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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노크를 한 지도 만 40년이 넘은 것 같다. 서울시 영등포구청에 있을 때 행정학과에 입학했는데, 80이 다 되도록 책을 못 놓고 있다.


나주의 한 농촌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더 큰 꿈을 이루려고 대학 문을 노크했지만 여러 집안 사정으로 대학교 2학년 때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이후 갖은 노력 끝에 ‘서울시 공직’으로 근무를 하게 됐으나 대학의 꿈을 놓을 수가 없었다. 직장에서 동료가 방송대 행정학과에서 공부하는 걸 보고 1983년 행정학과에 첫 발을 디뎠다.


그때는 새벽 5시에 기상해 라디오로 방송을 듣고 공부를 해야 했다. 이때를 놓치면 하루 공부가 엉망이 되기에 새벽 강의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과제물을 제출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다른 책들을 참고해서 작성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실력이 느는 것 같았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정책형성론」을 들어가며 공부할 때에는 마치 내가 서울대 학생이나 된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방송대 공부를 하면서 평상시에 승진 시험에도 자연스럽게 대비할 수 있었고, 그 덕에 시험에 합격하기도 했다. 심리학자가 매슬로가 말한 ‘자아실현’의 기회를 방송대에서 찾은 셈이다.


서울시 행정은 복잡한 민원과 이해관계가 큰 업무들이 많아 늘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다양한 판례와 사례를 찾아 열심히 공부해야 했는데, 법률적 지식을 갖추기 위해 법학과에서도 공부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때로는 수해 현장에서도 가난한 시민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자랑스러운 공무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서울시에 근무할 때, 나는 잘나가는 부유층보다 가난하고 생활이 어려운 이웃에게 행정의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고, 행정 방향도 그쪽으로 맞췄다.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고 함께하는 시간은 나에게 즐거운 시간이었다.


당시 첫 발령지였던 영등포구 시흥2동의 기억은 지금도 아찔하기만 하다. 1977년 폭우로 안양천이 범람했을 때다. 산사태에다 하천 범람으로 사망자가 속출했고, 집집마다 모든 게 풍비박산이 났다. 전국에서 보내온 수해 구호 물품이 동사무소를 가득 메웠다. 모든 행정이 수해복구에 집중됐다.


2004년 내 인생의 천직인 서울시 공직의 마지막 은퇴지는 일명 ‘노원마을’이 있는 상계1동이었다. 노원마을은 툭하면 물바다가 됐다. 그게 항상 걱정이었다. 어느 해인가 피해를 입은 가구들의 침수된 온수 보일러를 무상으로 수리해 준 일은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보람으로 남아 있다. 독거 어르신들의 장례를 치른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잘했다고 자부하는 일이다.


이렇게 방송대에서 공부하면서 2004년 6월, 정들었던 서울시 무대에서 내려왔다. 더 열심히 연기를 하고자 하나 이제 무대가 없어진 배우처럼 힘이 없이 초라한 나그네가 됐다. 사실 나의 젊었을 때 꿈은 ‘섬마을 선생님’이었다. 법학과와 교육학과에서 공부했고,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오래전 인연을 맺은 행정학과에서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다행스럽게도 젊었을 때 확보한 초등학교 교사자격증으로 계약제 교사를 하며 허전한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지난해 2월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화순문학회 이사, 서울시문학회 이사, 나주향토문화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호남의 향토문학에 기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화순과 나주 지역신문에도 기고하면서 지방의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방송대에서 이루고자 한 나의 꿈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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