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종수 사진가
“나도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을까요?”
여성들이 핸드백을 항상 갖고 다니듯 언제 어디를 가도 늘 카메라 가방을 분신처럼 어깨에 메고 다닌 지 어언 45년이 넘었다. 지금이야 성능 좋은 디지털 카메라가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내가 활동하던 때는 필름 카메라에 모든 것을 의존해야 했다.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결과물이 주는 느낌, 필름이 주는 특유의 따뜻한 부드러움에 매료된다고 한다. 디지털이 줄 수 없는 아날로그만의 그 느낌과 함께 필름 카메라가 주는 ‘손맛’이라는 설렘 때문에 사람들은 오래된 ‘필카’로부터 쉽게 떠나지 못한다.
디지털 카메라와 달리 필름 카메라는 시간의 기다림이라는 불편한 요소를 기본으로 지니고 있다. 요즘도 현상소에 가보면, 가끔은 수십 통의 필름을 맡기려고 온 수염 덥수룩한 모습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기다림을 아는 사람들이다. 필름 카메라에서 기다림의 시간은 필수다. 그 기다림에는 반드시 ‘완성된 작품’이 아니어도 좋다는, 일종의 딜레탕티즘(dilettantism) 같은 게 있긴 하지만, 그것을 훌쩍 넘어서는 어떤 경험을 제공한다.
그렇기에 현시대 마지막 끝을 잡고 있는 필름 카메라의 흐름이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고 계속 유지됐으면 하는 진한 아쉬움이 있다. 나뿐만 아니라 아마도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는 모든 사진인들의 절실한 바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요즘 퇴직을 앞둔 50대 후배들에서부터 60대의 친구들, 그리고 오래전에 취업 일선에서 은퇴한 선배들이 나에게 간혹 사진 취미에 대한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들이 제일 먼저 묻는 것은 경제적 여유와 직결되는 ‘가격’ 문제다. 그 다음 질문이 ‘어떤 카메라’를 사용하면 좋겠냐는 ‘선택’의 문제이고, 마지막이 ‘나도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을까?’라는 ‘자신감’의 문제다.
가격과 기종 선택은 사실 중요한 질문이 아니다. 마지막 세 번째의 질문이 중요한데, 일상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바둑, 등산과 같은 경우와는 다르게 예술적 감각이 있어야 사진에 접근할 수 있지 않겠냐는 걱정이 전제돼 있다. 삶의 한복판에서 한걸음 물러난 연배다보니, 사진을 취미로 선택하는 문제에서조차 ‘나도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런 분들에게는 사진의 예술성이 어떻고, 사진은 이렇게 찍어야 한다는 등 전문적인 설득은 가급적 피한다. 그 대신 사진 생활에 대한 상대방의 불안감을 덜어주고 관심을 좀더 높여 주는 대화를 한다. 예컨대 이런 대답들이다. ‘사진의 시작은 주변의 평범한 일상적인 모습들을 찍는 것이다.’ ‘가족, 형제, 가까운 친구들을 찍어 주는 것도 사진 접근의 한 방법이다.’ ‘앞으로 사진 생활을 하게 된다면 예전과는 다르게 깊은 생각과 남다른 시선을 갖게 되고 좀더 아름답게 주변의 모든 것들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생업이 아닌 취미로 늦은 나이에 카메라를 선택하는 분들이 우리 삶의 주변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남다른 시선으로 해석하는 일은 인생 2모작 시대를 풍요롭게 채워내는 멋진 방법이 될 것이다.
여성들이 핸드백을 항상 갖고 다니듯 언제 어디를 가도 늘 카메라 가방을 분신처럼 어깨에 메고 다닌 지 어언 45년이 넘었다. 지금이야 성능 좋은 디지털 카메라가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내가 활동하던 때는 필름 카메라에 모든 것을 의존해야 했다.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결과물이 주는 느낌, 필름이 주는 특유의 따뜻한 부드러움에 매료된다고 한다. 디지털이 줄 수 없는 아날로그만의 그 느낌과 함께 필름 카메라가 주는 ‘손맛’이라는 설렘 때문에 사람들은 오래된 ‘필카’로부터 쉽게 떠나지 못한다.
디지털 카메라와 달리 필름 카메라는 시간의 기다림이라는 불편한 요소를 기본으로 지니고 있다. 요즘도 현상소에 가보면, 가끔은 수십 통의 필름을 맡기려고 온 수염 덥수룩한 모습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기다림을 아는 사람들이다. 필름 카메라에서 기다림의 시간은 필수다. 그 기다림에는 반드시 ‘완성된 작품’이 아니어도 좋다는, 일종의 딜레탕티즘(dilettantism) 같은 게 있긴 하지만, 그것을 훌쩍 넘어서는 어떤 경험을 제공한다.
그렇기에 현시대 마지막 끝을 잡고 있는 필름 카메라의 흐름이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고 계속 유지됐으면 하는 진한 아쉬움이 있다. 나뿐만 아니라 아마도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는 모든 사진인들의 절실한 바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요즘 퇴직을 앞둔 50대 후배들에서부터 60대의 친구들, 그리고 오래전에 취업 일선에서 은퇴한 선배들이 나에게 간혹 사진 취미에 대한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들이 제일 먼저 묻는 것은 경제적 여유와 직결되는 ‘가격’ 문제다. 그 다음 질문이 ‘어떤 카메라’를 사용하면 좋겠냐는 ‘선택’의 문제이고, 마지막이 ‘나도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을까?’라는 ‘자신감’의 문제다.
가격과 기종 선택은 사실 중요한 질문이 아니다. 마지막 세 번째의 질문이 중요한데, 일상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바둑, 등산과 같은 경우와는 다르게 예술적 감각이 있어야 사진에 접근할 수 있지 않겠냐는 걱정이 전제돼 있다. 삶의 한복판에서 한걸음 물러난 연배다보니, 사진을 취미로 선택하는 문제에서조차 ‘나도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런 분들에게는 사진의 예술성이 어떻고, 사진은 이렇게 찍어야 한다는 등 전문적인 설득은 가급적 피한다. 그 대신 사진 생활에 대한 상대방의 불안감을 덜어주고 관심을 좀더 높여 주는 대화를 한다. 예컨대 이런 대답들이다. ‘사진의 시작은 주변의 평범한 일상적인 모습들을 찍는 것이다.’ ‘가족, 형제, 가까운 친구들을 찍어 주는 것도 사진 접근의 한 방법이다.’ ‘앞으로 사진 생활을 하게 된다면 예전과는 다르게 깊은 생각과 남다른 시선을 갖게 되고 좀더 아름답게 주변의 모든 것들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생업이 아닌 취미로 늦은 나이에 카메라를 선택하는 분들이 우리 삶의 주변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남다른 시선으로 해석하는 일은 인생 2모작 시대를 풍요롭게 채워내는 멋진 방법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