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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대와 인연을 맺게 된 데는 2010년 겨울 어느날 속기협회의 한 선배가 “방송대에서 공부해 보면 어때?”라고 뜬금없이 권유한 게 발단이었다. 그 당시 연이은 사업 실패 등 인생의 쓴맛을 처절히 경험하고 있을 때, 필자의 하소연을 듣던 선배가 해준 그 말 한마디는 인생의 나침반을 바꿔 놓게 만들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바로 이듬해인 2011년에 중어중문학과를 선택해 입학했다. 2000년에 중국에서 사업을 했던 게 계기가 됐다.


필자는 1984년에 속기사 자격증을 취득해 1985년 11월에 대한주택공사 기획조정실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당시 주택공사는 부동산경기 악화와 무리한 사업추진으로 비상 경영 상황이었다. 사장이 참여하는 모든 회의 속기록을 작성해 기록을 통해 투명하게 회사를 경영한 결과 1~2년 안에 대반전을 이루게 되어 속기사로서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필자가 속기했던 방식은 ‘수필속기’여서 1시간을 회의하면 보통 5~6시간의 번문(飜文) 작업이 필요했다. 그래서 늘 더 빨리 번문하는 방법을 놓고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던 중 미국에서 속기 기계와 컴퓨터를 결합한 일명 ‘컴퓨터 속기(CAT)’가 개발돼, 미국 법원과 의회 그리고 자막방송 등에서 활용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한국형 속기 기계를 개발해 속기사를 양성하고 다양한 취업처를 개발하고자 1992년 3월에 대한주택공사를 퇴사하고 관련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자금 마련, 개발비용, 수요처 개발 등 수많은 난관과 부도 위기까지 겪어야 했다. 그래도 그때 이룬 성취는 적지 않았다.


교육청 교습 과정에 ‘컴퓨터 속기’ 과정을 도입하고, 국가자격증인 ‘컴퓨터 속기’ 과목을 신설했다. 국가기관에도 관련 인력이 채용될 수 있게 앞장섰다. 1999년 2월 12일 MBC에서 최초로 청각장애인들에 대한 자막방송을 시작했다. 물론 자막방송 주관사는 당시 필자가 대표이사로 재직하던 ‘(주)한국스테노’였다. 이후 KBS, SBS, EBS까지 확대됐다. 청각장애인들도 ‘남이 웃을 때 웃을 수 있었고, 남이 울 때 같이 울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속기사가 복지 분야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음을 확인한 일은 큰 보람으로 남았다. 그러나 필자의 성공은 여기까지였다.


사업을 할 때는 내 영혼을 팔아서라도 성공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정신없이 살아왔지만, 남는 것은 별로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방송대를 통해 ‘배우는 것이 남는 것이다’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중국어에 관심이 있어 중어중문학과를 선택했지만, 혼자서 외국어를 공부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2011년 학과 OT에서 서울지역에 10여 개의 스터디가 구성돼 있다는 얘기를 듣고 사무실 근처에 있는 ‘강남서초스터디’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스터디를 통해 방송대 공부의 매력을 제대로 알게 됐다.


2023년, 제17대 중어중문학과 총동문회장에 취임하면서 필자는 ‘우리 만나요!(我面)’를 기치로 내걸었다. 코로나 이후 스터디 활동도 뜸해지고, 만남의 기회마저 함께 사라졌기에 다시 회복되는 동문회를 만들어 가겠다는 각오였다. 내년에도 총동문회 임원진과 함께 무엇보다 스터디 활성화를 위해 지혜를 모으려고 한다.


혼자 어렵게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스터디가 큰 힘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스터디 운영이 오롯이 재학생의 회비와 동문들의 찬조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방송대를 찾은 학생들이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자신들의 꿈을 향해 제대로 달려갈 수 있도록 하려면 학교와 학과 차원에서 스터디를 제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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