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스(Kronos) 2024년이 저물고 있다.『장자』의「지북유(知北遊)」에서는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한평생을 산다는 것은 얇은 틈새를 백마가 휙 지나가는 것과 같다. 홀연할 따름이다”라고 했다.
백마가 틈새를 지나는 것과 같은 짧은 세월이 크로노스다. 크로노스는 기계적으로 흐르는 시간, 연대기적 시간, 지구의 공전과 자전으로 생기는 시간을 의미한다. 다시 되돌릴 수 없고 누구도 통제하지 못하는 시간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텔로미어가 줄어들어 늙고 직장에서 퇴직하는 때를 맞게 하는 게 크로노스다. 엊그제 입학했는데 한두 달 후 졸업하게 되는 학생에게도 크로노스는 어김없이 지나고 있다. 동서고금,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크로노스는 똑같은 길이로 다가온다. 누구도 지구의 공전과 자전을 좌지우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는 그때까지 보낸 시간이 얼마 되지 않으므로 비율로 보면 한 해가 무척 길게 느껴진다. 일례로 6세 때의 나는 2세 이후로 4년 동안의 기억을 가지고 있기에 1년은 내 인생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긴 시간이 된다. 62세가 넘은 지금 내 기억의 4분의 1이면 15년이 넘는 세월이다. 비율로 따지면 요즘 내가 1년 동안 느끼는 세월의 흐름은 6세 때 약 한 달 동안에 느꼈던 시간의 흐름과 비슷하다. 나이 들면서 시간이 쏜살처럼 흐른다고 느끼는 이유다.

카이로스를 잡을 힘은
독서를 통해 길러지게 마련이다.
시간과 순간순간을 살아낼 줄 모른다는 것은
‘완화된 형식의 자살’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간과 조수(潮水)는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인간은 5세대, 즉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위아래로 2~3세대 이상 넘어가면 그 시간을 개념화하기 어렵다. 지질학자는 시간관념이 수백만 년, 수억 년의 유장한 시간에 걸쳐 있다. 지질학자가 보면, MZ세대, 셰익스피어, 호메로스는 동시대 사람이다. 세대를 나누고, 다름을 정의하는 건 지질학자들에겐 부질없는 짓이다. 시간을 지혜롭게 쓰고 있는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염려하는 현대인의 고민도 덧없기는 매한가지다.
그리스의 남성 신, 카이로스(Kairos)는 앞머리는 길고, 뒷머리는 대머리다. 어깨와 발목에는 날개가 달려 있다. 이탈리아 토리노 박물관에 있는 ‘카이로스’ 석상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내가 발가벗은 것은 사람의 눈에 잘 띄기 위함이고 앞머리가 무성해 사람들이 쉽게 잡을 수 있지만, 뒷머리는 지나고 나면 다시 붙잡지 못한다. 어깨와 발뒤꿈치에 날개가 달린 것은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함이다. 지나간 기회는 돌아오지 않는다. 저울을 들고 있는 이유는 기회가 왔을 때 저울을 꺼내 정확히 판단하라는 의미다. 날카로운 칼을 들고 있는 이유는 칼날같이 결단하라는 의미다. 나의 이름은 기회다.” 카이로스는 나의 때를 의미한다.
1년이 지난 것은 내 인생의 과거가 더 길어지고 미래가 짧아졌다는 의미다. 그러나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진다. 그 시간에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세계관과 관점이 스며든다. 타인의 관점과 세계관에 휘둘리지 않고 참 자아로 세상을 살기 위한 방법은 독서와 공부밖에 없다. MZ세대는 ‘읽는 것은 멋지다’라는 의미의 ‘텍스트 힙(text hip)’이란 용어를 만들어냈다.
사실 우리는 보기, 듣기, 말하기와 달리 읽기 능력은 태어날 때 갖고 있지 않다. ‘보기, 듣기, 말하기’를 교육을 통해 배우는 아이는 없지만, 읽기는 학습해야 가능하다. 읽기란 우리 교육체계와 사회에 의해 높은 가치가 부여된 문화적 발명품이다. 독서가 지극히 문화적 행위라는 것은 반진화적 행위이기 때문에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의미다. 글자를 읽을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Pascal Quignard)에게 책을 읽는다는 건 앉은 자리에서 가장 멀리까지 가는 일이다. 독서는 두 지면의 ‘하늘을 나는 작은 양탄자’에 올라타서 바다를 지나고, 수천 년을 건너뛰는 마술사다.
읽기의 잔상(殘像)은 최소한 5일간 지속된다고 한다. 이런 현상을 ‘근육 기억’에 빗대 ‘그림자 활동’이라고 부른다. 이게 1년에 최소한 75권의 책을 읽어야 하는 과학적 근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깥세상에서 드러난 시간의 흐름을 통해 변화를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난해보다 올해 내가 얼마나 성공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성장하고 있는지를 바라봐야 한다. 그것도 자신의 성장에 자양분이 되는 독서를 통해서 말이다.
한 우물을 파는 식의 공부는 옛날 방식이다. 과학, 기술, 문화, 종교, 역사, 예술을 아우르는 지식을 함양해야 한다. 대학에서 학과 벽이 사방으로 둘러친 울타리 담을 넘기는 쉽지 않다. 아예 울타리를 해체해야 한다. 인공지능, 물리학, 생물학, 화학, 수학도 사회과학대학과 인문대학에서 학습해야 한다. 세상은 한 분야의 전공지식으로는 포착하기에 너무 크고 넓고 복잡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선적인 사고로는 복잡계인 세상을 이해한다는 게 불가능하다.
2024년이 저물고 새해를 기다리는 이즈음에 카이로스를 잡을 준비를 해야 한다. 카이로스를 잡을 힘은 독서를 통해 길러지게 마련이다. 시간과 순간순간을 살아낼 줄 모른다는 것은 ‘완화된 형식의 자살’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간과 조수(潮水)는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방송대 명예교수·행정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