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자녀에게 국가적 재난 설명하기


지난해 말엔 국가적으로 뒤숭숭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와 무안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란 굵직한 사건들이 나라와 국민을 당혹하게 하고 슬픔에 가득 차게 했다. 이때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이런 ‘충격적 사건’들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혹시 자녀가 두려움에 떨고 있다면 어떻게 진정시켜야 할지 고민했다. SNS에서는 여러 유형의 부모들이 보였다. 방법을 몰라 걱정만 하며 방황하는 부모가 있는 한편, 무작정 자녀에게 스마트폰을 보여주지 말아야 한다며 극단적으로 통제하는 부모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하고 두 달여가 지난 시점, 이번 커버스토리에선 ‘자녀에게 국가적 재난 설명하기’란 주제로 장미경 교수(청소년교육과)가 간접적으로 외상성 사건을 접한 청소년기 자녀에게 부모로서 어떻게 개입해야 할지 조언한다.
김민선 기자 minsunkim@knou.ac.kr

 

아동과 성인 사이의 존재
아직 감정 단단하지 못해
친구·SNS 좋아하지만
부모가 주는 안정감 중요


한밤중에 벌어진 계엄령 소식을 접한 어린이, 청소년은 그 개념이 생소하기도 하지만,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포인트는 TV, 유튜브 등 미디어로 접한 영상 속 ‘군인’, ‘탱크’였다. 많은 부모들이 이 부분을 걱정했다. 부모들은 자녀 앞에서 겉으론 내비치지 못하지만 내심 ‘도심 속에서 군인과 탱크가 돌아다니다니, 어른이 보기에도 충격적인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하며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에선 179명이 일시에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 커다란 비행기가 산산조각 난 모습 등으로 인해 아이들이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 간접적으로 외상을 겪은 것이다.


장미경 교수(청소년교육과)

방송대 청소년교육과 교재인 『청소년 인성교육』에는 외상을 극복하는 능력으로 ‘적응유연성’이란 개념이 독립된 장(章)으로 비중 있게 서술돼 있다. 적응유연성은 회복탄력성, 복원력, 회복력 등으로 번역돼 사용되기도 하는데, 역경이나 어려움 속에서 그 기능 수행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능력, 스트레스 이전의 적응 수준으로 복귀하는 능력을 말한다. 책에선 적응유연성에 대해 위험한 환경 속에서 개인이 성공적으로 적응하도록 더 탄력적으로 만드는 보호 요인과 그 반대의 위험 요인은 무엇인지 나눠 설명하는데, 이때 ‘한 명 이상의 양육자와 맺는 안정적인 관계’가 가장 중요한 보호 요인으로 꼽힌다. 장미경 교수는 청소년기에 아무리 친구가 중요해져도 같이 생활하고 있는 ‘부모’와의 관계가 먼저라고 강조했다.

“무엇을 알고 있니?” 자녀의 현재 상태 파악이 먼저
장 교수는 부모가 자녀에게 충격적 사건을 설명하는 데는 ‘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두서없이 접근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닌, 자녀가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수단으로서의 대화가 꼭 선행돼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자녀가 알고 있는 걸 묻는 것이 대화의 시작이 돼야 한다. 아동이었다면 ‘엄마 계엄이 뭐야, 내란이 뭐야’ 하고 물었을 것이다. 그런데 청소년이면 부모에게 먼저 물어보지 않는다. 친구들과 얘기해 보고, 궁금하면 SNS나 유튜브로 찾아본다. 부모와 얘기할 기회가 생기거나 혼란스러운 마음이 들면 그때 부모에게 물어볼 것이다. 계엄은 특히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왜 물어볼까, 뭘 알고 있을까’ 먼저 파악하고, 자녀의 말에 비판이나 평가 없이 듣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청소년기 자녀는 충격적 사건들을 마주하면서 어떤 감정이 들었을까. 청소년은 아직 감정적으로 단단해졌다고 하긴 어렵다. 청소년기 자녀와 무작정 대화하기보다, 이들의 발달단계에 대한 이해가 먼저 필요하다. 장 교수는 청소년기 특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키도 1년에 10cm씩 자랄 정도로 신체뿐만 아니라 발달적·인지적·사회적 등 다방면으로 변화가 큰 시기가 청소년기다. 그만큼 불안정하고 충동적이면서 부정적인 정서가 혼재된 시기다. (아동기와 대비해) 청소년기엔 가설을 세우는 등 고차원적 사고도 가능해지지만, 알고 있는 것을 현실에 적용하는 인지능력이 아직은 미숙한 상태이다.”


이렇게 청소년기 특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녀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까지 대화를 마쳤다면, 다음 단계는 자녀가 올바르게 생각을 정립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대화로 이어나가야 할 차례다. 객관적인 정보를 제안하고, 민주적 토론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 핵심이다. 다시 장 교수의 조언을 들어보자.


“청소년기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또 인터넷 검색으로 많은 정보를 얻는다. 그런데 수많은 정보 속에서 정확성, 객관적 판단이 어려울 수 있다. 물론 성인도 마찬가지긴 하나, 청소년기엔 인지발달 과정 중에 있기 때문에 사고 능력이 미흡할 수 있다. 부모도 각자 사건에 대한 판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녀가 반대되는 생각을 말한다고 비난하거나 틀렸다고 주장하면 대화가 단절되고 논쟁이 돼버린다. 이럴 땐 부모가 객관적인 사실을 알려주는 게 바람직하다. 부모가 특정 견해를 얘기할 순 있지만, 자신의 의견이 맞다고 하거나 설득하려고 하는 건 바르지 않다. 좋은 기사, 객관적인 시선으로 쓴 칼럼, 유튜브 등을 찾아 ‘엄마가 보기엔 이 사람이 객관적인 시각을 갖고 있어’라며 자녀에게 공유해보면 좋겠다.”

PTSD 증상 보인다면 상담 필요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이라면 자녀가 무력감을 느낄 수 있어 좀 더 감정적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 부모는 자녀와 추모 자리에 참석하는 등 작은 일이라도 직접 해보며 무력감을 극복하도록 도울 수 있다. 장 교수는 “돌아가신 분들이 있는 사건이라면 고인에 대한 슬픈 마음은 그대로 속상해하도록 둬야 한다”라며 “특히 가까운 사람들 가운데 희생자가 있을 땐 더욱 슬픔을 표현하고 애도하는 게 중요하다. 말하지 않고 묻어버리면 나중엔 일상에 지장이 올 정도로 무력감이 올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자녀가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증상을 보일 경우 전문적인 상담을 받아보도록 지원해야 한다. 장 교수는 “2008년 남대문 방화 사건이나 2022년 이태원 참사 등을 되돌아보면, 모자이크 처리되지 않은 사건 현장 영상들이 SNS를 통해 돌아다녀 많은 아이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이번 여객기 참사에선 잔인한 장면은 미디어로 크게 노출되지 않았으나, 자기 또래 아이들이 많이 죽었다는 사실로 충격을 받았을 수 있다. 잔인한 장면에 노출되면 자녀가 PTSD를 겪을 수 있다. 자녀가 특히 피로해하거나 악몽을 꾼다면, 또는 불면증을 겪거나 밥을 잘 먹지 못하고, 멍한 채로 학업을 할 수 없으면 그건 PTSD 징조로 볼 수 있다. 이런 증상이 심해 보이면, 전문가 상담을 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어른들도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 때 일기 같은 글을 써보길 권유받는다. 차근차근 글로 써 내려가며 생각을 정리하고 안정감을 되찾을 수 있다. 자녀와 대화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상황을 부모와 대화를 통해 설명을 듣는 것과 동시에, 어지러운 감정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런 대화로도 청소년기 자녀가 느끼는 불안·두려움·슬픔 등 감정을 진정시키기엔 부족할 수 있다. 이럴 땐 자녀에게 안전한 지대가 있음을 부모가 직접 일깨워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령 여객기 참사 사고라면 자녀에게 원인 조사 결과를 알려주고, 사고 예방법에 대해 주지시킴으로써 자녀를 안심시킬 수 있다. 또한 ‘주의하고 조심하면 피할 수 있는 것’이라 말하며 안심시키는 대화가 필요하다. 아무리 친구가 좋은 때여도 부모가 때론 가까이서 적극적인 방식으로 청소년기 자녀를 위기 상황에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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