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프리즘]

조승현 본교 교수·법학과

강제징용에 대한 대한민국 대법원의 원고 승소 판결 그리고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한다는 아베의 조치, 일본 상품 불매운동…. 1965년 한일협정이 체결된 이후, 한일관계가 이렇게까지 악화된 적은 없었다. 왜 이렇게 악화된 것일까? 양국 정상의 감정이나 정치적 의도에 기인한 것일까? 그보다는 1965년 한일협정이 낳은 필연적 현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국과 일본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을 토대로 4개의 부속조약을 체결했는데 부속조약 중 하나인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 및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줄여서 ‘청구권 협정’) 제2조 제3호에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 내용이 들어있다.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타방체약국 및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으로서 동 일자(1965년 8월 22일) 이전(1945년 8·15 이후는 배제)에 발생한 사유에 기인하는 것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 이 부분에 관하여 일본정부와 법원은 국가든 개인이든 모든 청구권은 소멸했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에 일본외무성은 한국 법원의 신일철주금 자산에 대한 압류 승인에 대해 항의하고, 한국정부에 청구권협정 제3조에 따른 중재위원회 설치를 요구했으나, 한국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법 문장 자체의 형식만으로 보면 언뜻 일본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보인다. 청구권 협정 3조에서도(조약체결) 이후 해석분쟁은 중재위원회에 회부하기로 했으니까. 그러나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우선 일본의 입장이 역사적 시간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2001년 이전까지 일본정부는 이 부분에 관해 ‘개인의 청구권 자체를 국내법적 의미에서 소멸시킨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전후 보상에 대한 소송이 잇따르자 일본정부의 입장이 바뀌어 개별청구권이 소멸했다고 해석하고 있다. 더구나 일본은 1945년 이전에 있었던 한일 간의 조약들은 무효가 됐지만 불법은 아니고, 따라서 청구권협정은 양국의 국교관계 수립을 축하하는 축하금의 성격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렇다면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불법적 강제동원 성격의 징용이나 위안부 문제는 청구권 협정과는 무관한 문제라는 점을 일본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꼴이다.
1965년 한일회담은 ‘식민지 과거 청산’을 하기엔 수준 미달이었다. 식민지 병합의 불법적 성격을 규정할 기준이 될 국제법이 부재하였고 배상이나 보상 기준 또한 불분명했다. 미국과 일본에서 불던 반공논리가 그 당시에 체결된 조약들 속에 최우선 가치로 자리매김 하면서 식민지 과거 청산의 중요한 문제들이 묻혀버렸다. 더 치명적인 결함은 조약당사자의 대표성과 국민적 합의의 부재에 있었다. 친일의 경력을 지닌 박정희 쿠데타 군사정권의 한국대표들은 과거청산에 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할 의도도 능력도 없었다. 즉, 자신들의 허약한 민주적 대표성과 정통성을 감추기 위해서 반공과 경제개발 논리를 앞세워, 식민지 과거 청산이라는 중요한 민족사적 문제를 도외시해 버린 것이다. 당시의 일본정부 대표들이 한국정부 대표의 약점을 악용했다는 증거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1965년에 체결된 한일협정을 둘러싼 쟁점이 양국 간에 원만히 해결되지 않는 한, 한일 간의 갈등은 지속될 수밖에 없고 이는 양국 국민들의 고통으로 이어질 것이다. 양국정부가 솔직한 대화로 미래 지향적 관계를 새로 정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과거를 모두 덮는다고 관계가 새로 정립되는 것이 아니다.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관계는 무엇보다 과거 식민지 관계의 제대로 된 청산이 이루어질 때에만 가능하다. 한일병합의 불법적 성격을 명확히 규정하고, 강점기 동안 있었던 불법적 사실관계를 제대로 평가할 때에만 한일 간의 정상적인 관계와 신뢰가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0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0
댓글쓰기
0/300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