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마로니에]


이현숙 본교 교수·사회복지학과

결핍을 느낀 시민들의 토론을 통한 공감과 실천이
변화를 만들었다



영화는 구체적인 삶을 담는다. SF영화조차 현실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우주전쟁」은 9·11 이후 미국의 불안을 반영했다. 그래서 영화는 강의의 주요 소재다. 영화를 통해 현실 사회의 화두를 논의하고 우리의 삶을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9년 화제의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다. 「기생충」은 한국영화 100년 역사에서 칸의 황금종려상을 처음으로 수상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영화가 한국사회의 불평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기생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빈민들의 모습에서 21세기 한국의 뒤안길을 만날 수 있다.
주인공 가족 기택네와 문광 부부는 박 사장네에 기생하는 존재다. 그들 삶은 계단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영화는 올라가는 계단만 보이는 박 사장네와 내려가는 계단만 보이는 기택네를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있다. 언덕 위의 볕이 잘 드는 집과 반지하, 그리고 지하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계층화를 잘 표현하고 있다. 특히 지하는 더는 내려갈 곳이 없는 계급 아래 계급인 최하층민을 상징한다.
영화는 물질적 구조가 그들의 삶과 정서에 영향을 주는 것을 비춰준다. 박 사장네는 순진하고 착하지만 비열하고, 기택네는 교활하며, 사회적 자원조차 없는 문광 부부는 무기력하고 복종적이다. 이 양극단을 식별하는 것이 냄새다. 학력과 이력은 숨길 수 있었지만, 냄새는 숨길 수가 없다. 그들의 찌든 빈곤은 냄새로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결말은 더 비극적이다. 박 사장의 모멸적 태도에 기택은 박 사장을 살해한다. 그는 그 집 지하에 숨어들어 또 다른 기생적 삶을 살아간다. 빈곤은 끝 모를 나락으로 기택네를 끌고 간다. 기택의 아들 기우는 아버지를 세상으로 나올 수 있게, 즉 기생의 삶을 끝낼 수 있는 계획을 세운다. 그것은 불평등한 세상에 맞서는 것이 아니었다. 돈을 많이 벌어 박사장네 집을 구매하는 것이다. 영화는 기우가 자신의 계획을 결행하는 모습을 포착한다. 그는 4수생으로 반지하에서 오늘도 분투하고 있다.
「기생충」의 마지막 장면은 우리의 현실이 해피엔딩이 될 수 없다는 걸 암시한다. 왜 기우는 자신들을 기생의 상황으로 몰고 간 사회를 비판하지 않고 거기에 적응해야 했을까? 희망을 노래해도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다. 영화를 본 청소년들은 기택네가 너무 욕심을 부렸기 때문에 그런 불상사가 났다며 욕심 부리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의 전작 「설국열차」는 계급구조에 맞선 민중들의 모습을 그려냈다. 계급의 열차는 파괴됐고 새로운 희망이 돋아났다. 그런데 「기생충」은 절망과 체념뿐이다. 새로운 희망은 없는 것일까?
복지국가의 역사는 불평등에 대한 비판에서 그 단초를 열었다.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부자도 가난한 자도 누구도 행복할 수 없고, 기생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시민들이 자각했다. 이 자각은 토론으로 이어졌고, 토론은 실천과 정책의 전환으로 귀결됐다. 결국 결핍을 느낀 시민들의 토론을 통한 공감과 실천이 변화를 만들었다.
이제 우리도 기생적 구조에 대해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영화는 토론의 좋은 통로다. 삶은 영화를 만들고 영화는 우리를 성찰하게 한다. 영화를 통해 성찰과 토론의 꽃이 이 가을 방송대 캠퍼스에서 활짝 피어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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