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제48회 방송대문학상

애초에 회사를 나설 때는 전혀 조급하지 않았다. 마침 몇 주 동안이나 끌어오던 일들은 오전에 마무리했고, 오후부터는 어떻게든 한가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 아무리 못 보더라도 한 달에 두어 번은 얼굴을 보던 현우 선배에게서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휴대전화 메시지를 확인했다. 내가 일주일 전에 보낸 안부 메시지에 여전히 확인하지 않았다는 표시가 남아 있었다. 아무리 늦다고 해봐야 답장이 이틀을 넘긴 적이 없었다. 그래서 마침 여유가 될 때 아예 현우 선배 집으로 가봐야겠다고 반차를 내고 나섰다.
‘진작 가봤어야 했나’ 바쁘다는 핑계로 주변을 특히나 ‘독거 중년’인 현우 선배를 챙기지 못했던 나 자신을 탓했다. 그렇지만 하필 바빠도 너무 바빴다. 반짝 며칠이었지만 회사 일로 연일 야근이었는데다가 해외에 있는 아내가 부탁한 일들로 새벽 시간에 장시간 영상통화를 해가며 처리하느라 잠도 기껏 하루에 두세 시간 자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렇게 나는 속으로 정당화를 해가며 현우 선배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전원이 꺼져 있다는 안내 멘트가 나온다. 메시지의 확인이 늦어지는 것을 보고 며칠 전에 전화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버스를 타고 선배 집으로 향하는 동안 그간 무심히 봐왔던 뉴스 기사의 헤드라인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독거노인 숨진 채 발견’, ‘쓸쓸한 죽음’, ‘장기간 방치된 미라화된 변사체 발견’….
온갖 극단적인 생각들과 함께 한편으로는 ‘지금이라도 가지 말고 그냥 연락이 올 때까지 잠자코 기다려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비겁한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혹시 찾아갔는데 괜히 ‘안 좋은 상황’을 마주하면 어쩌지? 119를 불러야 하나? 아니면 경찰? 괜히 의심받는 거 아냐? 혹시 내가 다 책임을 져야 하는 건 아니겠지?‘
이렇게까지 생각하다가 선배의 안위보다 번거로움을 먼저 걱정하는 나 자신을 부정하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더 이상 잡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나는 버스 창문에 붙은 노선도를 보며 도착까지 남은 정류장을 거꾸로 세어보았다. 회사에서 현우 선배의 집까지는 약 40분 남짓, 27개 정류장이 남았다. 26개, 25개…. 애초에 급한 마음으로 나선 길이 아니었는데 복잡한 생각들 때문에 한껏 여유로운 오후의 시내 도로의 모습과는 다르게 내 마음은 점점 더 조급해져만 갔다.

 


20년이 넘게 지나서, 그것도 서울에서 현우 선배를 다시 보게 된 건 3년 전 동호회 모임에서였다. 낯가림이 심하진 않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이거나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던 내가 아는 사람도 하나 없는 일렉기타 동호회의 소규모 공연을 보러 갔던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어느 날 즐겨 듣던 곡들을 직접 연주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덥석 일렉기타를 시작한 것부터 내 인생의 손꼽을 만한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내 눈앞에서 직접 연주를 보고, 음악을 듣고 싶은 욕심에 과감하게 참석을 결심한 것이었다.
공연장은 동호회 측에서 대여한 작은 라이브 클럽이었는데, 대로변에서 두 블록 정도 뒤편의 번화가를 조금 지난 골목에 위치한 건물의 지하였다. 내려가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역시 예상처럼 실내는 어둑어둑했지만, 다행히 지하에서 흔히 올라오는 퀴퀴하고 습한 냄새 같은 것은 나지 않았다. 스무 평 남짓 크기로 보이는 클럽 내부의 제일 안쪽에는 천장에 할로겐램프의 강렬한 빛을 받으며 ‘TAMA’ 드럼 세트를 위시하여 좌우로 ‘Marshall’ 기타 앰프와 캐비닛 스피커들이 배치된 무대가 보였다. 무대만 아니었다면 딱 허름한 호프집 정도로 보일 법했다. 공지된 시각보다 이른 시간임에도 회원들은 대부분 온 듯했고,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들어오는 나를 보고 그곳의 누군가가 큰 소리로 ‘어서 오세요!’ 하면서 인사를 건넸다. 나는 낯설고 어색함에 얼어붙어서 바보같이 뭐라 대꾸도 제대로 못 한 채 얼른 고개만 꾸벅 숙였다. 어색함에 어쩔 줄 몰라 하는데도 다행히 사람들은 하나같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살갑게 맞아주었다. 덕분에 나는 쭈뼛거리면서도 대충 돌아가며 회원들과 악수도 하고 간단하게 서로 통성명하며 인사를 주고받았다.
일부는 두셋씩 모여 앉아 벌써 술을 홀짝거리는 회원들도 있었고, 조금은 긴장된 모습으로 기타와 베이스를 꺼내서 만지작거리는 회원과 그 옆에 서서 그들의 악기나 연주를 구경하는 회원들도 있었다. 나는 ‘괜히 참석했나’ 하는 생각을 잠깐씩 했지만, 곧 무대에서 ‘딱 딱딱’하고 드럼 스틱끼리 부딪치는 소리를 시작으로 첫 번째 팀의 공연이 시작되면서 금세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된 것 같던 기분은 말끔히 잊어버렸다.
이날 공연에 참여한 회원들은 사오십 대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주로 연주되는 레퍼토리가레드 제플린(Led Zeppelin), 딥 퍼플(Deep Purple), 롤링 스톤스(Rolling Stones), 이글스(Eagles), 에이씨디씨(AC/DC) 같은 올드 밴드들의 대표곡들이었다. 하드 록이나 메탈 곡들이 가장 많았고, 이따금 블루스나 재즈곡을 연주하는 회원들도 있었다. 역시 집에서 영상으로 보는 것과 눈앞에서 직접 연주를 보고 음악을 듣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마치 프로 연주자 같은 실력의 회원들도 꽤 보였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실용음악을 전공한 회원들도 있고, 과거에 이른바 ‘딴따라’ 경력이 있는 분들도 있는 모양이었다. 한 팀당 서너 곡씩, 세 팀 정도 지났을까. 익숙한 흐느낌 같은 제프 벡(Jeff Beck)의 「Cause We’ve ended as lovers」의 도입부가 흘러나왔다. 내가 무척 좋아하던 곡이어서 더욱 유심히 기타 연주자를 응시하던 때였다.
‘어? 저 사람은…?‘ 비록 모자도 쓰고 있고, 오랜 내 기억과는 달리 수염도 길렀지만, 고등학교 선배 조현우가 틀림없었다.

 


남자애들만 득시글거리는, 그것도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지역의 고등학교에서 편집부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교지에 실을 글을 모으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기고할 학생이 없다는 것이었다. 시간만 나면 공을 차고 놀거나, 만화책을 보고, 혹은 입시 공부를 했으면 하지 글을 쓰는 학생은 그야말로 천연기념물이었다. 그러다 보니 편집부에 대한 내 기억은 교지에 실을 글들을 모아오라고 재촉받던 것이 대부분이었다. 분기에 한 권씩 펴내는 교지에 어떻게든 분량을 채울만한 글을 모아야 했다. 대부분은 이래저래 어떻게든 해결이 됐는데, 가장 큰 문제는 칼럼/논문 섹션이었다. 입시 공부가 아니면 펜을 잡지도 않을 애들이 머리 아프게 칼럼이며 논문이라니. 그렇게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어느 날 교지에 목숨을 건 듯 설쳐대던 편집부장이 논문을 한 편 가져왔다. 나는 과연 누구의, 어떤 글을 가져왔을지 궁금했다. 어차피 나와 또래 고등학생의 수준인데 크게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우리 학교에 이런 글을 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사실 내심 글을 제법 쓴다고 자부하던 나로서는 ’얼마나 잘 썼나 한번 볼까’ 하는 식의 낮잡아 보는 마음도 없잖아 있었다.
-‘한국 현대 문학의 심리학적 접근’
편집부장의 같은 반 친구가 쓴 거라 했다. 교과과정에도 없는 ‘심리학’이 낯설게 와닿았다. 무엇보다도 상당한 노력의 흔적들이 보였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기반으로 현대 문학작품을 분석하는 내용이었는데, 당시 교과과정과 전혀 상관없는 심리학에 대한 이해도도 높았지만, 분명히 이 글을 위해서는 도서관이나 외부의 자료들을 이용해야만 했을 것이다. 인터넷은 그 당시로부터 2년이나 지나서야 대중화되기 시작했으니까. 게다가 인문계 고등학교여서 평일은 밤 12시가 넘어서야 집에 갈 수 있었고, 토요일마저도 오후 6시에나 하교를 했으니 정말 없는 시간을 짜내서 관련 서적을 찾아보고 공부해 가며 쓴 글이 틀림없었다. 열악한 환경에 비해 너무 근사하게 한 편의 논문을 완성해 온 것이다.
물론 지금의 눈으로 그 글을 다시 본다면 다르겠지만, 그때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학교 성적, 좋은 대학교, 신형 워크맨, 여자 친구 같은 것이 오로지 세상의 전부처럼 여겨지던 나의 눈에는 비록 두 살 많다 해도 고등학생이 그런 논문을 썼다는 건 엄청난 충격이었고 마치 다른 차원의 사람이 남긴 흔적처럼 신기할 정도였다. 선배 ‘조현우’에 대한 나의 기억은 그랬다.

 


연주를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와 자리에 앉은 선배에게 다가갔다. 무대에는 조명과 앰프들이 내는 열기가 만만치 않았던 탓인지 그는 손수건으로 땀을 닦고 있었다.
“오원고 조현우 선배님 맞으시죠?”
연주하느라 목이 탔던 모양인지 땀을 닦고서는 맥주부터 들이켜는 선배에게 나는 불쑥 말을 건넸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놀랐는지 현우 선배는 맥주를 마시던 그대로 내 쪽으로 몸을 돌리며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금세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아, 예. 맞습니다. 그런데 죄송하지만 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혹시 누구신지?”
“아 역시! 맞네요. 저는 송경훈이라고 오원고 후뱁니다. 아마 선배님은 제 얼굴은 잘 기억 못하실 것 같아요. 제가 2년 후배입니다.”
“아 그래요? 신기하네요. 어떻게 서울까지 와서 이렇게 고등학교 후배를 다 만나게 되고. 하하하. 세상 참 좁단 말이 이럴 때 쓰라고 있나 봐요.”
당연하게도 선배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나였다면 내가 모르는 사람이 고등학교 후배라고 와서 대뜸 인사부터 하면 반가움보다도 경계심이 앞설 것 같은데 선배는 전혀 불편한 기색 없이 마냥 반갑게 대해 주었다. 그 덕에 그날 자리가 파할 때까지 나는 선배와 술잔을 기울이며 고등학교 이야기와 음악 이야기며 중간중간 들리는 회원들의 연주 실력을 칭찬하기도 하면서 같이 한참을 떠들고 마셨다. 나와 선배가 둘 다 일단 음악과 술을 좋아하는 것은 그 자리에서 바로 확인이 된 터라 나는 바로 형이라 부르고, 선배는 말을 편하게 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안부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이따금 술자리도 갖게 되었다.
동호회에서는 자주 술자리나 모임 등이 있었는데 형은 그런 자리엔 언제나 단골손님이었다.  현우 형은 술도 좋아하고, 말도 재미있게 잘하는 사람이다 보니 이른바 ‘분위기 메이커’였다. 그럼에도 가끔 내가 ‘형이 인기가 많아서’ 라는 식으로 말하면 의외로 형은 정색하면서 그게 다 ‘본인이 속없이 살살거리니까 만만하게 생각해서 그런 것’이라며 자기비하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에 담아둔 것들이 많은가 보다’하고 말았다.
그러나 형과 술자리 횟수가 점점 늘어갈수록 형은 나를 편하게 생각했는지 이따금 겉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보는 형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경우가 있었다. 대부분은 부정적인 생각이나 의견들을 나에게 하소연하는 식이었지만, 나는 그런 형이 가식적이라거나 이중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다만, 그렇게 대인관계에서 대내외적인 괴리감이 커진다면 언젠가 감정적인 폭발을 일으키지나 않을지 걱정될 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어찌하기엔 주제넘은 짓이란 생각이 들어서 나는 잠자코 형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밖엔 할 수 없었다.
 


나는 형과 간헐적으로 술자리를 가지게 되고도 한참이 지나도록 직접적으로 형의 고등학교 이후의 행적이나, 현재 직업, 수입이 어떤지, 대학교는 어딜 나왔는지 같은 것들은 전혀 물어본 적이 없었다.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궁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형과의 대화의 대부분은 음악이나 동호회 관련, 또는 고등학교 때 있었던 일들을 주로 이야기하다 보니 굳이 알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형이 대화 중에 조금씩 풀어놓는 이야기들로 대충 짐작할 뿐이었다.
그렇게 내가 알게 된 현우 형은 당나라 시인 ‘두보’를 떠올리게 했다. 굴곡진 생애와 풍파에 묻혀버린 재능. 내가 보는 현우 형은 유독 자신의 자리에서 많이 어긋나 보였다. 그런 안타까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형은 거의 모든 일에 욕심을 내는 법이 없었다. 간혹 지나치게 ‘안분지족’하는 형을 보던 내가 답답한 마음에 ‘그러면 주변에서 무시당한다’라고 하면 형은 ‘진심은 통한다’던가 운명론을 들먹이곤 하였다. 형이 도통 욕심을 내지 않는 이유를 나는 조금 더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나는 항상 형을 ‘박학다식’하다고 했지만, 형은 자신을 ‘딱 굶어 죽기 좋은 사람’이라 했다. 돈 안 되고 쓸데없는 것들만 잔뜩 알고 있단 이유였다. 한번은 콜드 플레이(Cold Play)의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를 듣고 노래 가사의 문학성을 이야기하면서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끄집어냈다. 그러더니 또 그 노래가 수록된 앨범 재킷의 들라크루아의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더니 좋아하는 화가와 작품들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형이 문학이나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미술에까지 관심이 있는 줄은 몰랐던 나는 상당히 의외라는 듯 물었다.
“형 미술도 좋아하세요?”
“응, 나 고등학교 때 미술 선생님이 미술부 가입하라고, 그리고 미대 가라고 막 그랬는데?”
그렇게 말하는 형의 모습은, 기억하건대, 내가 형을 만나면서 봤던 모습 가운데 자신을 가장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모습이었다.
“와~ 그럼 형 전공도 미술 쪽으로?” 무심코 툭 나온 말이었다.
“대학교? 아니. 법학과 갔었어. 졸업은 못 하고, 1학년 마치고 자퇴했어.”
‘자퇴’라는 단어를 듣자 ‘괜한 걸 물어봤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퇴를 부정적으로만 볼 순 없지만, 보통의 우리 세대는 부모님 세대와는 다르게 대학교를 졸업하는 것이 보통이었기에 내 주변에도 나와 비슷한 나이대에서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만큼 현우 형의 입에서 나온 ‘자퇴’라는 단어는 일반적이지만은 않은 과거사의 방아쇠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형은 이런 나의 우려가 무색하도록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어갔다.
“원래는 미대 가고 싶었지. 그런데 알아보니 당장 미술학원도 다니고 해야 한다는데 집에다가 먹고 살기도 힘들어서 아등바등하는 마당에 미술이며 학원 같은 소릴 어떻게 꺼내냐고. 그리고 내 맘대로 하고 싶은 대로 미대에 갔다 치자, 그래서 졸업도 했다 치자, 미대 졸업하면 당장 뭘 먹고 살어? 내가 피카소도 아니고. 흐흐.”
씁쓸할 법도 한데 남 이야기하듯 현우 형은 자신의 지나간 희망 사항을 추억하면서 해탈한 듯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얼른 졸업하고 돈 벌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장학금을 주는 데로 찾아서 갔지. 그래 놓고는 자퇴라니. 크크크. 내가 생각해도 객기가 과했지.”
나는 ‘지금 본인 얘기하시는 거 아니에요?’ 하고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말했다.
“저는 형이 미대에 가고 싶어 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네요. 고등학교 때 생각해 보면 대학교수라던가 무슨 연구원 같은 걸 하고 계시지 않을까 했죠.”
“나를 그렇게 좋게 봐줬다니 영광인데? 하하. 어쨌든 가방끈이 짧은 것도 상황이 어떻든 내가 스스로 포기하고 하지 않은 거니까. 인제 와서 되돌릴 수도 없고, 어디 하소연을 할 수도 없는 거 아니겠어? 다 내 탓인데 뭐. 그런 심정이야.”
“그런데 형 왜 굳이 자퇴를…. 장학금도 받았으면 그냥 졸업은 할 수 있었잖아요?”
따져 물으려던 것은 아닌데 답답함과 안타까움에 나도 모르게 계속 물어보았다.
“그러니 온전히 내 탓인 거지. 대학교에 다니다가 갑자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 혹시 경훈이 너도 그런 생각 해본 적 없어? 인간은 ‘열심히’ 살아야만 하는 걸까? 뭘 해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다들 그러는데, ‘열심히’ 말고 ‘그냥’ 살면 안 되나? 다 같이 숨 막히게 열심히 살지 말고, 다 같이 ‘그냥’ 사는 거지. 경쟁도 하지 말고 남보다 앞서려고도 하지 말고, 딱 주어진 대로 적당히 그냥. 생각해 보면 우리 고등학교 때 정말 하루에 잠도 얼마 못 자고 주말도 학교 나와서 자습하고, 그렇게 대학교 갔는데, 그때부턴 또 졸업해 취직에…. 계속 열심히 해야 하잖아. 도대체 이 열심히는 언제까지 해야 하는데? 죽을 때까지 한순간이라도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있을까? 이런 생각 때문에 객기를 부렸던 거지.”
고작 열아홉, 스무 살의 인생이 무엇이 그렇게도 힘들고 지쳤던 걸까. 나는 형의 그때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비교적 매사를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나로서는 ‘그냥’ 살아간다는 것이 어쩌면 내가 살아온 방식 같다고 생각도 했지만, 분명 형이 말하는 ‘그냥’의 의미와는 달랐다. 어쩌면 나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냥’은 ‘열심히’ 사는 것을 기본으로 내포한 것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형은 작정이라도 한 듯이 20대 그 시절을 계속 이야기했다.
“그리고 아마 그 즈음해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알지? 그걸 봤는데 거기서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가 결국은 골고다 언덕에 올라서 죽음을 맞이하잖아. 그걸 보면서 ‘나도 내 인생의 짐을 짊어지고 피 흘려 가며 끝까지 가서는 결국 죽음에 이르러서야 해방이 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십자가’를 이야기하는 현우 형은 고통받는 예수에게 자신을 투영한 탓인지 아니면 그 당시 자신을 짓누르던 인생의 무게감을 떠올린 것인지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고 있었다.
“여튼 이런 생각들에 온통 시달리다가 객기가 치밀어 올라서 대학교를 자퇴해 버렸지. 에라 의미도 없는 거 차라리 ‘될 대로 돼라’ 하고 살란다 싶어서. 지금 내가 그때의 나를 만난다면 정신 번쩍 들게 귀싸대기 한 대 날리지 않을까? 하하하. 그리고서 학교를 그만두고 뭐라도 제대로 해야 했는데 그냥 잘 풀리지 않고, 잔뜩 꼬였다는 정도? 사춘기에도 않던 방황을 뒤늦게 했나 싶기도 하고. 지금 와서는 남들 다 가진 대학 졸업장 하나도 없고, 아무 보장도 없는 계약직에, 이렇게 별 볼 일 없는 삶을 사는 건 내가 내 인생을 날려 먹은 벌이라고 생각할밖에. 다르게 생각해 봐야 괜히 애먼 데다 화풀이나 하고 그러지 않을까?”
“에이 형도 참…. 누구나 이삼십 대에는 원래 놀기 좋아하고 그렇죠. 누가 치열하게 살아요? 오히려 그렇게 아무런 생각이 없는 애들이 대학교 다니고 졸업하고 그러는 거죠.”
위로랍시고 꺼낸 말이지만, 사실 나도 그 ‘아무런 생각 없는 애들’ 중 한 명에 속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더러 실속 없다, 사람들이 업신여긴다, 현실에 안주한다, 뭐 이런 이야기들도 결국은 전부 내가 만든 업보야. 업보.”
그렇게 말하고 형은 마치 업보까지 술과 함께 삼켜버릴 듯이 소주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형의 집을 처음으로 가 본 것은 내가 외근을 나갔다가 바로 퇴근하게 된 날이었다. 그냥 집으로 가기 심심했던 나는 형에게 연락했었다. 형은 퇴근 전이라면서 보통 둘 사이의 중간 지점쯤을 정해서 만났던 것과 달리 내가 먼저 퇴근해 있으니, 자기 집 쪽으로 오라고 했다. 특별히 만나는 곳을 가리지 않는 나로서는 어디든 큰 상관은 없었기에 형이 사는 동네를 이참에 알아두면 좋겠다 싶어 선뜻 그러자고 하였다. 그렇게 현우 형의 집을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었고, 그 후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형 집이 일종의 전용 주점처럼 되었다.
형 집은 내가 사는 곳에서는 1시간이 조금 안 되는 거리였다. 아내가 해외 장기 출장 중인 데다가 돌봐야 할 자녀도 없는 나는 집에 일찍 들어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불편할 거리는 아니었다. 게다가 형이나 나나 ‘독거 중년’이지만, 아무래도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내가 조금 더 여유로울 것 같다는 판단에 형이 혼자 지내는 그것이 괜스레 걱정되어 이렇게라도 가끔 술 한잔하며 안부도 확인할 요량으로 찾아가기를 자처했다.
서울에 정착한 지도 20년이 넘어가는데 현우 형이 사는 동네는 처음이었다. 지하철역을 나와서 바로 앞에 시장을 하나 통과하고 5분여를 더 걸어갔다. ‘달동네’ 같이 가파른 느낌은 아니지만, 아주 완만한 오르막길이 계속되었다. 살짝 숨이 차기 시작할 때쯤 도착했다. 연식이 조금 느껴지는 빌라였는데 집 내부는 약 열 평 정도 될 듯 보였다. 적은 면적이지만 살림이 많지 않아서 그다지 좁게 느껴지진 않았다. 어지럽게 널브러진 느낌도 전혀 없었다. 오히려 남자 혼자 자취하는 집치고는 청소 상태도 깨끗하고 정리 정돈도 잘 되어 보였다. 그렇지만 묘하게도 청결하다기보다는 뭔가 정체된 것 같단 느낌에 가까웠다.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은 상태로 그대로 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또, 약간 어두웠는데, 조금 축축하기만 했다면 틀림없이 늪이나, 일렁임 없이 고요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시커먼 연못을 떠올렸을 것 같았다.
형은 커피를 타온다며 방에 들어가 있으라 했다. 방에는 침대는 따로 없이 두껍지 않은 스펀지 요가 깔려있고, 그 위에 베이지색 바탕에 남색 격자무늬가 있는 이불이 각 잡힌 채 덮여 있었다. 머리맡엔 베게 두 개가 포개어져 놓여 있었다. 정리가 잘 된 이부자리를 보며 나는 내가 최근에 아침에 일어나서 침대 정리를 한 적이 있었나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독거 중년’ 주제에 이런 비현실적인 정리벽이 ‘정체된 것’ 같은 위화감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했다. 다른 쪽 벽에는 작은 책상이 있었고, 그 위에는 컴퓨터 모니터와 작은 스피커, 2칸짜리 책장이 올려져 있었다. 책장이라 해봐야 책이 한 스무 권 정도나 들어갈까 말까, 한 것으로 MDF 재질에 흰색 시트지로 마감된 듯 보였다. 책상은 내가 어릴 때 집에서 쓰던 식탁 같았다. 책상이라기엔 서랍도 없고, 다리며 상판에 긁힌 자국들이 때 묻은 짙은 갈색과는 대조적으로 누렇게 드러나 있었다. 그마저도 새하얀 시트지가 덮인 책장과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해서 딱 누군가가 내다 버린 가구를 아무렇게나 주워 와서 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형의 독서량을 안다면 절대 성에 찰 리 없다고 짐작되는 아담하기 짝이 없는 책장에는 이미 빈틈없이 빽빽하게, 분야도 종잡을 수 없이 제각각인 책들이 꽂혀 있었다. 딱 한 권의 책이 책상에 올려져 있었다.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The Fear of Freedom)』였다.
이 책은 책장에 공간이 모자라서 책상 위에 내버려둔 것 같지 않았다. 책갈피 대용으로 무심하게 고지서를 꽂아두었지만, 읽던 중으로 생각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 책까지가 책상, 책장과 더불어 마치 ‘한 세트’의 소품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책을 살짝 넘겨보려다 말았다. 왠지 세트 구성이 흐트러지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현우 형은 커피를 두 잔 들고 왔다. 물이 끓는 소리와 티스푼을 휘저을 때 컵의 벽면에 땅땅하고 부딪히던 청아한 소리 등을 미루어 보아 인스턴트커피였다. ‘형 커피 취향도 인스턴트는 아니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형의 ‘세트장’을 연신 두리번거리며 내 머릿속이 온갖 추측과 잡생각들로 도배되어 가는 중에도 형은 그런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잘 정리된 이불 위에 걸터앉으면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나도 형을 따라 어디에 앉아야 할지 잠시 고민을 했지만, 책상 의자에 가방을 올려두곤 그냥 책상 앞에 털썩 방바닥에 앉았다.
아마도 집에 들어오면 늘 그랬다는 듯이 형은 스마트폰에서 음악을 고르고 있었다. 나는 내심 ‘내가 이렇게 방문해서 형이 사는 모습을 봤을 때, 혹시라도 형이 자신의 누추함을 나에게 들킨 것을 부끄러워하지는 않을까?’ 하고 주제넘은 생각을 했다. 순전히 내 오판이었다. 전혀 부끄러움의 기색은커녕 자연스럽기 짝이 없는 형을 보며 그런 속물 같은 생각을 잠시나마 했던 나 자신이 오히려 부끄러워져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 혼자 속으로 고해성사했다가 용서했다 하는 동안에도 다행히 형은 전혀 내 의중은 알아채지 못한 채 음악을 고를 뿐이었다. 형이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재생하자 책상 위의 작은 스피커에서는 마치 옛날 유선전화 수화기를 통해서 듣는 것 같은 열악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도입부의 귀에 익은 건반 소리. ‘핑크 플로이드’의 「Comfortably Numb」이었다. 제목부터가 벌써 ‘편안한 마비’라니. 특유의 나른하고 권태로운 분위기가 이 집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어딘지 모르게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과는 다른 현우 형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나의 괴담 같은 상상이 민망하게도, 현우 형은 노래를 따라서 흥얼거리는가 하면 기타 솔로가 나오자, 책상 옆에 놓인 스탠드에서 기타를 꺼내 들고서 앰프에 연결도 하지 않은 채로 챙챙챙 쇠줄 소리를 내며 기타 솔로를 따라서 연주했다. 앰프에 연결하지도 않은 일렉기타의 줄 튕기는 소리는 정말 보잘것없는데도 형의 연주 실력 덕인지 제법 그럴싸하게 들렸다. 형이 그렇게 기타 줄을 튕기면 소리가 울리는 동안만큼은 마치 세트장의 소품 같던, 죽은 사물 같던 기타가 되살아나는 것처럼 보였다.
이쯤 되자 나는 이곳, 형의 집이 일종의 성처럼 느껴졌다. 타인으로부터 꽁꽁 숨기고 억누른 생각과 감정들, 그리고 아무도 알 수 없던 한 개인의 역사가 고스란히 그 공간에 눌어붙어서 세상과의 접촉을 차단하는 높은 벽이 되고, 그 벽 안은 산소조차 통하지 않는 깊은 늪으로 들어차 완전히 모든 것이 멈춰버린 성. 팽팽 돌아가는 지구 위에서 태고부터 단 1밀리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고정되어 있던 곳. 이곳, 현우 형의 성안에서만은 완전히 고요한 정(靜)의 상태로 모든 것이 무의미해질 것만 같단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에 너무 심취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소주를 너무 많이 마셨거나. 하지만 고등학교 때 다른 차원의 존재 같던 모습이나, 동호회에서 보던 활발한 형의 모습들도 이 집에서만큼은 완전히 소멸해 버리고 형마저 끝을 알 수 없이 추락할 것만 같았다. 나는 갑자기 윤동주 시인의 「쉽게 씌어진 시」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버스에서 내려서 현우 형의 번호로 전화를 다시 걸었다. 역시나 전원은 꺼져 있다고 안내가 나왔다. 일단 형 집에 가 보겠다고 마음먹고 나선 후부터 계속 마음이 조급해져서 이제는 나도 모르게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가는 동안에도 몇 번이나 휴대전화의 문자창을 켜서 그새 바뀌었을 리 없는 수신 여부를 확인하였다.
마지막으로 형을 봤을 때가 떠올랐다. 평소 그러지 않던 양반이 그날따라 내가 가기도 전에 이미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내가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을 새도 없이 형은 나에게 스마트폰을 들이밀며 물었다.
“이거 봤냐?”
생뚱맞게 뉴스 영상이었다.
검찰청이나 법원쯤으로 보이는 큰 건물 앞에서 기자들에 둘러싸여 어떤 노신사가 발언하는 영상으로 그때 그가 한 말이 큰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켰기에 나도 익히 알고 있었다.
“아~ 그 사건 말이죠? 워낙 시끌시끌해서 저도 봤지요. 그런데 그게 왜요?형은 무슨 일 있어요? 웬 술을 벌써….”
내 물음에는 상관없이 형은 내가 오기만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쏟아냈다.
“아 정치나 뉴스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건 아닌데, 저 양반이 하는 말 중에 ‘아무것도 받지 않았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라는 저 말을 딱 듣는 순간 참 많은 생각이 들더라. 그 말을 크게 보면 ‘원인 없이는 결과가 없다’라는 참으로 단순한 진리 아냐?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에서 지금 우리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과거에 내가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는 거잖아. 그렇게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더라.”
“형 또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평소답지 않게 궤변 같은 장황한 형의 말에 도무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나는 종잡을 수 없었다.
“‘지금의 내 인생은 결국 과거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이렇게 되었구나’하고 생각했지. 당연한 말이고, 알고 있던 사실인데도 스스로 부정해 온 건지 뉴스에서 저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머릴 세게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더라고. 너 ‘부작위’라는 말이 뭔지 알지?”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형은 자백하듯 읊조렸다.
“나는 마땅히 해야 하는 걸 하지 않아서 내 인생을 망친 부작위범이야. ‘부작위 인간’이지. 부작위 인간.”

 


형의 집에 가까워져 올수록 불길한 생각들이 이제 대놓고 설쳐대기 시작했다. 나는 오는 길에 몇 번이나 마음을 다잡았지만, 문 앞에 도착할 때까지도 그냥 확인하지 말고 돌아갈까, 하는 망설임이 자꾸만 비집고 나왔다. 벨을 눌러 보았지만, 역시 아무런 반응이 없다. 문 앞에 귀를 대고서 잠시 들어보았다. 아무런 기척도 없이 조용했다. 여기까지 온 김에 나는 일단 문을 열고 들어가 보기로 했다. 다행히 형의 집을 드나들면서 나더러 알아서 들어오라며 도어락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던 터였다.
불길한 상상 때문인지 아니면 난생처음 무단침입을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내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리고 있었다. 빨리 확인하고 싶었지만, 문을 확 열어젖히진 못했다. 오히려 평소보다도 조심스럽게 천천히 열었는데, 살짝 열리는 틈으로 평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현우 형 집 특유의 냄새가 먼저 들숨에 느껴졌다. 불길한 예감대로였다면 이미 ‘어떤 냄새’가 확 풍겼겠지 하는 생각에 조금은 심장 박동이 누그러졌다.
집은 모든 것이 차분하게 그 자리 그대로였다. 내 불길한 상상 중에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그런 광경도 있었기 때문에 예상외의 차분한 집안 풍경에 잠깐 멍해졌다. 그러나 곧 공기마저 가라앉은 듯한 이 집의 차분함과 현우 형의 부재가 겹치면서 처음 왔을 때 느꼈던 세트장 같은 느낌이 점점 더 두드러지고 있었다. 가지런한 이부자리며, 물기 없이 바싹 마른 싱크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책장과 책상,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에리히 프롬의 책과 책갈피 대신 끼워둔 고지서마저 그대로였다. 막상 혼자 마음 졸이며 찾아와서 무단침입까지 했건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더는 찾아볼 것도 없었다. 계속 있어도 별 볼 일 없을 것 같아 나는 그만 나왔다.
집을 확인하고서야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불길한 각종 뉴스 헤드라인들이 싹 지워졌다. 그럼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휴가를 내서 부모님 댁에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여행을 갔다던가. 이런 생각들을 하는 자체가 한심하다고 느껴졌다. 형과 나는 친하다고 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었나. 나에게 아무런 기별도 없다는 걸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아무리 불안해하고 걱정하고 화를 내 봐야 별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허탈하게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심한 피로감에 겉옷도 벗지 않고 책상에 엎드린 채 잠이 들었다. 꿈에 형이 나왔다. 현우 형은 이전까지 내가 갔을 때처럼 집에 있었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운 것이 사람이 아닌 마네킹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는 있지만, 인간이라면 할 법한 어떠한 것도 거부한, 심지어는 생명 활동조차 멈추어 버린 상태처럼 보였다. 꿈속인 줄 알면서도 나는 속으로 ‘이 형이 기어이 부작위 인간이 되어 버렸구나’ 하고 탄식했다. 그때, 무표정하던 형의 얼굴에 어쩐지 살짝 웃음기가 보이는 듯해서 그 얼굴을 만져보려고 손을 뻗는 순간, 나는 잠에서 깨버렸다. [끝]

 

허석준  법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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