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정보통계학과 교수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피천득 선생의 「인연」이 가슴 ‘뭉그레이’ 떠오르는 어느 날, 무작정 떠난 여행길. 보성 녹차밭과 율포 소나무밭 해수욕장을 지나 ‘장흥’이라는 팻말이 나타나고, 곧이어 장재도 섬으로 가는 길. 그리로 갈까 말까 망설이는데, 커다란 현수막 글자가 펄럭인다. “우리 마을의 자랑 한강…”
‘한강’이 왜 여기에 있지 하는데 ‘한승원’ 선생님의 안내판이 보인다. 아, 여기가 한승원 선생의 마을이구나. 우연히 접한 ‘다산’ 책을 통해 정약용을 알고, 다산에게 다도를 가르쳤다는 초의선사를 알려준 한승원 선생의 ‘해산토굴’을 찾아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초의선사에게서 그림을 시작했다는 소치 선생이 떠오르고, 이어 미산-남농-임전 선생으로 이어지는 운림산방의 운치가 어른거릴 즈음, 해산토굴 현판이 나타난다. 때마침 토굴 문을 나서는 한승원 선생님을 뵙고서는 그저 부끄럽게 인사만 넙죽 드리고 말았다. 내가 지역대학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에 쌓은 추억 중 하나다. 이런 우연 속에 얼마나 큰 행복이 깃들어 있는지….
지역대학장 시절에는 학생들과 있는 그대로 만나면서, 가끔은 박경리 선생의 토지 이야기로, 가끔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로, 가끔은 조정래 선생의 아리랑 이야기로, 겨울 꼬막의 진수를 맛보려면 태백산맥을 펼쳐야 한다고 하고…. 그러다 보면 내가 학생인지, 학생이 학장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스스럼없던 추억이 떠오른다.
이러한 인연이 계기가 되어 당시 행정실장이던 김성기 선생의 열정으로 그림과 서예 작품 모으기 운동을 시작했는데, 광주전남지역대학에서 70여 점, 전북지역대학장 시절에는 250여 점이 모였다. 강암 선생의 수제자 송계 김용배 선생님, 그의 제자인 수허당 노금옥 선생, 구름꽃 늘샘 강옥자 작가. ‘허당 선생’이라고 가끔은 농담으로 불렀던 추억도 떠오르고, 전북지역대학 입구에 높게 걸린 100호짜리 3개 크기인 강옥자 작가의「하나가 하나 되어」속에 감추어져 있는 작가 네 분의 숨은 이름도 찾아보고 싶고. 작품 속에 깃든 고 한용기 선생도 보고 싶고. 서울 대학본부 본관에 걸린 그림과 서예 작품들이 이때의 인연으로 기증받아 자리를 조
용히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 우연의 한순간이 주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그러고 보면 우리 인생도 우연의 연속이 아닌가 싶다. 대학원 재학시절 우연히 만난 방송대 학생들로부터 시작해서, 대학 부임 초창기에 생각지도 않은 전산소장을 맡아 수강자율화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1년여 넘게 씨름했던 옛날 옛적의 추억, 이어진 Y2K 작업, 전산소 식구들이 밤늦도록 프로그램을 짜고 토론하고. 그렇게 고생하면서도 자랑스러워 하던 모습에서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방송대의 저력이 느껴지곤 한다. 이렇게 깊은옛 인연으로 시작했던 U-KNOU 캠퍼스 사업. 2009년 유비쿼터스의 꿈으로만 설계되었던 작업이 전산원, DMC, 학사팀, 원격연구소 선생님들의 힘으로 이루어지고, 온갖 어려움에도 프로젝트를 묵묵히 이끌어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방송대의 미래를 꿈꾸어 본다.
이제 우리는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까. 학생들은 죽어라 공부하고, 교수님들은 연구와 교육에 몰두하고, 직원 선생님들은 소신껏 배짱 있게 최선을 다하고. 서로간의 조그마한 인연이라도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순간의 인연을 행복으로 느끼며 생활하는 방송대인의 모습을 그려 본다.
‘한강’이 왜 여기에 있지 하는데 ‘한승원’ 선생님의 안내판이 보인다. 아, 여기가 한승원 선생의 마을이구나. 우연히 접한 ‘다산’ 책을 통해 정약용을 알고, 다산에게 다도를 가르쳤다는 초의선사를 알려준 한승원 선생의 ‘해산토굴’을 찾아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초의선사에게서 그림을 시작했다는 소치 선생이 떠오르고, 이어 미산-남농-임전 선생으로 이어지는 운림산방의 운치가 어른거릴 즈음, 해산토굴 현판이 나타난다. 때마침 토굴 문을 나서는 한승원 선생님을 뵙고서는 그저 부끄럽게 인사만 넙죽 드리고 말았다. 내가 지역대학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에 쌓은 추억 중 하나다. 이런 우연 속에 얼마나 큰 행복이 깃들어 있는지….
지역대학장 시절에는 학생들과 있는 그대로 만나면서, 가끔은 박경리 선생의 토지 이야기로, 가끔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로, 가끔은 조정래 선생의 아리랑 이야기로, 겨울 꼬막의 진수를 맛보려면 태백산맥을 펼쳐야 한다고 하고…. 그러다 보면 내가 학생인지, 학생이 학장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스스럼없던 추억이 떠오른다.
이러한 인연이 계기가 되어 당시 행정실장이던 김성기 선생의 열정으로 그림과 서예 작품 모으기 운동을 시작했는데, 광주전남지역대학에서 70여 점, 전북지역대학장 시절에는 250여 점이 모였다. 강암 선생의 수제자 송계 김용배 선생님, 그의 제자인 수허당 노금옥 선생, 구름꽃 늘샘 강옥자 작가. ‘허당 선생’이라고 가끔은 농담으로 불렀던 추억도 떠오르고, 전북지역대학 입구에 높게 걸린 100호짜리 3개 크기인 강옥자 작가의「하나가 하나 되어」속에 감추어져 있는 작가 네 분의 숨은 이름도 찾아보고 싶고. 작품 속에 깃든 고 한용기 선생도 보고 싶고. 서울 대학본부 본관에 걸린 그림과 서예 작품들이 이때의 인연으로 기증받아 자리를 조
용히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 우연의 한순간이 주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그러고 보면 우리 인생도 우연의 연속이 아닌가 싶다. 대학원 재학시절 우연히 만난 방송대 학생들로부터 시작해서, 대학 부임 초창기에 생각지도 않은 전산소장을 맡아 수강자율화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1년여 넘게 씨름했던 옛날 옛적의 추억, 이어진 Y2K 작업, 전산소 식구들이 밤늦도록 프로그램을 짜고 토론하고. 그렇게 고생하면서도 자랑스러워 하던 모습에서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방송대의 저력이 느껴지곤 한다. 이렇게 깊은옛 인연으로 시작했던 U-KNOU 캠퍼스 사업. 2009년 유비쿼터스의 꿈으로만 설계되었던 작업이 전산원, DMC, 학사팀, 원격연구소 선생님들의 힘으로 이루어지고, 온갖 어려움에도 프로젝트를 묵묵히 이끌어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방송대의 미래를 꿈꾸어 본다.
이제 우리는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까. 학생들은 죽어라 공부하고, 교수님들은 연구와 교육에 몰두하고, 직원 선생님들은 소신껏 배짱 있게 최선을 다하고. 서로간의 조그마한 인연이라도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순간의 인연을 행복으로 느끼며 생활하는 방송대인의 모습을 그려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