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편이 본심에 올랐는데, 모두 작품성과 완성도가 매우 높았다. 소설은 현실성이 바탕이 되어 작가의 문제의식과 그 방향에 따라 내용이 구축됐을 때 가장 탄탄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은 기회였다.
소설은 보통 한 인물이 사건의 중심에 서서 그 사건에 올라탄 다른 인물들과 서로 다른 조건 혹은 다른 입장을 치열하게 주고받으며 우리 세계의 보편적 한계 혹은 보편적 특징을 획득한다. 그리고 촘촘히 쌓아 올린 문장의 끝에서 작가의 해석을 만나게 되고 우리는 그것을 가슴 깊이 새기게 된다.
「형벌」(권경일)은 20년 동안 수형생활을 하던 인물이 출소하면서 겪은 이틀간의 기록이다.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촘촘히 짜인 메커니즘에 의해 돌아가는지 갓 수감생활에서 벗어난 사람의 눈으로 새롭게 보는, 낯설게하기가 매우 잘 구현된 작품이다. 다만 한 사람의 시선으로 이어지다 보니 긴장감이 높아지는데, 수감 이전의 동생과의 관계 등이 에피소드로 들어갔다면 글의 완급을 조절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느 이상한 이야기의 머리말」(양희석)은 알코올 중독자인 인물이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단주(斷酒)와 붕괴 사이에서 오가는 중독생활을 매우 상세히 그려냈다. 알코올 중독자에게는 일상의 모든 것은 오직 알코올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인물이 우연히 얻은 ‘어떤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으로 이해되기는 하지만, 그 책이 매우 오래된 경전 같아 보인다는 길고 긴 묘사 외에 실질적으로 이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불분명했다.
「두 다리」(정영란)는 종합병원의 약국에서 하루 종일 서서 일을 해야 하는 인물이 결국 직업의 특성에서 얻어진 불편한 다리로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불안정한 계약 관계와 불합리한 직무 때문에 고통을 겪는 내용이다. 무엇 때문에 아픈 다리로 버텨야 하는지, 무슨 사건을 겪었기에 소송을 하려다 마는지 사건의 인과관계가 없이 파편적으로 제시하는 데 그쳤고, 인물의 통증을 중심으로 자의적 상념과 사소한 주변 묘사로 일관하고 있는 점이 답답하게 만들었다.
「부작위 인간」(허석준)은 극도의 경쟁사회, 숨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사회, 불안에 내몰린 사회라고 불리는 한국에서 사회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지 않은 사람에 대한 시각을 잘 그려냈다. 이 작품에서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던 독거 중년은 자신에게 부여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던 부작위 인간이었을 뿐이라며 자신을 부정하고 사라진다. 이후 화자가 그 인물에 대해 어떤 조짐이 담긴 에피소드를 떠올리는 구성을 해주었더라면 글의 완성도가 더 높아졌을 것이다.
「엄마의 똥집」(현명희)은 뇌졸중에 치매까지 온 아흔 살 엄마, 본인의 자녀가 있음에도 아들을 낳아주러 대갓집에 후처로 들어갔던 엄마의 삶을 돌아보는 자매들에 관한 내용이다. 이 작품은 매우 일상적인 문장으로 섬세하게 엄마와 자신들의 삶을 보여준다. 다만 소설 도입부에 치매 걸린 강아지를 돌보는 중년 남자와의 만남을 넣은 것이 현재를 만들기 위해 집어넣은 작위적 요소여서 주요 사건과 섞여 들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웠다.
다섯 편 모두 차분하게 각 인물이 처한 상황을 장면으로 구성하면서 치밀하게 주제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누가 인간에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부여했고, 또 누가 그것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 우리 사회는 고독을 선택할 권리도 외로움에서 벗어날 방법도 아직 논의되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 던진 질문이라는 생각에 「부작위 인간」을 당선작으로, 「형벌」을 가작으로 선정했다. 세 편의 작품을 쓴 분들께도 큰 응원을 보낸다.
방현희 소설가
방송대를 졸업했다. 단편「새홀리기」로 2001년 〈동서문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02년 『달항아리 속 금동물고기』로 제1회 문학/판 장편소설상을 받았다. 소설집 『바빌론 특급우편』, 『로스트 인 서울』 등과 장편소설 『불운과 친해지는 법』(2016 부산 국제영화제 북투필름 작 선정) 등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