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강성남의 그노시스

1976년에 나온 컴퓨터 ‘애플Ⅰ’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다. “애플 I, 마음의 자전거(Apple I, a bicycle for the mind).” 잡스는 컴퓨터를 ‘마음의 자전거’라고 불렀다. 그는 인간이 자신인의 잠재력을 넓히고 더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번거롭고 수고스러운 일을 대신할 수 있는 21세기의 자전거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잡스는 ‘이동 효율성’에 관한 듀크대학의 한 보고서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 보고서에는 사람이 걸어서 1㎞ 이동하는 데 에너지가 약 75㎉ 필요하지만, 자전거를 이용하면 5분의 1인 15㎉밖에 들지 않는다면서 자전거의 효율성은 말과 자동차, 헬리콥터보다 높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잡스는 이런 효율성을 지닌 ‘창의적 도구’가 개인용 컴퓨터라고 생각했던 거다. 이 덕분에 우리는 ‘마음의 자전거’를 갖게 됐고 새로운 인류 문명의 서사를 계속 써나가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인공지능이나 로봇은 모두 ‘마음의 자전거’가 진화한 것이다. 잡스는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가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이 한때는 다 상상에 불과했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라”라고 한 말에 영감을 얻었다.


인류의 제작(조물) 능력을 가리켜 ‘호모 아르티펙스(Homo Artifex)’라고 한다. 여기서 창의성이 나온다. 이 능력에 따른 과학 기술의 발전은 세상의 해상도를 예전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높이고 있다. 그 덕에 우리는 여태껏 희미했거나 보지 못했던 세상을 명확하게 볼 수 있다. 예컨대 2023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커털린 커리코(Katalin Kariko)가 30여 년 연구 끝에 개발한 ‘메신저 리보핵산(mRNA)’ 플랫폼은 인류를 질병에서 벗어나게 하는 해방의 문을 열었다. 벌써부터 췌장암, 폐암 등 불치병으로 여겨왔던 것을 완치시키는 데 이 커털린 커리코의 연구 성과가 활용되고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은 삶의
모토를 두 개 가지고 살았다.
루만의 모토처럼 오늘날 마음의 자전거가

비약적으로 진화하는 데는

이처럼 숨어서 연구하는 과학자의 공헌이
지대하다.

 


지난달에는 DNA를 이용해 기존의 데이터 저장 기술에 더해 저장과 연산, 검색까지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미래 기술인 ‘DNA 컴퓨터’는 DNA의 4가지 염기 서열인 아데닌(A)·구아닌(G)·사이토신(C)·티민(T)으로 디지털 데이터를 저장하고 연산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아주 초기 형태의 DNA 저장 및 컴퓨팅 구현에 성공한 것이라지만 연필 지우개 크기의 DNA 저장 연산 장치에 노트북 컴퓨터 1천 대 분량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DNA 컴퓨터는 저장 능력이 뛰어나고 에너지 소비가 적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DNA 컴퓨터는 계산이나 저장 속도 등이 느려 상용화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 속도가 기하급수적이기 때문에 상용화 시기가 앞당겨질 것이다.


역시 지난달 놀라운 연구 성과가 중국에서 나왔다. 양자 얽힘이 뇌 속 신경세포에서도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양자 세계에만 존재하는 중첩현상과 얽힘현상의 원리를 이용한 게 양자컴퓨터다. 이런 원리를 확인한 셈이다. 그것도 뇌에서 말이다.


뇌에서 양자역학적인 현상이 일어난다는 ‘양자 뇌 이론’은 이전부터 제창되고 있었다. 이번에 이를 이론적으로 확인시켜 준 셈이다. 게다가 일부 연구자들은 양자역학적인 성질이 의식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노벨상 수상자인 로저 펜로즈는 “뇌의 의식은 고전적인 계산기를 넘어선 양자적인 성질에 의해 생성되고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뇌 이론은 과거에는 비판을 많이 받은 분야였지만 양자생물학의 발전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만약 양자적인 빛의 입자에 의해 뇌가 동기를 이루고 있다면, 그것을 ‘영혼’이라고 불러도 크게 틀리지 않을지 모른다고 한다.


지난해 말 필자는 참고문헌을 포함해 1천 페이지가 넘는 벽돌 책『행동』(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김명남 옮김, 2023)을 완독했다. 이제껏 읽은 책 중에서 앞 몇 페이지 문단에서 부록을 먼저 읽고 다음 문단을 읽으라는 지시를 받은 경우는 이 책이 처음이다. 이게 뭐지? 라면서 지시를 따랐다. 부록(1)은 신경과학입문. 그 덕분에 최근 연구에서 뇌 속 양자얽힘이 뉴런의 긴 팔을 덮는 미엘린초(myelin sheath)에서 나타나고 여기서 생성된 양자얽힘 상태의 광자가 뇌 전체를 동기화(synchronization)시키는 양자 통신을 실현하고 있을 가능성을 제시한 연구 결과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연구 결과를 보면서 의식의 근원이 빛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또한 인공지능 컴퓨터의 양자도약을 모색할 수 있는 단서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기도 했다.


독일의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1927~1998)은 삶의 모토를 두 개 가지고 살았다. 낮의 모토는 ‘좋은 정신은 건조하다.’ 밤의 모토는 ‘잘 숨어서 산 인생이 잘 산 인생이다.’ 루만의 모토처럼 오늘날 마음의 자전거가 비약적으로 진화하는 데는 이처럼 숨어서 연구하는 과학자의 공헌이 지대하다. 루만이 자신의 ‘메모 상자’라고 부른 제텔카스텐(Zettelkasten)과 닮은 꼴인 나의 독서 사전에 그의 삶의 모토를 입력해 뒀다. 나에게 ‘건조한 정신으로 숨어서 잘 살라’고 스스로 격려하면서.

 

방송대 명예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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