경기가 부진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40% 마지노선 운운하면서 의미 없는 숫자놀음에 빠져 나라 곳간을 움켜쥐고 있다.
국가경제를 가정에, 정부를 가장에 비유한다면 우리나라 정부는 마치 얼마 안 되는 빚을 갚느라 못난 자식의 교육이나 건강에 대한 투자를 포기하는 자린고비 가장이나 다름없다. 오죽하면 사채업자 격인 IMF마저 얼마 전 우리나라 정부에 대해, 추경이든 뭐든 해서 돈 좀 쓰라고 충고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